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작가가 그린 여성은 시선을 사로잡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 여인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늘씬한 몸매에 시선이 사로잡히기도 하고, 화려한 드레스에 시선이 사로잡히기도 하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게 된다. 관객들에게 시선을 인지시킴으로써 욕망을 파악하게 하는 것, 이것이 그의 작품을 결코 가볍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선영 기자 ssy@

여성을 바라보다

▲ 이현 작가.

미술가들이 그린 여성에는 그 시대의 미적 기준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그 일련을 살펴보면, 과거 미술가들이 지덕체를 겸비한 여성을 미적 기준으로 삼았다면 현대 미술가들은 사회적 지위까지 겸비한 여성을 미적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현 작가가 그린 여성도 그렇다. 여성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남성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의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현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면의 어떤 것이다. 여성은 여성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엄격해지는 잣대를 뚫고 나오기 위해 송곳 같은 속성을 품어야 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비 평등에서 평등으로, 약자에서 강자로 진입하는 장벽을 깨기 위해 첨예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심리를 묘사한 것이 이현 작가의 작품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묘사에 대한 차별성은 도형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삼각형은 꼭짓점을 위로 올려놓으면 모서리에 의해 공격하는 형태가 되고, 꼭짓점을 아래로 내려놓으면 불균형에 의해 넘어질 것 같은 형태가 된다는 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됐다. 이 이중적인 형태가 현대 여성의 날카로우면서도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대변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에서 다각도로 회전해서 다양한 패턴을 만들었다.

▲ 춤추는 바람의 노래, 130x97cm, mixed media on arsh, 2016.

패턴은 드레스, 장신구, 탁자, 화병, 책, 담요, 액자 등 모든 것을 도식하며 그 나름대로의 질서로 여성을 에워싸고 있다. 매우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로 여인을 자연스럽게 부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패턴을 수용한다는 것은 “나의 불안을 안정된 삶으로 바꾸기 위해서 불안한 감정을 밀어내고 다시 그 위로 치고 올라가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써 꼼꼼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외면에서 내면으로 이어지는 시선의 깊이는 더 깊은 몰입으로 들어간다. 여성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고독에 대해서다. 여성은 사회의 부당한 요구나 남성의 물리적 무력 앞에 열세한 존재라는 박탈감, 그리고 그 박탈감이 야기하는 고독을 근저에 깔고 있다. 화려한 치장과는 상반되게 드러나는 검디검은 피부가 이슬람 여성이 두른 전통 복식 부르카처럼 먹먹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조각1, 100x80cm, mixed media on arsh, 2017.

시선을 넘어서다
수십 년 동안 여성이자 여성 작가로 살아오면서 느낀 소회를 작품에 밀어 넣었듯이, 작품 속 여성은 이현 작가와 일체화되는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십 호에서 팔십 호에 이르는 캔버스를 가는 세필로 채우는 수고스러움도 오롯이 감내해온 것이다. 작품 속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몸의 체취도 이현 작가가 수십 번씩 덧칠해서 만든 수공의 산물이다.

여기에 자로 잰 듯 정교하게 채운 아크릴의 밀도감, 원색의 보색 대비에서 오는 색채간의 긴장감, 각도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보석의 영롱함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작품에 몰입감을 더했다. 또 눈코입이 없는 검기만한 얼굴이지만 의식적으로 관객을 쳐다보지 않으려는 무심함도 관객의 시선을 주목시키기 충분했다. 시선에 대한 관심을 받기 위해 시선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것이 이현 작가의 의도적 제스처다.

▲ 기억의 공간, 100x80cm, mixed media on arsh, 2017.

지난 구월 열린 여섯 번째 개인전이 <시선, 내가 나를 본다 그 시작에서>였던 것을 감안하면 여성은 논지의 대상이었을 뿐, 정말 의도했던 건 시선의 공론화였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시선, 대상의 시선, 관객의 시선이 삼각형을 이뤘을 때 비로소 작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처럼, 시선은 시선과의 연대를 통해 이뤄진다는 걸 관객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삼각형을 여러 개 모으면 원형도 샤각형도 만들 수 있듯이 상징적 언어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현 작가는 “먼지만큼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하나의 개체를 형성하듯, 어울림에서 시작되는 설렘이 또 하나의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길 기대한다”면서 “삼각형들이 서로 마주 잡으면 뒤집어져도 안정된 형태를 유지한다는 다소 억지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작업 의도를 설명했다. 결국 여성도 약자도 우리 감성의 문제인 것이다.  NM

▲ 愛心2, 145x112cm, mixed media on arsh,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