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시정연구원 이교식 원장

역사를 망각하는 국민에게 내일은 없다. 요즘 북핵문제를 둘러싼 요즘 우리 현실을 바라보면서 조선시대 비운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당파싸움으로 냉엄한 국제정세에 눈멀고 국력을 상실한 채 맞은 임진왜란. 온 나라가 초토가 되고 온 백성이 유린당하는 고통을 겪은 지 불과 29년 만에 다시 정묘호란을, 그리고 다시 불과 9년 뒤 병자호란을 겪는다. 역사가들은 명분과 논쟁은 있었으나 국익과 백성의 안위에 대한 대안은 없었음을 비극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로부터 300여년 후 조선의 위정자들은 똑같은 전철을 밟으며 일제에게 백성과 나라를 송두리째 내주고 만다. 위정자들의 당리당략과 국제정세의 변화를 외면한 무지가 얼마나 많은 백성들을 죽음과 고통의 나락으로 내몰았는가.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뒷전인 우려들

최근 일각에서 정부와 여당이 북핵 사태를 계기로 "안보를 활용해 국면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와 같은 논리로 정부의 대북정책을 매도하거나, 심지어는 북핵 위기는 외면한 채 벌써부터 노 전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내년 지방선거와 연결시키면서 당리당략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얘기까지 회자되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심각한 우려와 함께 비극적인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은 국가적 슬픔이며, 온 국민이 추모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반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고조되고 있는 도발은 노 전대통령의 죽음과 연결시켜 생각해서는 안될 국운이 걸린 중대사이다. 북한은 한편으로는 조의를 표하면서 가장 위협적인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더구나 노무현 전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과 10.4 공동선언을 했던 당사자가 아닌가.
 더욱이 이달 31일은 제주도에서 한아세안 정상회담이 열릴 계획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난 해부터 몰아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딛고 막 일어서려는 순간이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북한의 도발로 국내외 투자와 경기회복의 노력이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외적이 도발해오는 순간까지도 탁상공론과 당파싸움으로 혼미했던 암울한 역사를 되풀이할 것인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까지는 여야가 있고,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익과 국민의 안위가 걸린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분열이나 당리당략도 용납될 수 없다.

명약관화한 북한의 자가당착적 핵도발

 북한의 의도는 분명하다. 대북정책 전문가들과 외교안보전문가들은 북한의 의도를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남북협력이나 평화는 안중에도 없다는 점이다. 70년대 7.4남북공동 성명 이후 수없이 반복해온 약속과 대화의 파기가 그 증거이다.
 둘째, 북한은 수없이 반복되어온 정전협정 무시, 또는 폐기를 도발논리로 앞세우고 있다. 지금 북한은 핵도발 명분 중 하나로 우리나라가 UN을 비롯, 전세계적인 평화유지의 흐름인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한 것을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억지논리로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고 나서고 있다. 이미 많은 대북전문가들과 학자들은 수없이 억지논리로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가려 했던 북한의 의도와 위험성을 누누이 지적해왔다.
 셋째, 김정일 위원장의 이른바 '2012년 강성대국의 황금문패' 약속에 대한 조급함과 경제위기, 후계구도 등 북한의 심각한 내부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는 이미 김일성 사망 전후를 둘러싼 내부혼란과 후계구도와 관련되었던 1994년 1차 북핵 위기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끝으로 미국과의 6자회담 폐기 이후 오바마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도 내포하고 있다. 94년에 북한의 핵도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핵무장선언으로 시작되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북한은 95년 NPT체제를 영구조약으로 전환시키려는 미국의 바쁜 발걸음에 제동을 걸면서 미국을 압박했다. 현재 미국 오바마 정부는 핵확산 방지를 주요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데다가 2010년 NPT 평가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장이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의 핵무장 명분을 제공한다는 점도 미국 압박의 계산에 넣고 있을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에는 여야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북핵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더구나 정부의 북핵 위기 대응을 '정권안보 이용', 또는 '국면전환' 운운은 외적이 도발하는 순간까지 당파싸움에 밤을 지샜던 우매한 역사의 전철을 밟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는 이미 북한의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는 차원에서 국가안보전략을 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북핵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우리 경제는 물론, 국익과 국민의 안위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곧 6.25로 온 국민을 죽음과 피눈물로 몰아넣었던 6월이다. 우리나라는 오늘 이 순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휴전 중인 준전시 상태이며, 북한은 이를 공식적으로 폐기하면서 핵도발을 기도하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더 이상 이 땅에 온 국민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비극적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당리당략도, 소모적인 논쟁도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