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술의 영역을 접할 때 ‘존재의 탐구’라는 말을 자주 들어본다. 실제로 상당수의 예술가들이 예술성을 추구하거나, 예술행위를 하는 동기로 존재에 대한 고민을 거론한다. 세상의 존재에 대해,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세상과 나의 관계에 대해 등 그 범주도 다양하다.

장정미 기자 his@

예술은 가장 순수하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이에 예술가들은 그 최고의 수단을 활용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우주 속의 인간은 깨알 같은 존재로, 역사적, 문화적, 실존적 행위들은 자연을 통해 나타나는데, 예술가들은 이러한 인간의 실제적 특징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양한 매개체 통해 내면의 의식 형상화

▲ 화가 윤은자

서양화가 윤은자는 자신의 즉흥적인 감정과 내면의 의식을 회화 및 판화를 통해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는 작가다. 작가 윤은자는 우주의 섭리라는 큰 틀 안에서 삶과 죽음의 연속성에 존재하는 나의 내면 안, 무형의 공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마티에르가 느껴지는 그의 추상적인 화면 안에는 우연적인 형상과 의도적인 형상이 합쳐져 있다. 붓을 이용해 먹을 떨어뜨리거나 일필휘지로 한 획을 긋는 것과 같은 생생한 표현을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한 순간이 포착된 듯 작가의 신체적인 활동이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드러나는 불확실한 표현과 정형성을 벗어난 비정형적인 표현들은 얽매여있던 의식의 틀을 깨준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즉흥적으로 다양한 매체로 옮기는 것은 신체가 도구가 되는 오토마티즘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오토마티즘과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인해 화면 위에 드러나는 흔적은 작가의 주관과 감정을 반영하는 일련의 과정 안에 놓인다.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자유자재로 드러나는 화면의 역동성은 경쾌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미완성의 느낌을 연출함으로써 여백이 주는 감상의 묘미를 제공한다. 이러한 작업과정에 대해 작가 윤은자는 “내가 작업을 하는 동안 형태는 현실화 되어 간다”면서 “바꾸어 말하면 내가 그림을 그리려 한다기보다는 작업을 시작해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림이 붓 아래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혹은 나에게 암시를 하며 단단히 자리를 잡아간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회화의 과정이 1차 작업이라면 판화의 속성은 2차 작업이다. 과정으로서의 드로잉의 속성과 완성으로서의 판화의 속성을 결합시키는 일은 작가 윤은자의 작업이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모노타이프와 리소그래피처럼 비교적 회화성을 가진 기법을 살려 표현하기도 하고 에칭(Etching)처럼 계획성이 필요한 기법을 통해 단색의 섬세한 표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작가는 판화가 가진 기법에 다른 고유한 특성을 살리되 회화에서의 우연적인 형상이 가진 원시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한다.

자유롭고 순수한 예술 작품의 창조 위하여

▲ 바람의 노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진부한 시간적 자존에 대한 물음 앞에서 무너지고 또 무너지며 토해져 나오는 절고, 나의 실존, 나의 자존. 창작을 통해 내 세상을 드러내고, 내 존재를 확인하고자 했던 몸부림을, 본질 속에서 찾아내고 생각대로 살아지기를 원하지만, 오히려 나는 사는 대로 생각되어지고 말았다.” 작가 윤은자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다. 진정한 예술은 나를 찾았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화면 곳곳에 녹아든 실존과 명상의 결과물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보편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다. 현실의 가시적인 세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는 작품의 한 과정임과 동시에 결과가 되어 종이 위에 드러난다.

작가 윤은자는 “최고의 즐거움은 창조에 있는데, 나의 내면은 오히려 늘 어둡다”면서 “나를 전부 토해 내기란 어렵다. 뱉어낸들 어떠한 표현방식이 되어지는지 채워지는 건 언어와도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無의 상태에서 흑과 백의 속에서 자신만의 내면을 가진 선으로 한 점, 한 획이 우주적 에네르기의 분출이 되고, 화면의 물리적 공간이 우주와 그의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그림의 원류는 인간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소박하게 쓰는 행위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며,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시야를 가지고 자유스럽고 순수한 예술 작품의 창조를 목표로 자기 자신을 깊고 깊게 표현해내고 있는 작가 윤은자.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여러 가지 재료와 방법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내면의 모습을 다채롭게 표현해 나가고 있는 그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