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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에 빠진 베네수엘라 정국
반정부 세력과의 충돌로 내전 가능성 높아져
2017년 09월 08일 (금) 02:47:37 이종서 기자 jslee@newsmaker.or.kr

베네수엘라의 혼돈이 거세지고 있다. 올 초 시작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 반정부 세력의 충돌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국제사회의 우려도 높아지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내전이 발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장정미 기자 haiyap@

지난 8월6일(이하 현지시간) CNN방송은 루시아 오르테가 검찰총장 해임에 이어 정부군과 반정부 무장 단체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베네수엘라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월부터 반정부 시위 거세져
지난 8월6일 오전 베네수엘라 정부는 수도 카라카스 서부에 위치한 ‘발렌시아’ 군기지가 불법 무장 단체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범인 2명을 사살하고 나머지는 체포해 상황을 진압했다고 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후 주례 TV연설에서 “일주일 전 우리는 선거에서 승리했고 오늘은 테러를 격퇴했다”며 “그들은 테러리즘와 증오로 우릴 공격했지만 우리는 사랑으로 할 일을 해 낸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장관은 불법 무장 세력이 ‘테러리스트 공격’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에르네스토 비예가스 정보장관은 “이욕을 좇는 공격”을 진압해 7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반정부 세력은 정부와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군복을 입은 남성들이 마두로 대통령으로부터 베네수엘라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작전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는 내용의 영상이 공유됐다. 영상에서 자신을 후안 카구아리파노 대위라고 밝힌 인물은 “헌법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군사 행동”이라며 “이 나라가 완벽히 파괴되는 일을, 우리 청년과 가족들이 살해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두로 정권이 지난 7월30일 대통령 권한 강화를 위한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한 뒤 베네수엘라 정국은 더욱 혼란에 빠져들었다. 4월부터 이어진 반정부 시위는 더욱 격화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야권 반발에는 아랑곳 않고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야권 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스와 안토니오 레데스마는 선거 직후 체포됐다가 다시 가택 연금 상태로 전환됐다. 제헌의회는 지난 8월5일 출범하자마자 반정부 성향의 오르테가 검찰총장을 만장일치로 해임했다. 오르테가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공개수사를 진행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르테가 총장은 해임 하루 뒤인 지난 8월6일 카라카스 안드레스벨로 대학서 열린 헌법수호 포럼에 참석, “나는 여전히 이 나라의 검사다”라며 “지금 이 나라에는 정부가 없다. 제헌의회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안군은 반정부 시위 강경 진압을 계속하고 있고 일부 무장 세력은 화염병과 급조 무기에 이어 사제 폭탄까지 사용하며 맞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까지 120명 이상이 숨졌다. 분쟁연구단체 국제위기그룹(ICG)의 필 군손 수석 연구원은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베네수엘라의 정치 갈등이 저강도 수준의 내전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고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가디언은 다만 베네수엘라 사태는 이념적 이유 등으로 외세가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시리아에서처럼 전면적 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상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마두로의 정책 전환이나 국제사회의 중재는 요원해 보인다며 지금 상황이 장기화되면 경기 침체와 폭력 범죄 확산, 제도 붕괴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재 기반 다지고자 제헌의회 선거 강행
지난 7월30일,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선거가 ‘마두로 대통령 독재를 위한 선거’라는 비판 속에서 강행됐다. 반정부 시위대의 격렬한 항의는 시가전과 폭발물을 동원하고 반정부 경찰 헬기는 정부 건물을 공중사격하는 등 전쟁을 방불케 했다. 이날 마두로 대통령은 국가 헌법을 재검토하기 위한 의회를 선출하기 위한 전국 투표를 강행했다. 의원총수364 명은 등록된 모든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는 지역 투표에 의해 선출되며 나머지 181명의 의원은 연금 수령자, 원주민 단체, 기업가, 농민 및 학생을 포함한 7개의 사회 부문 구성원이 선출된다. 현재 헌법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의 전임자이자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아버지인 휴고 차베스가 1999년에 소집한 의회에서 작성됐다. 그러나 차베스 대통령은 국민 투표에 붙임으로써, 개헌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인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9년에 제정된 베네수엘라 현행 헌법은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호하고 정치 결정 과정에 민중의 참여를 일부 보장하는 등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제헌의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500명으로 구성된다. 