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과학기술 혁신은 근본적으로 기초과학의 열매에서 오는 것이다. 기초과학의 풍요로운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다양화, 복합화를 통해 새로운 영역과 지식을 창출하는 형태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으며, 기초과학에 의한 새로운 지식의 발견으로부터 실용화 단계까지의 시간이 현격히 단축되고 있다.

▲ 김병동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명예교수

기초과학의 진보는 기술의 혁신을 가속화시키고, 기술적 혁신의 성과가 다시 기초과학연구를 촉진시키는 등 과학기술의 발전 사이클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힘차게 돌아간다. 이에 21세기는 지식역량을 키우는 기초과학이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기초과학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분자유전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김병동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명예교수의 행보가 화제다. 분자유전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국내 분자유전학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김 교수는 노벨상에 근접해 있는 인물이다. 서울대 농과대학 농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립대학에서 교수생활 중 DNA구조에 관한 새로운 가설을 발전시켰다. 1987년 귀국한 그는 지난 15년 동안 고추를 집중연구하며 고추의 매우 맛을 내며 항암, 진통 화합물인 ‘캡사이신’을 합성하는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첨단 분자유전 연구를 고추 종자육종에 접목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1999년 과학기술부와 과학재단이 지정하는 우수연구센터로 선정된 식물분자유전육종센터를 개소했다. 이후 식물분자유전육종기술의 발전과 신종자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며 우리나라가 고추관련 분야의 연구를 선도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고추 열매 안에서 매운 맛의 원인물질인 캡사이신을 최종 합성하는 ‘캡사이신 신세테이즈’ 효소의 유전자를 분리하고, 고추 오렌지색 결정 유전자 발견, 고추 세포질웅성붙임 결정 유전자 분리, 세계 최초로 고추유전자은행인 ‘백라이브러리’를 제작하는 등 국내 분자유전학의 위상을 제고했다. 김병동 교수는 “원예학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에는 세계 각국이 인간유전체사업에 열을 올릴 때였다. 그러나 기초연구가 부족한 한국은 이 대열에 끼지 못했다”며 “일본은 벼의 유전연구를 주도하며 미래 식량의 전략산업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저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고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연구 배경을 밝혔다. 김병동 교수의 그간의 연구업적과 연구전략을 기반으로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향후 10년 간 벼·콩·옥수수를 비롯하여 각종 채소 등 20여 개 품목의 종자와 품종을 개발, 전략수출품으로 키우기 위해 총예산 4,911억 원이 투입되는 골든시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특히 김병동 교수의 저서인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이중나선 구조의 비밀, Foldback Intercoil DNA>는 그간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꺾쇠호나선 진핵산(FBI DNA)이라는 구조를 발견, 설명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핵산(DNA)에 숨겨진 새로운 구조가 있다는 사실로, 그동안 미궁에 빠져 있던 복사, 전사, 재조합, 전이 등 구조와 기능의 분자수준 작동원리가 통일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새로운 연구 성과다. 새로운 진핵산 구조는 유전체 정보를 활용하는 21세기 총체적 생명과학 시대에 새로운 발견의 돌파구를 여는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 교수는 국민훈장 석류장, 상록인 명예의 전당 등재, 상록연구대상 등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우리나라의 미래 이끌어갈 과학 영재 양성하다
지금까지 총 101편의 연구논문을 비롯하여 다학제간 협동연구 활성화, 국제경쟁력 고양은 물론 고급연구인력을 양성해온 김병동 교수. 그는 최근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과학영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감사로 활동한 김병동 교수는 서울대 명예교수로서 연구에 몰두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도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강연과 멘토링을 통해 과학분야의 발전상을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최근 그는 “과학대중화위원회”라는 한림원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젊은이와 사회에 대하여 과학자들이 기여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분당 중앙고에 노벨상 수상자인 그럽스 교수의 특별강연을 유치하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국내 고교 강연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는 김 교수가 그럽스 교수와의 오랜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김 교수가 몸담고 있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우리나라 전국 4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각 분야에서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은 전현직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과부가 지정한 국가연구기관으로서 국가의 과학기술 및 정책자문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한림원은 최근 과학영재 양성사업으로 분야별 교수들과 학생들이 멘토와 멘티를 맺어 심층적이고 체계적으로 과학영재를 육성하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석학과의 대화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의 많은 석학들이 학생들과 만남을 가졌고, 과학중점고인 분당 중앙고와는 최근 제2차 3년간 협약을 체결, 한림원 소속 교수들이 릴레이로 방문 강연을 진행해왔다. 한편 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가 부디 이름값을 하길 바란다. 창조는 바로 지금까지 하지 않은 것을 도전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면서 “그간 겉보기에 웅장하고 화려한 제조업에 대해 역량을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분자생물학으로 대표되는 고등지식역량 육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농업생명공학은 단순한 먹거리의 문제가 아니다”며 “이는 유전공학, 종자산업, 각종 식품산업과 제약산업 분야까지 연관되는 근간이며 기초연구 소재의 보물창고다. 바로 여기에서 창조가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고 촉구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