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각가 이상근은 구태여 나무를 끼워 맞추거나 덧붙이지 않는다. 오로지 칼과 끌을 이용해서 자연목을 그대로를 견지시켜 나간다. 칼로 성장이 멈춰 있는 나무에 새로운 결을 도출하고, 끌로 시간이 멈춰 있는 나무에 새로운 테를 도출하는 것이다. 수공의 힘이 깃든 그의 작품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한 작가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신선영 기자 ssy@

나무 연출

▲ 이상근 조각가.

조각가는 무엇을 표현하는가보다는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표현 방식에 따라서 감각의 수위가 달라지고 해석의 여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표현의 한계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은 극복하고 증명하며 새로운 의미를 도출하고 있다. 그것이 지난 11월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이상근 작가의 개인전 <나무가, 나무로서, 나무만의>가 미술 평론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은 이유다.

“지난 개인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런 작품은 처음 본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무 둥치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원목식으로서, 이쑤시개만큼도 나무를 붙이거나 끼우지 않았다는 것에 많은 분들이 놀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목식이 아니냐고 몇 번이나 와서 되묻고, 다음날도 와서 되묻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시장 한 편에 작업했던 도구들을 전시해서 각각의 용도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상근 작가가 직접 쇠를 갈아서 만든 도구들은 평칼, 창칼, 둥근칼, 작은 끌, 큰 끌 등 수십 가지에 이른다. 어쩌면 도구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기법을 시도했다는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이 도구들로 나무의 생명과도 같은 결과 테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다시점(多視點)으로 왜곡하거나 변형해서 시각적인 전환을 꾀했다.

“함몰된 부분이 있는 반면 출몰하는 부분이 있고, 뒤틀어진 부분이 있는 반면 솟아오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생성과 소멸이 사방에서 동시다발로 이뤄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펙터클한 장면이 오로지 나무만으로, 오로지 순수 조각만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의 작품들은 2008년에 연 첫 번째 개인전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로 꾸준히 매진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허무자연-배, 41x34x60cm, 느티나무, 2012.

사실 작업에 대한 이력은 그보다 더 거슬러가야 한다. 그의 이름 이상근(李相根)을 한자로 풀이하면 나무의 아들이자 나무의 눈이자 나무의 뿌리가 된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이름에 영향을 받았는지 어려서부터 나무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조각하며 성장해 나무로 공예품을 만드는 사업을 십오 년간 했고, 목조가로 십여 년을 더 살았으니 일평생을 나무에서 손 놓아 본 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조에 관해선 안 다뤄 본 게 없고 안 만들어 본 게 없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예 조각이 상업 조각으로 치부돼서 조각 작품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부분에 갈증을 느꼈습니다. 공예품에서 틀을 떼고 나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오브제가 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가옥, 바퀴, 배와 같은 오브제를 활용해서 제 정체성을 극복하고 싶었고, 오브제가 가지는 현대성을 내세워서 미학적인 접근을 꾀하고 싶었습니다.”

▲ 허무자연-대문, 62x36x76cm, 느티나무, 2014.

나무속의 나무
고목은 그 자체로 비석 같은 느낌이다. 인간의 생사와 문명의 변화를 오랜 시간 목도하며 묵묵히 지탱하는 모습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피에 난 결들이 고목의 전언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 아니다. 어쩌면 목조가들은 이 전언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갖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이상근 작가도 수백 년에서 천 년 가까이 산 고목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느티나무 고목만을 사용하고 있다.

“느티나무 고목은 나뭇결이 아름답고 밀도가 높아서 목재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나무입니다. 작업을 거듭할수록 선에 대한 표현이 더 세밀해지고 형태에 대한 묘사도 더 다양해져서 완성도를 높이고자 소나무에서 느티나무로 전향하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구부러지고 늘어지고 뒤엉키는 판타지적 표현이 더욱 용이해졌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문명이 어떻게 발생되어 나오고 그것이 무엇을 파생시키고 있는가에 대해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 허무자연-수레바퀴, 47x20x50cm, 느티나무, 2011.

이상근 작가가 나타낸 가옥, 바퀴, 배, 대문, 의자, 사다리와 같은 오브제들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절삭되고 가공된 나무의 또 다른 형태다.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 편안하게 생활하기 위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자연을 희생시켜 만든 이 가공품이 문명이 발달시켰고 사회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착취한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하게, 그리고 빠르게 다가왔다.

“인간의 이기로 자연과의 균형이 깨졌습니다. 자연으로부터 문명이 도래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자연이 없으면 문명도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자연의 입지를 지나치게 줄여 나간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결국 기후가 변화하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질병이 생기는 부작용이 전 방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몰락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썩음을 조각하고 검은색 천연 안료를 발라 표현했습니다. 썩어가는 것을 바라볼 가치가 진정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 대륙으로, 73x40x9cm, 느티나무, 2016.

썩은 것에 대한 표현은 원목을 보기 전까지는, 아니 원목을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부식이 시작된 나무는 이미 재로로써 효용 가치가 없다며 최고급 원목만으로 작업하는데, 험준한 협곡의 기암괴석처럼 결의 층차를 미세하게 마모시킨 뒤 그 위에 검은색 천연 안료를 발라 실제같은 썩음을 나타냈다. 인공 색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천연 안료만을 사용하는 것은 나무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다.

“생성과 소멸의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을 주창하는 만큼 재료나 기법 면에서 인공적인 요소는 가미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도 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면서 뉴욕의 한 갤러리로부터 전시를 제안 받았는데 제 작품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지금은 조각과 부조가 주인데, 앞으로는 조각에서 부조가 나오고 부조에서 또 다른 부조가 나오는 입체적인 작품으로 의미 있는 연결을 이어가겠습니다.” NM

▲ Gate, 87x45x7cm, 느티나무,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