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사 주지 원경스님의 행보가 화제다. 원경스님은 지난 4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45회 원로회의에서 지난해 9월 입적한 무진장 대종사의 후임 원로의원에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황태일 기자 hti@

▲ 원경스님은 제45회 원로회의에서 지난해 9월 입적한 무진장 대종사의 후임 원로의원에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원로의회는 종법을 다루는 종단의 최고의결기구로서, 그 일원이 되는 것은 대단히 영예로운 자리다. 원경스님이 신임 원로의원에 선출된 것은 그간 원경스님의 오랜 수행과 정진이 종단에서 인정받은 결과다. 원경스님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원로회의서 만장일치로 신임 원로의원에 선출
조계종은 전국적으로 25개 본사가 있다. 한 교구에 한 사람이 있는 것이 원칙으로, 전국에 25명의 원로의원이 존재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격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나이로는 70세, 법랍은 45년 이상이 되어야 하고, 그 조건 안에서 종회에서 심의를 하고 추천을 한 뒤 원로의원 큰스님들이 인준을 한다. 원경스님은 “원로의회는 종법을 다루는 최고의결기구예요. 종정스님을 추대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반대로 종정스님을 해임할 수도 있습니다. 종회를 해산할 수도 있고, 해산했을 때 대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또 투표로 뽑는 총무원장도 인준권한은 원로회의에 있지요”면서 “이번 신임 원로의원 선출로 어깨가 무거워진 느낌입니다. 저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요. 이제부터라도 종법을 공부하고 선배 큰스님들 말씀을 따라가면서, 남은 생에 마지막으로 종단과 종도를 위해 일하라고 길을 열어주신 것 같아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오랜 수행과 정진이 종단에서 인정받은 결과
제45회 원로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원로의원에 선출

▲ 원경스님은‘비운의 혁명가’로 불리는 故 이정 박헌영(1900~1956) 선생의 유일한 피붙이다

제45회 원로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신임 원로의원에 선출된 원경스님은 정은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0년 용화사에서 전강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63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용화선원에서 수선안거한 이래 26안거를 성만한 원경스님은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수료했으며, 제 10대 중앙종회의원, 흥왕사, 청룡사, 신륵사 주지, 경기도 지방경찰청 경승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제2교구 본사 용주사 말사 만기사 주지를 맡고 있다.

‘비운의 혁명가’ 故 이정 박헌영 선생
원경스님은 한국 근현대사 공산주의 운동의 핵심인물로 ‘비운의 혁명가’로 불리는 故 이정 박헌영(1900~1956) 선생의 유일한 피붙이다. 이정(而丁)이라는 호가 말해주듯, 박헌영 선생은 민중의 고무래가 되고자 했다. 원경스님은 “썩어 빠진 역사의 검불들을 불사르고,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세우고자 했던 것”이라며 “선친의 호인 이정은 ‘써레와 망치’모양으로써 농민과 노동자를 뜻하는 동시에 스스로 ‘이놈’이라고 호칭하던 것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의 레닌’으로 불리고, 조선공산당 최고지도자였던 박헌영 선생. 그러나 남측으로부터는 ‘빨갱이 중의 빨갱이’로, 북측에서는 ‘미 제국주의 간첩’으로 몰려야 했다. 김일성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고, 1958년 세상을 떠난 이후 남북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였다. 식민, 분단으로 점철된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박헌영 선생. 모두는 아니지만 적어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사실을 직시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박헌영 선생은 ‘비운의 혁명가’로 남아 있다. 일제하에서 독립운동, 광복 후에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한 박헌영 선생은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이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자 애쓴 민주주의자이기도 했다. 박헌영 선생은 경성 보통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이후 1921년 독립운동가 여운형 등이 주도한 이르쿠츠파에 입당했지만 1922년 징역형을 받고 이후 10여 년 동안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면서 고문을 받아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박헌영 선생을 ‘매우 불경스런 당대 최고의 공산주의자’로 평가하고 있지만 당시 박헌영 선생은 대통령 선호도에서 1위를 기록할 만큼 민중의 지지로 받고 있던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 미국 군용기를 타고 귀국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민족통일문제를 놓고 회담하기도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의 즉각 숙청에 반대하며 독립국가 수립을 뒤로 미루자고 했고, 박헌영 선생은 친일파 숙청은 잠시도 미룰 수 없는 민족의 엄숙한 명령이라 반박했지만 결국 그의 요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후 1946년에는 미군정의 체포령과 김일성의 권유로 월북, 내각의 부총리 겸 외무장관,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에서도 김일성과 1,2인자를 다툴 만큼 영향력을 끼쳤으며 북한의 김일성 체제 확립에 기여했다. 그러나 1952년 말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남로당 숙청작업 때 ‘미제국주의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기도’등의 혐의로 기소되었고 박헌영 선생을 살리려는 중국의 마오쩌둥과 소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1956년 처형당했다. 이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으나 대체로 김일성의 대대적인 정적 숙청작업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됐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타당성을 얻고 있다.

