아연 정숙모 작가의 최근 행보가 화제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반천수 예술사상의 회화 미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아연 정숙모 작가는 성균관대 · 경기대 · 원광대 외래교수와 예술의 전당, 한국서예박물관에서 10여 년간 문인화를 가르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문인화가이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일찍이 예술의 전당에서 주최한 한국서예청년작가선발에 4회나 당선되어 주목을 받았던 그는 현재 (사)한국문인화협회 부이사장, 경기대 평생교육원 문인화 지도교수, CEO를 대상으로 인문학강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동시에, 아연문인화연구소에서 문인화를 가르치며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아연 정숙모 작가를 만나  그가 지향하는 예술정신과 최근 전시회에 관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닮지 않은 닮음(不似之似)의 화경(畵境)을 꿈꾸는 문인화가

▲ 정숙모 작가

아연 정숙모 작가는 작년 11월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불사지사(不似之似:닮지않은 닮음)의 화경(畵境)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전통 문인화의 정신적 가치를 ‘현대’라는 그릇에 담아 새로운 화풍을 선보였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나는 새로운 재료와 조형언어로써 문인화의 가치를 발현해보고자 했다”면서, “회화의 형식, 즉 기법이나 재료 등은 ‘정신’을 담아내는 일종의 그릇이며 수단에 불과하므로 얼마든지 현대적 조형언어나 새로운 재료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다만 그 그릇에 담겨질 내용이 무어냐가 관건이다. 때문에 내가 지향하는 예술정신, 시대정신 그리고 문인화의 정신적 가치를 담아내기 위한 고민은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문인화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는 작품마다 친절하게 자신의 감성언어와 미학적 의미를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밝힘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좀 더 다가서는 방법으로 타 전시와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작품에 대한 친절한 해설에는 ‘닮지 않은 닮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예술적 감성을 구체적으로 화면 속 소재들을 통해서 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본래 ‘불사지사(닮지않은 닮음)’는 문인화에서 지향하는 학문적 역량과 예술적 역량을 동시에 담아 표현해야 한다는 사유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균관대 조민환 교수는 “불사지사의 화경은 학문과 예술이 동시에 농익은 상태, 정경교융(情景交融)이 예술기교 차원에서 완숙된 상태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면 거론하기 어렵다. ‘불사지사’의 회화 미학적 의미를 고려하면, 아연 정숙모 작가가 <불사지사의 화경을 꿈꾼다>는 타이틀을 내걸고 전시회를 연 것은 자신이 한국문인화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아연 정숙모라는 한 개인의 전시회가 아닌 이제 한국문인화단의 화풍도 ‘불사지사’를 꿈꿀 정도로 성숙해가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전시회였다”고 전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흔하디흔한 평범한 자연물에서도 생명의 몸짓을 발견하는 특별한 시선과 시적감흥을 느낀다는 정 작가는 “나는 대지연의 아름다움을 마음 담아 그리며 문인화의 불변(不變)의 정신적 가치와 현대적 미감을 발현하는 사여불사지간(似與不似之間: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의 예술세계를 지향한다.”고 자신의 예술창작정신을 이야기한다. 그는 대자연을 그리되 자연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그리는 ‘不似之似(닮지 않은 닮음)의 예술을 통해 문인화의 가치를 발현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현대성’ 발현

▲ 내 마음의 꽃

아연 정숙모 작가의 최근 작품에는 하얀 화선지에 ‘그리지 않고도 그림이 되는 여백’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에 그의 그림에는 무언가 몽환적 요소가 늘 화면에 자리한다. 이것은 작가의 치밀한 의도에 따라 때로는 폭포를, 때로는 빛을 상징하기도 하면서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 속에 빨려 들어가게 하는 후중한 색감이 주는 침착(沈着)함을 연출하여 전통 문인화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깊은 심연 속으로 감상자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를 배경삼아 작가는 최소한의 표일(飄逸)한 붓놀림으로 불사지사의 화경을 통쾌(痛快)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아연 정숙모 작가는 “전통은 파괴하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전통이 세워진다. 잠재적 무의식속에 내가 만들어 놓은 두터운 고정관념의 벽을 하나하나 허물어가면서 오늘도 나는 창조적 상상의 날개를 달고 ‘不似之似의 畵境’을 꿈꾼다.”고 강조하면서도 전통 문인화가 지향하는 정신적 가치 차원의 ‘법고(法古)’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법고’를 넘어선 ‘무법(無法)의 신의(新意)’를 담아 시대정신을 발현해야 예술의 생명성이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이기에 아연 정숙모 작가는 특히 ‘현대성’을 중시한다.

그는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새로운 재료와 조형언어로써 문인화의 가치를 발현하고자 하였다”면서 “회화의 형식 즉 기법이나 재료 등은 정신을 담아내는 일종의 그릇이며 수단에 불과한 것이므로 얼마든지 ‘현대적’ 조형언어나 ‘새로운’ 재료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다만 그 그릇에 담겨질 내용이 무어냐가 관건이다”라고 강조한 것과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즉 ‘새로운 그릇과 재료’에 담겨질 ‘창조적 내용’은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현대성’을 어떤 형상을 통해 ‘표현’하느냐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고민과 질문은 그동안 전통문인화가 추구한 정신적 가치를 이 시대에 어떻게 창조적으로 변용하여 새롭게 제시할 것인가 하는 의지의 표현이 담겨져 있다고 보여 진다.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고 창조적 상상 속에 찾아가는 문인화의 현대성을 통해 시대정신을 발현하고 있는 아연 정숙모 작가.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예술 철학적 화두’를 제시하고, 아울러 ‘동시대의 어떤 심미의식’을 담은 작품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다음 전시회가 사뭇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