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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지루해진 문명시대에 대하여
2017년 11월 08일 (수) 02:05:09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이은주 한의사 / 생태주의 건강 성생활  

‘처음에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당시에 할일은 엄청나게 많은데 시간이 모자랐던 마콘도 사람들은 잠을 안 자게 되는 것을 오히려 즐거워했다. 어찌나 열심히들 일을 했던지 이내 할일이 더 이상 없게 되었고, 새벽 세시에 시계에서 나오는 왈츠의 음표들을 세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게 되었다. 피로 때문이 아니라 꿈이 그리워 잠을 자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피곤해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일종의 문명비평 소설인 <백년의 고독>에서 작가인 가브리엘 마르께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분주해지기 시작한 인류의 모습을 비유한 대목이다. 18-20세기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시기였을 것이다. 세계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대륙간 왕래도 활발해지면서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는 ‘인간의 고민’을 결정적으로 해결해준 것이 전기의 발명과 교통수단의 발달이었을 것이다. 전기를 활용하게 되면서 하루 중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빠른 교통수단이 등장하면서 일할 수 있는 공간도 크게 확장되었다. 이후 급속도로 발달한 자동화 시스템이나 컴퓨터망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더욱 확장된 지금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절대 수단이었다. 그러나 의식주라는 수요가 채워지고 난 뒤 인류에게는 이제 시간이 남아돌고 있다. 소설 속에서 지구촌을 상징하는 마콘도라는 가상 마을의 사람들은 지루하게 남아도는 어떻게 사용했는지 보자. 

‘함께 모여 앉아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고, 똑같은 농담을 몇 시간씩이나 되풀이하고, 거세시킨 수탉 얘기를 신경질이 날 정도까지 비비 꼬아서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얘기하는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거세시킨 수탉 얘기를 또 들려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얘기를 듣는 사람이 그러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듣고 싶다고 대답하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중략) 그런 식으로 며칠 밤이 새도록 지속되는 지독한 모임에서 밑도 끝도 없는 장난을 쳐대곤 했다.’  소설책 한 페이지를 거의 다 차지하는 이 길고 지루한 문장만큼이나 현대인들은 너무나 뻔하고 지루한 일상에 갇혀 있다. 의식주는 해결되었지만, 자기 존재의미를 찾기 어려운 지루한 일상은 새로운 감옥이다.
문제는, 이처럼 한가해지고도 인류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느냐에 있다. 궁핍이 해결되었다는 측면만으로 보면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모두 행복해야 하는데, 과히 그렇지 못하다. 사회적 에너지가 남아돌 때 인간사회는 본능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식도락이나 패션, 성형, 레저 여행, 스포츠, 컴퓨터 게임 같은 것이 사회의 기간산업을 대체해가는 것도 필연적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소위 엘리트들이 모여 심각하게 말싸움을 이어가는 정쟁(政爭) 같은 것도 실상은 거세시킨 수탉에 관한 얘기를 다시 하고 다시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이런 오락들을 통해 사회의 욕구불만을 충분히 해소시키지 못할 경우에 테러와 전쟁 같은 극단적 ‘게임’이 벌어진 예가 많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막말대결이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것도 거기에 다분히 게임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러한 게임들은 실제 위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성(性)은 즐거운 소일거리로 훌륭한 수단이 되곤 했다. 적어도 20세기까지는 거기에 종족보존이라는 생산적 가치도 수반되었다. 로맨스는 쾌락의 수단이고 사회를 부드럽게 달궈주는 수단이며 동시에 화해와 친화감을 높여주는 데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극단화로 치닫는 사회의 흐름을 그 반대편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21세기는 더 이상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틋한 사랑이 대립된 종족들을 화해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사랑과 성에 대한 흥미조차 시들해진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극장가를 예로 들면, 로맨스 영화는 폭력 괴기 전쟁영화나 과학상상 영화들 틈에서 겨우 한 부분을 간신히 지켜가는 수준이다.
로맨스나 에로 영화가 다시 관심을 끌 수 있다면, 날로 예민해져가는 지구촌의 긴장과 각박한 냉기류는 다시 화해의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21세기의 새로운 낭만주의 혁명을 간절히 고대해 본다. NM

▲ 이은주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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