 박헌영 선생은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이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자 애쓴 민주주의자

▲ 故 이정 박헌영(1900~1956) 선생

원경스님은 “선친은 경성고보 다니면서 YMCA에서 영어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넓은 세상에 나가려는 열망이 있으셨던 겁니다. 미국에 가서 큰 세상을 보고 조국 독립에 이바지하려 했는데, 3·1운동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지셨어요”라며 “독립선언을 낭독한 많은 인사들이 자수해버린 후에 구심점이 없어졌던 상황을 매우 실망스럽게 느꼈고, 그때 소비에트 볼셰비키 혁명 소식을 듣게 되었죠. 민중이 제국을 무너뜨리는 상황을 보면서 ‘여기 미국 외에 우리 민족이 독립을 함께 할 수 있는 큰 세계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후 상해로 망명해 도서관에서 영문으로 된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고 사회주의 이념에 깊이 빠져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해방 후 박헌영 선생은 미군정과도 다투면서 “왜 우리 조선공산당을 탄압하느냐, 우리는 언제든지 당신들(연합국)과 손잡을 수 있는데 어찌 미군정은 친일파와 매국노를 앞세워 통일 조국 건설에 몸부림치고 있는 조선공산당을 탄압하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박헌영 선생은 당시 이승만 박사와도 조국 건설에 같이 이바지하자고 뜻을 모았다. 원경스님은 “두 사람은 친일파의 단죄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며 “이후 ‘정판사 사건’으로 아버지가 쫓기다가 월북을 했다고 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 사건은 음모였을 겁니다. 찍어냈다는 말이 나오고 위조지폐도 사실과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어요”고 덧붙였다.

박헌영 선생의 아들로 산다는 것
박헌영 선생의 유일한 혈육임에도 원경스님이 아버지를 만난 것은 단 여섯 차례에 불과하다. 원경스님은 “사실 남들처럼 아버지 품에서 얘기를 들으며 살지 못했습니다”며 “독립운동 하다가 수없이 감옥에 들어가시고, 나와서 또 독립운동을 하시려고 곳곳에 조직을 만들며 활동하시던 중에 제가 태어난 것입니다. 저에게는 어릴 적 두 번 정도 품에 안긴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민족운동가였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원경스님의 삶도 평탄치만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영특함을 보인 원경스님을, 아버지의 옛 동료들은 혹시나 화를 입을까 염려해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전쟁 중에는 지리산에서 생활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운명의 혹독함을 몸으로 느껴야 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부득이하게 박헌영 선생의 친자임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겨우 열 살 남짓 되었을 때부터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박헌영 선생이 미군 체포령에 쫓겨 월북한 뒤 원경스님을 돌봐준 사람들이 하나둘씩 체포됐다. 자전거에 저를 태워 동국대학교, 남산 등의 장충동 일대를 구경시켜주며 찐빵을 사주었던 김삼룡(사회주의 운동가), 만날 때마다 귀여워 해주었던 이주하(사회주의 운동가) 아저씨가 6.25 한국전쟁 직후 사형 당했다. 화엄사에서 원경스님의 머리를 삭발해주었던 동월스님은 지리산에서 내려오다 경찰에 잡혀 유치장에 있던 저를 구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빨치산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원경스님은 “일제 강점기 때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하더니, 해방 후엔 아버지는 죄인이고 무서운 사람이니 아들이라 말해서도 안 된다고 해요. 대체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 사람들은 왜 나를 살리려고 하고, 끝내 비극의 죽음을 맞는가!”라며 “청암사, 해인사를 거쳐 예산 대련사에 머물던 1958년 12월 15일 한산스님이 찾아와 제사상을 차렸는데, ‘박헌영 영가’라 쓰인 위패를 보고 그때 처음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여쭤보았죠”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만난 것은 단 여섯 차례 호적이 없어 친구 신분으로 해군특수부대 입대하기도

