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자체에 이미 그윽하고 중후한 감정이 배어있어 ‘저음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가수 오기택씨.
1962년 활동을 시작해 ‘영등포의 밤’,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 ‘충청도 아줌마’, ‘우중의 여인’, ‘마도로스 박’ 등 60년대를 대표하는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던 가수다.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한 그의 이력서는 두 개다. 가수이력서와 골프이력서가 그것.
전국체전에서 전남 대표로 출전해 단체 금메달과 개인 1위를 하는 등 각종 아마추어대회의 상을 휩쓸었다. 프로 골퍼로 데뷔하라는 권유도 수없이 받았다. 가수이자 골프선수로 두 가지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

현재 그의 고향인 땅 끝 마을, 해남에서는 해마다 그의 이름을 딴 ‘오기택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벌써 열한 번째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당사자 오기택씨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본인 이름의 가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20년 전 바다낚시를 갔다가 당한 불의의 사고 후유증 때문이다. 한때 반신불수의 몸이었던 그는 혹독한 재활 훈련 끝에 재기에 성공, 한동안 무대에 다시 서기도 했다. 그러다 또다시 건강이 좋지 않게 돼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

이 사고로부터 20여년, 여전히 독신인 그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가수 오기택씨가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그 삶과 사랑’을 총 3회에 걸쳐 만나본다.

글 ㅣ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지극히 당연한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지켜본 가수 오기택씨의 삶은 남달랐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1년 경.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대부분 지켜볼 수 있었다.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왔고 어느새 속 깊은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누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가 주는 벽도, 흉허물도 없다. 물론 그는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과 그렇게 지내는 듯하다.

비록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만남이 시작됐지만 이후 그가 보여준 자기관리는 놀랍도록 철저했다. 심지어 에너지가 남다른 DNA를 지니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지금부터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 가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에게서 받은 인간적 감동이 컸던 탓에 그동안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있는 그대로, 언젠가는 반드시 기록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마치 빚 갚는 심정으로 모든 것들을... 그중 일부를 여기 뉴스메이커 지면을 빌어 소개한다.

먼저 오기택씨에 관해 그동안 써뒀던 글을 하나 찾아 소개한다. 이 글은 지난 2007년, 서울신문에 썼던 칼럼으로 그의 활동기록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했던 글이다.

이미 목소리 자체에 중후한 감정이 담겨있는 ‘저음의 마법사’

‘저음의 마법사’라 불리는 중후한 목소리의 가수 오기택씨. 1962년 활동을 시작해 ‘영등포의 밤’,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 ‘충청도 아줌마’, ‘비 내리는 판문점’, ‘마도로스 박’ 등 60년대를 대표하는 많은 노래를 발표했던 그는 목소리 자체에 이미 그윽하고 중후한 감정이 배어있어 힘이 느껴지고 그러한 만큼 흡인력 또한 대단하다.

그는 이력서는 두 장이다. 가수로써의 이력서와 골프 이력서가 그 것. 특이하게도 가수로서의 이력서는 두 장 분량인데 반해 골프이력서는 무려 네 장일 정도로 수상 기록 또한 화려하다. 노래만큼이나 골프실력 또한 정상급이었던 것.

1939년 11월 18일, 전남 해남의 한 바닷가에서 부친 오월봉씨와 모친 주장악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사업하시는 부친을 따라 해남과 목포를 오가며 초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야 했을 정도로 이사를 자주 다녔다.
성동공고 기계과에 진학, 상경하게 된 그는 재학 당시 가수 고복수씨가 운영하던 가수 등용문, 동화예술학원에 등록한다. 안정애, 이미자, 하춘화 등 이미 많은 가수들을 배출한 동화예술학원에서 61년 12월, 그는 제1회 KBS 직장인 콩쿠르에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대표로 출전, 1등을 차지한다.

이 때 부른 노래가 창작곡 ‘비극에 운다’. 지도교사였던 작곡가 장일성씨가 대회 출전용으로 만들어준 노래다. 아마추어 콩쿠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관객이나 심사위원들에게 친숙한 곡을 부르기 마련이지만 이 예비가수가 창작곡을 가지고 출전했다는 것은 그만큼 가창력에 자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이 대회를 TV 중계로 지켜본 작곡가 김부해씨가 오기택씨를 찾아온다.

