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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제 266대 교황 방한
한반도에 위로와 화해, 평화의 메시지 전달
2014년 09월 03일 (수) 15:26:42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5일 일정동안 약 1000km를 숨 가쁘게 누볐다. 하이라이트였던 지난 8월16일에 열린 시복식에는 17만명의 신자가 초청되었다. 수많은 신자들 앞에서 교황은 위로와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장정미 기자 haiyap@

지난해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아 첫 번째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다. 여러 국가 순방이 아닌 한국 단독 방문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교황이 방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앞서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차례 찾은 이후 25년 만이다.

가톨릭의 ‘적폐’를 청산하며 여러 개혁 추진
   
▲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피아와 전쟁을 선포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등 사회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왔고 행동에 옮겼다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과정 자체가 기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예기치 못했던 일종의 ‘사건’이었다. 지난해 3월 13일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콘클라베. 전 세계 115명의 추기경이 모여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자진 사임에 따른 후임 교황 투표를 진행했다. 몇 차례 부결 끝에 마침내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베드로 성당 굴뚝에서 피어 올랐다.

당시 유력한 교황 후보는 이탈리아의 안젤로 스콜라나 추기경과 브라질 상파울루 대교구의 오질루 셰레르 추기경이었다. 그러나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만명의 신자들이 들은 새 교황의 이름은 예상과 달랐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예수회 출신 추기경이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이후 자신의 교황명을 중세 교회를 개혁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따왔다. 타락해가던 중세 교회에 쇄신의 바람을 불어넣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지표로 삼은 첫 교황이 탄생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생하자 이탈리아 주교회의 일간지 아비에니레는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말해주는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500여일이 흐른 지금, 이탈리아 주교회의 예상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의 ‘적폐’를 청산해 나가면서 가톨릭의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가난한 이들의 성인이었던 프란치스코처럼 교황 또한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검소한 생활로 수도자의 청빈을 솔선수범하고 1400여만명에 이르는 트위터 팔로어에서 볼 수 있듯이 신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의 교황 이미지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의 시사주긴지 ‘타임’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을 당시 “신세계의 교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과 동시에 바티칸의 누적된 문제들을 청산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우선 취임 한 달 만에 아시아·아프리카 등 대륙별로 추기경을 뽑아 8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렸다. 이들에게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교황청 조직을 재편하는 임무를 맡겼다. 올해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하롤린 추기경이 합류하면서 자문단에 무게가 더 실렸다. 역대 교황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바티칸은행 개혁에도 착수했다. 1942년 설립된 바티칸은행은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하며 해외에 체류하는 종교기관이나 자선단체 등에 돈을 보내는 것을 주된 역할로 했다. 그러나 바티칸은행은 2차대전을 거치며 마피아와 결탁해 돈세탁과 횡령 등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외부기관인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에 바티칸은행 감독 임무를 부여했다. 은행장뿐만 아니라 이사회 구성원 전원을 교체했다. 새로운 은행장에 자산운용사 인베스코 유럽본부를 이끈 프랑스 출신 금융인 장 바티스트 드 프랑쉬를 임명해 바티칸 내부의 이탈리아인 세력을 몰아냈다. 또 은행과 별개 조직으로 바티칸의 주식·부동산 등을 관리해온 사도좌재산관리처(APSA)에 대한 관리감독도 대폭 강화했다.

SNS 등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과 변화에 대응하고자 바티칸의 미디어 업무를 관할할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자 BBC 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크리스토퍼 페튼 옥스퍼드대 총장을 미디어위원회 위원장으로 초빙했다. 여기에 약 400억원을 들여 주교관을 신축하려던 독일의 주교에게 정직처분을 내리는 등 고위 성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확실한 ‘경고’를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내부의 개혁에 매진하면서 더불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세계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착좌한 이후 로마 밖의 첫 방문지로 택한 곳은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와 120㎞ 떨어진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였다. 람페두사 섬은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한 밀항지로 2012년 튀니지에서 밀항을 시도하던 배가 뒤집혀 80여명이 죽기도 했다.

교황은 지난해 7월 람페두사 섬을 방문해 불법이민자 수용소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무관심의 세계화’를 비판했다. 같은 달 첫 해외 방문지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년대회를 찾은 교황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최대 빈민가인 바르지냐를 찾아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바르지냐의 작은 성당에서 기도를 드린 뒤 “사람들을 환대하고 먹을 것을 나눌 때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고 연대를 강조했다. 교황의 두 번째 해외 일정이었던 지난 5월 중동 방문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기원하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의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미사장소로 이동하던 중 이스라엘과 서안지구를 구분하는 분리장벽 앞에서 예정에 없던 평화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책을 반대하는 교황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또한 지난 6월 열린 교황청 평화기도회에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초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분쟁의 종결을 염원하기도 했다. 이어 6월 하순에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한 분파인 은드란게타의 본거지인 칼라브리아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마피아처럼 악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신과 교감하지 않는다”며 마피아 단원들을 파문시켜 바티칸과 마피아의 결탁 의혹을 끊어버렸다.