▲ 우리 민족이 지닌 오랜 슬픔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은 시집 <못다 부른 노래>

원경스님이 재판을 통해 ‘박병삼’이라는 본명을 회복한 지는 몇 해 되지 않는다. 호적이 없었던 그는 친구의 신분으로 해군특수부대에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에 대해 원경스님은 “요즘처럼 지문을 사용해서 주민등록을 하는 시대가 아니었죠. 저는 신분이 들통 나면 안 된다는 압박감 속에 살았는데, 이걸 피해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군대더라고요. 그런데 호적이 없으니 처리가 안 되죠”라며 “친구가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다는데 그게 부러웠어요. 친구에게 ‘내가 대신 검사받을까’라고 했죠. 그때는 그게 가능했어요. 신체검사를 받고 그 친구 이름으로 해군 72기가 됐습니다. 그곳에서 또 UDT지원병을 뽑았는데, 기왕이면 특수부대에 가고 싶어 UDT가 됐어요. 나중에 친구 이름으로 대리 입대한 사실이 확인됐고, 저는 일이 더 크게 터지기 전에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망 나왔어요. 요즘처럼 엄격하다면 탈영이죠. 그렇게 나와서 어디 의지할 곳도 없으니 다시 부처님 품으로 돌아왔어요”라고 덧붙였다. 탈영 후 수덕사에서 생활하다 어머니와도 상봉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원경스님은 “처음 봤는데도 한 눈에 어머니인줄 알았어요. 사진으로 봤으니까. 처음 뵙는데 다리가 떨리더군요.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거든요. 몸이 휘청해서 주저앉았어요”라고 회고했다.

부친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책으로 출간
원경스님이 부친인 박헌영 선생의 모습을 기억하는 첫 만남은 1945년 과천에서 이순금 여사(사회주의 운동가 김삼룡 선생의 부인)와 함께 했을 때다. 그 후 장충동과 예지동 사이 곡물가게에서 활동했는데 그곳이 김삼룡 선생의 아지트였던 것이다. 얼마 후 경찰에 의해 그곳 사람들이 검거되었고 원경스님은 한산스님에게 맡겨졌다. 그때부터 유랑인생이 시작되었다. 병삼, 유동, 세원, 현준, 일우, 명초, 성진, 혁, 원경 등 이름만 14개가 말해주듯 가는 곳마다 신분을 숨겨야 했다. 원경스님은 “충북 단양 구인사에서 상월 원각스님을 만났을 때가 기억납니다”면서 “잠시 머무는 동안 글공부를 했는데 28일 만에 천자문을 떼자 한산스님이 ‘아이가 영특하니 이곳에서 교육하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1960년 인천 용화사에서 송담 스님을 통해 수계 후 승려가 됐습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958년 부친의 사형 소식을 알게 된 그는 큰 충격을 받아 승복을 벗고 방황을 시작했다. 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로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한산스님은 “송담 큰스님을 통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중 되지 말아라, 그 스님만이 너의 한 많은 인생을 제도해주실 분이다. 학교 못 다닌 것 원망 말고 만권의 책을 읽어라.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가 되기를 발원하고, 훗날 좋은 세상이 오면 아버지의 자료를 모아 책으로 엮어만 놓는다면 저 세상으로 가신 선생님도 기뻐하실 것이다”고 방황하는 그를 잡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날로 커지는 원망을 원경스님은 불경을 공부하고 참선하는 동안 승화시키고, 1960년 인천 용화사에서 정식 출가하면서 진정한 불제자가 되었다. 여주 서래암, 안성 청룡사, 여주 신륵사 주지를 거쳐 평택의 만기사로 온 것은 지난 1995년이다.