“당시 ‘대전블루스’, ‘댄서의 순정’ 등의 히트작곡가 김부해 선생은 만나자마자 원로들의 모임인 한국작가동지회 사무실로 날 데리고 갔어요. 그 사무실에는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가요작가들이 모여 있었죠. 작곡가 전수린, 형석기, 손목인, 박시춘, 조춘영, 작사가 반야월 선생 같은 대가들 앞에서 오디션 아닌 오디션을 받게 할 목적이었던 거죠.”

60년대 삶의 애환이 담긴 노래 ‘영등포의 밤’, 노래비 세워지다

결국 쟁쟁한 실력자들에게 인정받은 이 가수지망생은 곧바로 당시 김부해씨가 문예부장으로 있던 메이저 음반사, 신세기레코드사에 전속가수 계약을 맺는다. 음반 취입 없이 테스트만으로 전속이 된 독특한 케이스였다. 이때가 62년 4월 20일, 당시 계약금 오천 원을 받고 전속가수가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우중의 여인’, ‘영등포의 밤’ 등을 잇달아 취입하며 신세기의 간판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내 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의 불길/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가슴을 파고드는 추억어린 영등포의 밤/영원 속에 스쳐오는 사랑의 불길/흐르는 불빛 속에 아련한 그대의 모습/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영등포의 밤(라희 작사, 김부해 작곡, 오기택 노래)’

60년대 산업 발전의 터전이었던 서울 영등포를 배경으로 사랑과 애환을 그린 이 노래는 1966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며 더욱 사랑을 받았다. 이후 노래비까지 건립되었다.

이 무렵 그는 배우전문학원에도 등록한다.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연기 공부를 통해 대중 앞에서 감정이나 표정을 어떻게 연출해야하는지 터득하려 했던 것.

가수로써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인 63년 4월, 그는 해병대 군예대에 입대한다. 그러나 입대 후에도 그의 노래들은 계속 방송되고 있었고 또한 군복을 입은 채 틈틈이 음반을 취입, 공백기 없이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영화 ‘모녀기타(강찬우 감독, 64년)’에 이어 영화배우 박노식의 대표적 캐릭터로 자리매김 된 ‘마도로스 박(신경균 감독, 64년)’, ‘바람아 말하라(이형표 감독, 65년)’ 등의 주제가를 비롯해 64년 동경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마라톤선수 신금단과 남측의 부친 신문준씨가 분단 15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을 그린 노래, ‘눈물의 십 분간’을 발표한다.

14년만의 극적인 만남, ‘남북 간 신금단 부녀상봉’을 그린 ‘눈물의 십분간’

‘내 땅도 아닌 나라 일본 땅에서/만나본 그 인사가 안타깝구나/금단아 (아바이~) 금단아 (아바이~) 그 말 한마디/할 말도 못해본 눈물의 10분/아- 꿈만 같구나.

(대사) 금단아! 아바이! 금단아! 아바이! 보고 싶었어, 그래 잘 있었니?
어머니는? 야. 할아버지 산소는? 야, 자주 가보재요.
함께 살날이 있을 테니 몸조심해. 아이고 어쩌겠어요, 아바이 잘 가오!

그립던 부녀상봉 14년 만에/아바이 옷자락만 쓰다듬었소/금단아 (아바이~) 금단아 (아바이~) 외마디 소리/만나자 헤어지는 마지막 10분/아- 원통 하구나. -눈물의 10분간(김영일 작사, 손목인 작곡, 오기택·최숙자 노래)’

남ㆍ북한의 신금단 부녀가 헤어질 때 외친 이 “아바이…” “금단아!”라는 대사는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단어로 금세 유행어가 되었다. 동시에 오기택·최숙자씨가 함께 부른 노래에 실려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해병대에서 제대한 다음 해인 1966년 ‘고향무정’이 대히트를 기록, 다시 인기가수 대열에 합류한다. 아울러 제대 후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며 ‘아빠의 청춘’, ‘남산 블루스’, ‘충청도 아줌마’, ‘비 내리는 판문점’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다. 인기만큼이나 빡빡한 공연과 방송 스케줄은 물론 음반 취입도 한 달 평균 이십여 곡 이상씩 취입해야 했다.

그러나 톱 가수 대열에 서있던 그의 노래가 일순간, 모조리 방송에서 자취를 감춘다.(계속) (서울신문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저음의 마법사, 오기택[1]’, 2007년 5월 5일 자)

노래 대신 선택한 골프, 프로로 데뷔하라는 권유까지 받아...