사랑과 희망의 복음 나누기 위해 방한
교황이 한국을 찾은 종교적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가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해 124인의 순교자를 성인의 전단계인 복자·복녀로 선포하는 시복미사 집전이다. 윤지충 바오로는 유교식 제사를 거부한 ‘진산사건’으로 참수형을 당한 한국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다. 또 다른 하나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이다. 교황은 지난 8월15일 대회가 열린 대전으로 내려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강론하고 한국의 20대 청년 대표 및 홍보대사인 가수 보아 등 아시아 각국 청년 대표와 오찬을 함께 했다.

교황이 대륙에서 열리는 가톨릭 청년행사에 참석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교황은 방한에 앞서 지난 8월8일 촬영한 영상을 통해 “젊은이들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에너지를 가져오는 이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위기의 희생자들이기도 하다”며 “그들에게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이름인 ‘주님이신 예수’를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랑과 희망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는 기쁨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간다”고 덧붙였다. 교황의 방한이 종교적인 의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역대 교황과는 다른 면모 때문이다. 그는 마피아와 전쟁을 선포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등 사회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왔고 또 행동에 옮겼다. 노숙자를 생일 아침 교황청으로 초대하는 등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는 행보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이러한 행보는 이번 방한에서도 계속되었다.

교황은 특히 유례없는 비극을 겪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생존 학생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 따로 만났다. 8월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선포한 메시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 미사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참사 유가족,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이 초청됐다.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원수로서 방한 첫날 박근혜 대통령도 만났다. 박 대통령은 종교가 없지만 가톨릭과는 여러 인연이 있다. 1965년 천주교재단 학교 성심여중을 다니며 율리아나라는 세례명을 받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속한 예수회 대학인 서강대를 졸업했다. 대통령은 지난 8월14일 성남 서울공항으로 직접 가 교황을 영접하고 이어 청와대에서 공식 환영행사를 열어 교황을 맞이했다.

경색된 남북 관계에 긍정적인 역할 기대
한국 천주교 신자 수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아시아 국가 중 5번째로 많은 544만여명으로 교세 신장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184만여명에서 30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은 세계 가톨릭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나라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전해진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접하고 자발적으로 교리 연구를 시작해 평신도 중심의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의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만큼 세계의 시선이 한국 천주교와 한국으로 집중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교황 방한의 목적은 아시아청년대회 참여와 시복식 집전이지만 교황이 우리 사회에 전할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에 전국민적 관심이 모아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취임 직후부터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남북한 화해·평화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역설해 왔다. 즉위 한 달도 되지 않아 맞은 첫 부활절에서 “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빈다. 그곳에서 평화가 회복되고 새로운 화해와 청산이 자라나기를 빈다”고 한반도를 따로 언급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올해 1월에는 주바티칸 외교사절단에게 한 연설에서 “한반도에 화해의 선물을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고 싶다. 한국인들을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끊임없이 합의점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교황님께서 방문하셔서 한국의 갈등 치유에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따라서 우리 사회 안팎에서는 교황의 이번 방한이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푸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염수정 추기경이 지난 5월21일 개성공단을 방문하며 교황 방한 행사에 북측이 참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북한이 우리나라 천주교 추기경의 방문을 받아들인 것은 처음이었다. “염 추기경의 방문은 교황 방한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천주교 측은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을 받았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는 지난 5월 중국 선양에서 북한 조선천주교협의회 인사를 만나 교황이 명동성당에서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북한 천주교신자 10명을 초청했다. 하지만 북한 측은 지난 7월 말 “여러 사정상 참석이 어렵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8월7일 교황청 공보실장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 역시 “그들이 참석할 수 있게 계속 노력은 하겠지만 어렵다고 본다. 부정적인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고 다른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교황의 방한이 영향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은 여전하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6월23일 교황 방한준비위원회 발대미사 강론에서 “교황의 방한은 잔치가 아니라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생존 학생들을 직접 면담했고 이어 8월18일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해군기지를 건설 중인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등이 참석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초청을 받았다. 이날 미사에 앞서 7대 종단 지도자들과 따로 만나 인사하고 환담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교황이 방한 중에 이들을 만나 전한 메시지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거나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에 직·간접적인 홍보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교황의 방한 중에 세계 각국의 미디어를 통해 브랜드나 상품이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브라질의 세계청년대회에 교황이 참석해 발생한 경제효과가 55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하이트진로의 먹는 샘물인 석수는 교황이 마실 물로 선정돼 서울 광화문광장의 시복식 때 20만여명의 신자들이 마실 수 있도록 비치됐다. 바티칸에서도 평소 준중형급 차량을 이용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전차량인 ‘포프모빌’(교황의 차량)으로는 기아자동차의 ‘쏘울’이 낙점됐다. 교황 방한 행사의 주관 통신사업자로는 LG유플러스가 선정됐고, 롯데주류의 ‘마주앙’은 4차례 열릴 미사 집전에서 미사주로 쓰였다. 천주교 서울교구의 주거래 은행인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교황 방한을 통해 은행을 알릴 기회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은 모자 50만개와 우산 1000여개를 제작해 광화문 시복식 행사에서 나눠주었다. 대전교구의 주거래은행인 하나은행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되는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는 신도들에게 썬캡과 티셔츠를 나눠주었다. 우정사업본부는 교황의 방한을 기념하는 우표 2종, 총 130만장을 내놨고 한국은행은 교황 방한 기념주화 9만장을 발행할 계획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서 순교자 124위에 대한 시복 선언
지난 8월16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천주교 순교자 124위에 대해 시복을 선언했다. 시복은 천주교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해 공경 받는 사람들을 성인의 바로 전 단계인 복자로 선포하는 일이다. 교황이 순교자의 땅에서 미사를 직접 집전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간 시복식은 교황청 내 시복·성을 담당하는 시성성 장관 추기경이 바티칸에서 주례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번 시복식은 전 세계 교회가 한국교회의 역량, 평신도들의 순교자 공경과 기도를 인정한 결과라 뜻 깊다는 게 교황방한준비위원의 설명이다.

