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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 불어 닥친 대규모 숙청 바람
2017년 12월 09일 (토) 00:53:29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지난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규모 숙청 바람이 불었다. 지난 11월4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32) 왕세자는 부패 척결이라는 명목으로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수십명을 체포했다.

장정미 기자 haiyap@

체포 대상에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왕위 계승권 다툼을 벌였던 압둘라 전 국왕의 아들인 무타이브 빈압둘라(65) 국가보위부 장관, 왕실 최고 갑부이자 사촌형인 알왈리드 빈탈랄 킹덤홀딩스 대표 등이 포함되었다.

왕권계승에 위협될만한 요소의 원천 봉쇄
전문가들은 빈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외교 노선과 국내 정치에 반대하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무혈 친위 쿠데타’로 분석하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올해 초 TV인터뷰에서 부패 관리 축출을 예고한 바 있으며 지난 6월 빈살만 왕세자 측은 국가보위부 장관인 무타이브 장관을 숙청함으로써 정규군뿐만 아니라 왕가를 보호하고 쿠데타를 막는 근위대인 국가방위군까지 자신들의 통제 아래에 두게 됐다. 또한 경제부 장관도 빈살만 왕세자 측 인사인 모하메드 알투와즈리 전 HSBC 중동 최고경영자(CEO)로 교체됐다. 지난 11월4일, 살만 국왕은 칙령을 통해 반부패위원회에 압수수색, 계좌추적, 출국금지, 자산 동결, 체포영장 발부 등 강력한 사법 권한을 부여하면서 “공금을 횡령하거나 유용한 혐의가 있거나 권력을 남용했다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살만 국왕은 빈살만 왕세자를 반부패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앞서 지난 6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82)은 자신의 친아들인 빈 살만 왕세자를 서열 1위 왕세자로 책봉했다. 이후 사우디 당국은 빈 살만 왕세자의 왕위 승계에 걸림돌이 되거나 국정 운영에 비판적인 세력을 대대적으로 걸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반부패위원회는 2009년 제다 홍수 사태와 최근 수년간 계속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도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지난 11월4일 잇따른 고위직의 체포는 반부패위원회가 만들어진 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됐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전임 압둘라 국왕시절 국가의 주도권을 잡았던 세력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해석한다. 살만 국왕과 그의 이복형제들인 ‘수다이리 세븐’(초대 국왕의 부인 후사 알 수다이리의 아들 7명)은 왕실 핵심 세력으로서 압둘라 국왕 측 세력과 경쟁해왔다. 살만 국왕은 2015년 1월 즉위 직후 당시 무크린 왕세자가 부패하다는 이유로 퇴위시켰고, 올해 6월 무하마드 빈나예프 왕세자도 물러나게 했다. 2년 만에 왕세자를 2번 갈아치우고 친아들인 빈살만 왕자를 제 1왕위계승자 자리까지 올린 것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1953년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의 사후에 형제 상속으로 왕위가 이어진 사우디 왕가에서 손자 세대로 넘어가는 첫 사례다. 올해로 82세인 살만 국왕의 뒤를 이어 빈살만 왕세자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왕위를 승계하려면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를 원천봉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그간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카타르를 인정하지 않는 무하마드 왕세자의 외교노선과 국내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표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아랍권 최고 부호 빈탈라 왕자도 체포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파 숙청 과정에서 체포된 알왈리드 빈탈랄(62) 왕자는 압둘아지즈 사우디 초대 국왕의 손자이자 살만 국왕의 사촌으로 자산 규모가 180억달러(약 20조원)에 달하는 아랍권 최고 부호다. 그가 소유한 킹덤홀딩스는 디즈니, 21세기 폭스, 애플, GM 등 글로벌 기업들의 상당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할리우드 콘텐츠 메이저 21세기폭스와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또 빈탈랄은 최근 몇 년 사이 트위터,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Lyft), 시티그룹, 전 세계 곳곳의 최고급 호텔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며 사우디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은 빈탈랄이 일찌감치 애플과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내자 그를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하지만 빈탈랄은 사우디 왕실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웃사이더’에 속한다. 그의 아버지는 1960년대에 억압적인 사우디 왕가에 반기를 들었고 그 이후로 그의 가문은 왕위 계승 가능성에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빈탈랄은 계속해서 언젠가 그가 왕위에 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넌지시 비치곤 했다. 빈탈랄은 오마 샤리프 스타일의 콧수염에 늘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며 언론 매체에 노출되기를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소개했다. 그는 트위터에 “이제 여성이 운전해야 할 때가 왔다”는 글을 올리는 등 사우디 정부에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설전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후보를 겨냥해 “미국은 물론 공화당의 수치”라고 표현했다가, 최근에는 입장을 확 바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경제를 되살리고 있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최근 이집트를 여행하던 도중 영감이 꽂힌 듯 이집트 관광산업에 8억 달러(약 9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빈탈랄은 최근 서방 언론 인터뷰에서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의 기업 공개 준비를 둘러싼 문제점 등을 이야기해 빈살만 왕세자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아람코의 기업 공개는 사우디 정부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이다. 빈탈랄 왕자의 체포 사실이 전해지면서 사우디 증시에서 킹덤홀딩스의 주식은 3분기 실적 상승에도 10% 가까이 폭락했다.