60년대 후반,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 등으로 정상을 질주하던 오기택씨의 노래들은 일순간, 방송에서 모조리 자취를 감춘다. 워커힐 호텔의 한 외국인 전용클럽에서 오락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한 방송국 PD에게 목격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파를 통해 보도되자 그는 전속으로 있던 신세기레코드회사 강윤수 사장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기에 이르렀고 이에 발끈한 그는 PD를 찾아가 거칠게 항의, 폭행으로까지 이어지며 ‘괘씸죄’까지 적용되기에 이른 것.

이 일이 발생하고 난 뒤 그는 더욱 심기일전해 노래에만 전념해보려 애쓰지만 몸싸움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의 노래들은 이미 방송가에서 외면을 당했고 때문에 취입한 노래들마다 ‘불발탄’에 그쳤다.

결국 국내에서의 연예활동에 한계를 느낀 그는 이후 일본을 오가며 동경, 오사카 등지에서 6년 간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며 일본 진출을 모색한다. 그러나 언어장벽을 극복하지 못해 중도에 귀국해야 했다.

70년대에 들어서는 (사)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 직을 맡아 선후배 가수들의 친목과 권익을 위해 헌신했다. 당시 가수들 방송 출연료를 대폭 인상시킨 일화는 지금까지도 화제가 될 정도다.
 
그러나 정작 가수로써는 무대에 서기가 용이치 않자 이때부터 취미였던 골프에 빠져든다. 이것이 그가 골프선수로써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계기다.

현재 여의도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는 온통 트로피와 메달이 벽과 진열장에 가득하다. 81년부터 시작한 이 골프로 그는 69회부터 71회까지, 전국체전에 전남 대표로 출전해 단체 금메달과 개인 1위를 하는 등 각종 아마추어대회의 상을 휩쓸었다. 또한 90년엔 싱가폴 로렉스 오픈 대회 1위, 94년엔 필리핀 소니컵 오픈 대회에서 2위를 하는 등 세계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프로 골퍼로 데뷔하라는 권유도 수없이 받았다. 때문에 골프이력서가 별도로 있을 정도다.

바다낚시 중 실족사고, 절벽에서 스물네 시간 버텨...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가 가수로 출발, 골프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면 낚시 때문에 또 한 번 그의 삶이 바뀐다.

그에게서 낚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만큼 그는 소문난 낚시 광이자 꾼이다. 해남 바닷가에서 나서 자랐기 때문에 바다낚시를 특히 즐겼던 그가 즐겨 찾는 장소는 제주도에 있는 무인도, ‘염섬’. 섬에 들어가면 보통 보름에서 한 달 정도 혼자 낚시를 하며 지내곤 했다. 그는 이 섬에서 큰 사고를 당한다.

1996년 12월 31일, 새해맞이를 겸해 그가 이곳을 찾았는데 도착하자마자 폭풍주의보가 발효되면서 섬에 완전히 고립되었다. 이 폭풍 속에서 그는 갑자기 나타난 빈혈 증세로 쓰러지며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현상을 겪는다.

하필 그가 넘어진 곳이 바다 쪽으로 급경사진 곳. 움직일 때마다 몸이 자꾸 바다로 미끄러지자 눈보라 속에서 말을 듣지 않는 몸으로 겨우 한쪽 팔로 소나무 가지를 잡고 한쪽 다리로 소나무에 걸쳐 버텼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옷까지 벗어 흔들었다. 그러나 엄동설한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꼬박 스물 네 시간, 밤새 졸음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배가 고프면 소나무 잎을 씹고 쏟아지는 졸음을 쫒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러댔다.

‘정신을 잃으면 곧바로 죽는다’는 생각만이 전부여서 그는 생각나는 주위사람들 이름을 하나씩 외치기도 하고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목청껏 노래를 불러가며 버텼다. ‘살려 달라’고 수도 없이 어머니를 목 놓아 부르기도 했다.

다음날 극적으로 낚시꾼들의 배에 의해 구조되어 생명을 건졌지만, 이 사고로 인해 그는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다. 지금까지 재활훈련과 더불어 언어재활치료를 거듭하고 있는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그의 이름을 딴 ‘오기택 가요제’가 매년 10월 그의 고향인 해남에서 열리기로 결정된 것.

오기택씨는 자신의 명예가 걸린 이 ‘오기택가요제’ 무대를 오르기 위해 어느 정도나 재활치료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서울신문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저음의 마법사 오기택[2]’, 2007년 5월 12일 자)

당시 칼럼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일간지라는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오기택씨의 활동사항만을 간략하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 글에 미처 담지 못한, 못 다한 이야기를 다음 호부터 본격 시작하려 한다. ‘가수이자 골퍼’, 그리고 ‘인간 오기택의 삶과 사랑’에 대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