순교자 시복식이 한국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천주교 역사로는 세 번째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79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8년(24위)에 열린 한국 순교자를 위한 시복식은 모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다. 이번에 복자가 된 124위는 조선인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해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 리더십을 발휘했던 여성회장 강완숙 골룸바, 정약용의 형이자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집필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백정 출신 황일광 시몬 등이다. 신분사회의 사슬을 끊고 신앙 안에서 인간 존엄과 평등, 이웃사랑의 정신을 실천한 이들이다.

시복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스스로 자리 잡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 의미를 뒀다. 교황은 강론에서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한국 땅에 닿게 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지 않았다”며 “한민족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또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이라면서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 곧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그들이 신봉하고자 선택한 종교의 고귀한 원칙들에 대한 충실성, 그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고 의미를 뒀다. 순교자들의 유산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더 나아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며 강조도 했다. 이날 시복미사는 간소하게 진행됐다. 봉헌예식도 전례에 필요한 것 외에는 다른 봉헌은 하지 않았다.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추구하는 교황의 뜻을 반영해서다. 성찬 전례에는 서울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면서 20년 동안 매일 첫 매상을 지구촌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부한 강지형·김향신 부부가 빵과 포도주를 예물로 바쳤다.

시복식에 쓰인 십자가도 크게 만들지 않았다. 인근 광화문과 조화를 위한 조처다. 제대 주변에는 복건을 쓴 아기예수와 비녀를 꽂은 성모가 한복을 입고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한국사도의 모후상’이 놓이는 등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 반영됐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미사는 안명옥 주교의 시복 청원과 교황의 시복 선언, 교황 강론, 평화예식, 영성체 예식 등으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교황은 시복식 전 광화문 퍼레이드로 신자 및 시민과 소통했다. 이날 현장에 모인 이들은 신자 17만 명을 포함해 100만 명이 몰렸다는 게 경찰의 추산이다. 교황은 카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단원고 희생자 김유민 양의 아버지인 김영오(47) 씨를 만나 손을 잡고 위로했다. 수시로 차를 세워 10여 명의 아이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이 자리는 교황과 시민과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자리였다. 이를 통해 시민은 “위로의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광주에서 온 안진우(37)씨는 ”교황이 보고 싶어 새벽에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왔다“며 ”교황의 미소만 봐도 모든 억울함이 사라지는 것 같다. 정부가 교황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 양산서 온 채정숙(60)씨는 “낮은 곳에 임하는 교황을 본삼아 우리도 다시 한번 겸손하고 낮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이번 시복식을 통해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빛과 소금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 복음화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더욱 봉사하며 그들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노인’과 ‘젊은이’ 통해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 제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행사 자체보다는 교황이 주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교황 방한 기간 예정된 가장 큰 행사인 천주교 순교자들에 대한 광화문 124위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는 교황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첫날인 8월14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어로 남긴 “한국에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특별히 노년층과 젊은이들에게.”라는 짧은 글도 교황이 이번 방한에서 주고 싶은 메시지를 간결하게 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첫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공직자들과의 만남에서 한 연설과 한국주교단과의 만남에서 한 연설에서 지속적으로 ‘노인’과 ‘젊은이’를 언급했다.

교황은 두 연설에서 ‘노인’과 ‘젊은이’를 ‘기억’과 ‘희망’으로 표현하며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했다. 124위 복자들에 대한 시복식을 통해 순교한 옛 선조들의 사는 법을 ‘기억’하고, 아시아 청년대회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그들의 열망을 보며 그들에게 어떠한 세상과 사회를 물려줘야할 지 성찰하는 ‘희망’이라는 선물을 준다는 것이다. 교황은 선조들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는 “순교한 선조들이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사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며 “한국 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그 순수함에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특히 난민들과 이민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하며 지속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교황은 말했다.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세상은 “단순히 경제적 개념이 풍요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다. “특별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위대한 보화인 연장자들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우리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교황은 아울러 ‘평화’에 대한 메시지도 전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평화라는 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찰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며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이다”고 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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