사우디 경제 개혁 위한 필연적 선택인가
빈살만 왕세자가 단행한 ‘반(反)부패’ 대규모 숙청은 왕인 사우디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와 속도로 진행됐다. 지난 11월6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투자자와 전문가들은 숙청을 주도한 무함마드 왕세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가 순조로운 왕위 계승을 위해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했다는 분석도 일리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갑작스럽고 급진적인 방식을 택한 이유를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에 전문가들은 빈살만 왕세자가 왕위 계승은 물론 사우디 경제와 관련해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산유국 시대 이후를 바라보는 빈살만 왕세자로서는 국가가 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극약 처방을 했다는 것. 이와 관련, 브루스 리델 브루킹연구소 연구원은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기로에 서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리델 연구원은 “사우디 경제는 저유가 기조에 따라 지속적인 정체에 빠져 있다”며 “사우디가 개입한 예멘 내전은 수렁으로 빠졌고, 카타르 봉쇄는 실패했다. 레바논과 시리아, 이라크에는 이란의 영향력이 창궐하고 있다. 심지어 왕위 계승조차 물음표”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이 사우디 반세기 역사상 가장 불안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사우디는 저유가 장기화로 인한 재정난에 따라 이례적인 유류·식량·사회서비스 보조금 삭감을 고려한 바 있다. 하지만 강한 반대 여론에 부딪혀 결국 보류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자성 지출 중단이 현 사우디 경제에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7월 올해 사우디가 국내총생산(GDP)의 9.3%에 해당하는 재정적자를 남길 것이며 경제 성장률은 “0에 가까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살만 왕세자가 꺼내든 개혁의 카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우디가 석유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성장을 유지하려면 투명성과 국가 통제가 필수적이지만 지금까지 사우디 왕족은 이 두 요소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종종 이를 저해하기도 했다. 장 프랑수아 세즈넥 중동경제전문가는 “빈 살만 왕세자는 지금껏 법 위에 있던 왕족들을 법아래 둬야만 국가 전체에 세금 및 보조금과 관련한 태도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왕은 사우디 왕가의 치부를 알고 있다. 국왕은 부패한 것으로 알려진 왕족을 쳐서 전체 왕가가 투명성과 통제라는 개념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엄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즈넥 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는 이번 숙청을 통해 ‘앞으로 반부패라는 수단을 동원해 왕가를 훈육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했다. 다만 리델 연구원은 이 같은 분석이 틀리고, 왕세자 숙청이 정적 제거로만 비칠 경우 “(빈살만 왕세자는) 신임을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빈살만 왕자, 지난 18개월간 사우디 자유화 주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반부패위원회는 지난 11월4일 체포한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수십 명에 더해 추가 검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식통은 “며칠 사이에 왕족을 포함한 여러 명이 또 체포됐다”며 “왕세자의 칼날에 숙청되는 사람이 결국 수백 명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이터는 “이번에 체포된 사람 중에는 하급관리까지 있었다”며 “이는 빈살만 왕세자의 권력 결집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특히 동결 계좌 명단에는 빈살만의 사촌형이자 전 왕세자인 모하마드 빈 나예프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지병으로 사망한 술탄 빈 압둘아지즈 전 왕세자의 최측근도 대거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은 이번 대대적인 부패 혐의 수사 대상은 수백명으로 확대되었고, 동결된 사우디 국내 은행계좌수도 1700개 이상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혐의가 밝혀지면 연관된 돈은 모두 사우디 재무부로 상환되어 빈살만 왕세자의 개혁 작업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빈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 경제 탈피’를 화두로 내세우고 건설·관광 등으로 산업을 다각화하는 ‘비전 2030’을 주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SJ)는 “정부는 압류한 자산을 국고에 귀속시킬 것이라고 거듭 밝혀왔다”고 보도했다. 재정 지출이 늘어나고 글로벌 저유가 기조가 겹치면서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은 2014년 7300억달러(약 814조2000억원)에서 지난 8월 4876억달러(약 544조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사우디 당국이 체포한 왕자·기업인에 대해 국가사업에 ‘기여’하는 대가로 사면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해외에 숨겨진 자산이 많아 귀속 작업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WSJ는 8000억달러라는 금액이 워낙 커 조금만 압류에 성공해도 사우디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우디 국민은 벌써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그러나 왕국이 필요로 하는 자본과 전문성을 갖춘 서구 투자자들은 이번 캠페인이 사우디 현대화의 증거인지, 평소와 같은 독재 정치의 하나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에게 국제적 지지는 자국민의 의견만큼이나 중요하다. 이에 빈살만 왕세자는 국제적인 지지와 함께 자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난 18개월 동안 사우디 사회의 자유화를 주도해왔다. 그간 사우디는 여성이 남성의 지배를 받도록 하고, 화장실 출입 방법과 생리하는 여성의 행동방식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삶을 세세한 점까지 관리하는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였다. 이에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사회에서 전통적 가드레일을 신속하게 제거하는 중이다. 성차별을 집행해온 종교경찰은 사라졌고, 내년 6월부터는 여성들도 운전할 수 있다. 이미 남성 보호자 없이 레스토랑에서 모이는 여성들도 있으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조깅, 등산, 자전거를 타는 것 역시 인기다. 빈살만 왕세자는 40년 동안 금지됐던 영화 관람도 연말까지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책은 사우디 사회를 자유화하고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평가돼 더욱 주목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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