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가을이 오면 ‘코스모스 작가’로 유명한 김요희 작가는 어김없이 개인전을 연다. 가느다란 줄기 끝에 핀 여덟 장의 꽃잎으로 가을의 문턱을 기분 좋게 넘어서는 것이다. 파란 하늘을 향한 꽃잎처럼 삶에 지친 우리를 탁 트인 무한대로 이끌어주는 그의 작품을 뉴스메이커가 소개한다.
신선영 기자 ssy@
심향(心香), 심향(心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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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요희 작가. |
김요희 작가가 코스모스를 그린지도 이십 년이 되어 간다 . 그만큼 시각을 뛰어넘는 강한 에너지가 그의 작품에 내재돼 있다 . 바로 향기에 내재된 에너지다 . 사실 코스모스는 무향에 가까울 정도로 향이 약해서 가까이 다가가도 풀 향기만 맡아질 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기를 잡아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그건 코스모스가 느끼는 온도 , 습도 , 바람뿐 아니라 심상까지 잡아냈다는 말일 거다 .
“초기에는 코스모스가 한 다발을 이룰 정도로 많은 양을 그렸어요. 묘사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그렸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섯 송이나 세 송이만 단출하게 그리고 묘사도 한 발짝 떨어져서 배경을 중시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것이 코스모스라고 설명하는 그림이 아니라 코스모스의 말이 전해지는 그림, 호흡이 감지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 열네 번째 개인전에 심향(心香)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에요.”
<The fragrance of Cosmos>로 일관해오던 전시 주제에 <심향>을 붙여 지난 구월 인사동 갤러리그림손에서 <The fragrance of Cosmos & 심향> 전을 열었다. 바람과 함께 태어나 바람 속으로 사라지지만 그 흔들거림 속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코스모스의 모습을 삼십 점 선보였다. 그 모습이 인간과 동일한 차원에 자리 잡으며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제가 코스모스를 그리는 이유는 생명력과 적응력 때문이에요. 가느다란 줄기에 비해 큰 꽃을 피우면서도 부러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석 달 열흘 아이처럼 곱게 키워내거든요. 또 척박한 도로 옆이나 모래에 자생하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손 인사를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예쁘다고 해서 꽃꽂이를 하려 했다간 금방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사진이나 그림으로밖에 간직할 수 없는 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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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The fragrance of cosmos, 100.0x45.0cm, watercolor on paper, 2017. |
코스모스는 땅의 힘이 없이는 살지 못할 뿐더러, 다른 꽃과 어울려 화려함을 겨루는 꽃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견딜 때 더 아름다운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 자리에 있을 때 존재의 가치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심향(心鄕)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소박하고 순수한 감성이 자연에 기거하고픈 한국인의 정서와 맞아 떨어졌다. 물론 작가 자신에게도 그렇다.
“제 지인들이 제가 작품과 많이 닮았다고 하세요. 화려한 장식용 꽃보다 수수한 들꽃을 좋아하고, 정면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보다 측면에서 제 역할 하는 걸 좋아하고, 틀이 있어 규정된 것 보다 틀이 없어 자유로운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코스모스가 작아지면서 가로 밀려나게 됐고 배경이 많아지면서 표현에 대한 비중이 커졌어요. 거기에 수채화만의 물맛이 충분히 살아나면서 해방감 내지는 해소감이 더해지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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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fragrance of cosmos, 110.0x30.0cm, watercolor on paper, 2017. |
수채화로 그린 수묵화의 미
김요희 작가가 물맛을 잘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묵의 미감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짐과 얼룩을 이용한 추상 효과와 진묵과 담묵을 이용한 대비 효과가 그의 작품에 교차돼 있다. 여기에 난을 치듯 그린 코스모스의 동양미가 더해져 김요희 작가의 작품이라 할 만한 독특한 화풍이 완성됐다.
“아버지께서 묵 가는 일을 제게 시키셨어요. 어린 나이에 나가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갈다 보니 금세 묵향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동양화 대신 서양화를 선택했는데도 수채화를 고집하는 걸 보면 어깨너머 배운 아버지의 정서가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에요. 요즘은 아버지와 나들이를 다녔던 퇴촌 호숫가를 그리고 있어요. 눈이 뒤덮이고 석양이 뒤덮인 겨울 설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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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향, 130.0x40.0cm, watercolor on paper, 2017. |
죽은 대지 위로 눈이 내리고 빛이 내리는 광경이다. 지나간 시간을 덮고 새로운 시간을 맞는 것이 자연의 미덕이라면 설경의 석양만큼 성숙한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슬픔이 깊은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고 절망이 깊은 사람에게는 희망이 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추억이 깊은 장소인 만큼 오랫동안 구상해서 이번에 첫 선을 보인 설경은 코스모스 못지않게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선보일 계획이다.
“개인전을 열 때마다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음 개인전을 열 때 또 다른 최선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감흥을 얻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해석을 열어주는 관객들 덕분이에요. 그래서 이번이 열네 번째 개인전이었는데도 여전히 설레고 가슴 뛰었어요. 그 기분이 오래 전해지도록 더 많은 향기를 채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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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향, 70.0x25.0cm, watercolor on paper, 2017. |
김요희 작가는 지금까지 열네 번의 개인전과 백오십여 회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회화대전, 국제문화미술대전, 한국수채화공모전, 대한민국녹색미술회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서울시 미술장식 심의위원, 대한민국 환경수채화공모전 운영위원 겸 심의위원, 서울여성미술대전 운영위원 겸 심사위원, 대한민국어린이환경미술공모전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갤러리녹색 관장과 예원예술대학교와 대구예술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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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향, 90.0x30.0cm, watercolor on paper,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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