세상을 향한 원망을 불경 공부와 참선으로 승화 1960년 인천 용화사에서 정식 출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원경스님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좇아가며 행적을 정리한 <이정 박헌영 자료전집>과 아버지를 향한 못 다한 그리움과 이데올로기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져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우리 민족이 지닌 오랜 슬픔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은 시집<못다 부른 노래>를 출간했다. 지난 2010년 출간한 두 권짜리 시집 <못다 부른 노래>는 원경스님이 고희를 기념하며 20~30년 동안 썼던 시를 엮은 것이다.  조금 더 일찍 출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원경스님은 “한산스님은 글 쓰는 것을 삼가라 하셨습니다. 무심히 튀어나오는 저의 저항적 언구가 화를 불러 올 수 있을 것이라 내다 본 거예요”라며 “독재정권 시절 ‘박헌영’을 추모하고, ‘연좌제’에 분통을 터뜨리는 글을 세상에 내놓았다면 스님이라 해도 온전치 못했겠죠”라고 밝혔다. 원경스님은 사실 <못다 부른 노래>를 책으로 출간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 500편 남짓 되는 분량의 시를 모아 손으로 대충 써서 정리한 것을 복사해 가까운 지인들에게 몇 부 나누어줬는데, 어떤 이는 자신이 일하는 시 문예지에 20~30편을 발췌해 싣는가 하면, 시인 김지하 등은 “아예 정식 시집으로 만들어 세상에 다녀간 흔적을 남겨보라”고 강권했다. 그렇게 출간한 <못다 부른 노래>에는 원경스님이 그간 차마 말로 다 풀어 놓을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 박헌영 선생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승직과 박헌영 ‘독립운동가’로 재조명 되어야
원경스님은 ‘박승직’이라는 인물을 ‘독립운동가’로서 재조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승직 상점은 현 두산그룹의 전신으로, 일제강점기에 국채보상운동을 펼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독립운동 자금에 지원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승직은 조선총독부에 기부금 1만원을 낸 것을 친일적인 행위로 간주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원경스님은 “박승직은 당시 상권을 가진 단체의 회장을 했어요. 그때에 돈을 거둬 1만원을 총독부에 냈던 것이고요. 당시 기업인으로서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그 어른이 고종황제 제사도 지내고 했던 분이지만 일본 총독부 산하에 상권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죠”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에 박승직에 관한 소식을 듣고 원경스님은 민족문제연구소에 탄원서를 냈다. 박승직이 조국 독립을 위해 사람들을 많이 도왔는데, 논문 한 구절 가지고 친일파로 기록을 하기보다 심의를 보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측에서는 ‘문헌 자료를 찾아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원경스님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것을 어떻게 자료를 남길 수 있었겠어요? 독립운동 자체가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오히려 가짜라고 생각해요”고 답했다.

“시대의 불운한 정치인 박헌영에 대한 재평가는 후대의 몫이자 역사의 몫”

이제 원경스님은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노동운동가, 혁명가, 정치가로 일컬어지는 박헌영 선생의 다양한 활동 중에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역할만은 인정해 달라”고 말한다. 그가 지난 2004년 9년 동안 작업한 <이정 박헌영 자료전집>을 완간하여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사료로 활용하게 한 것도 그러한 맥락의 일환이다. 원경스님은 “이제 홀가분합니다. 북에서도, 남에서도 버림받은 시대의 불운한 정치인 박헌영에 대한 재평가는 저의 몫이 아니라 후대의 몫이자 역사의 몫”이라며 “훗날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통일이 된다면 아버지에 대한 학술적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고 전했다. 올해로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도, 남북이 분단된 지도 벌써 69년. 이러한 분단 상황과 통일 논의에 대해 원경스님은 “남북이 서로 통일 얘기를 하지만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통일이 쉽겠습니까. 국내에서라도 정치권의 여야가 손잡고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셨으면 합니다”며 “입으로만 통일을 말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좋은 정치로 단단히 힘을 키우면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다 알아서 처리하지 않겠어요?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서로가 의견이 다르면 원수처럼 증오하고 있습니다. 이 병은 반드시 치유돼야 합니다. 통일이라는 ‘말만 써먹을 게’ 아니라 민생을 살리는 정치가 되어야 통일도 앞당겨지리라 생각합니다”고 강조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