마두로 대통령은 제헌의회 구성원 중 절반을 정치인이 아닌 장애인, 학생, 성 소수자, 노조 등 각 분야 대표들로 구성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제헌의회는 지난 8월8일 모든 정부 기관보다 제헌의회가 우위에 있음을 선포하는 법령을 가결했다. 이는 기존 의회를 장악했던 야당 의원들이 새 제헌의회에서 통과된 법을 저지할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음을 뜻한다고 AP 통신은 지적했다. ‘합법적 견제’마저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실제로 야당 의원들은 이날 보안군에 의해 의회 출입을 저지당하기도 했다. 그간 마두로 대통령은 개헌 권한을 갖는 제헌의회가 베네수엘라의 정치혼란을 해소할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야권은 제헌의회가 헌법 개정은 물론 의회의 면책특권 박탈, 반정부 인사 탄압, 심지어 대통령 임기 연장 등의 조치까지 취할 수 있다며 독재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또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로 떠오른 차카오 시의 라몬 무차초 시장에 대해 징역 15개월형을 선고했다. 무차초 시장이 반정부 시위대가 도로를 막는 것을 봉쇄하지 않고 이들이 설치한 장애물을 치우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무차초는 최근 2주 사이 대법원이 내린 체포명령의 대상이 된 4번째 야권 출신 시장이다. 무차초 시장은 판결 이후 트위터에서 “모든 혁명적인 불의의 무게가 헌법에 명시된 시위권을 보장하려던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디폴트 위기가 ‘티핑포인트’ 도달 분석도 나와
베네수엘라의 정국 혼란의 중심엔, 5개월째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있다. 베네수엘라 혼란의 직접적 원인은 제헌의회 선거지만 그 배경에는 저유가와 포퓰리즘 정책에서 비롯된 경제 파탄이 있다.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때부터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번 돈을 무상 복지에 쏟아 부었고 이후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뒤 무상 복지와 저유가 사태가 맞물려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른바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식료품을 살 수 없어 굶주리는 사람이 늘었고, 국민의 3분의 1인 960만여 명이 하루에 2끼 이하만 먹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민 4명 중 3명은 지난해 평균 8.6㎏의 체중이 줄었다. 가족당 기본 식료품 가격은 현재 최저임금의 15배에 달하며,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720%에 이른다. 베네수엘라 화폐 ‘볼리바르’는 외환시장에서 휴지 조각이 된 지 오래고 외환보유액은 지난 8월 22년 만에 100억 달러를 밑돌았다. 식료품과 함께 약품 부족 또한 심각하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말라리아 박멸 모델 국가였지만 지금은 관련 약품이 없어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사망자도 1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마두로 정권과 반정부 시위대 간 대치가 내전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선 나온다. 헬리콥터가 정부 청사와 대법원을 공습하고, 의회 내에서도 폭행 사태가 일어나는 등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하는 폭력과 테러가 일상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정 불안을 피해 브라질 국경을 넘는 베네수엘라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엔 2만7000명이 망명을 모색했고 올해엔 5만 명이 넘는 베네수엘라인이 망명을 희망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티핑포인트(급변점)’에 도달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올해 말까지 50억달러(약 5조6360억원) 가량의 부채를 상환해야 하지만 현금성 외환보유고는 턱없이 부족한데다 국가 수입의 주요 원천인 석유수출에 대해 미국 제재조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채권시장에서 베네수엘라의 디폴트 가능성은 사상 최고치인 70%까지 오른 상태다. 지난 8월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십억달러 규모 부채 상환일이 다가오면서 베네수엘라 디폴트 공포가 상승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1년 넘게 베네수엘라의 디폴트 우려를 감내해왔지만 지난 주말 제헌의회 선거 결과가 티핑포인트였던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날 베네수엘라가 1년 안에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은 70%까지 치솟았다. 이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지난해 2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실제 베네수엘라 정부와 국영석유회사 PdVSA가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할 부채 규모는 50억달러에 이른다. 당장 이번 달에 갚아야 할 금액만 7억2500만 달러다. 문제는 베네수엘라의 현금성 외환보유고가 30억달러에 그친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외환보유액은 15년만에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밑돌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그중 70억달러가 금이며 부채 상환을 위해 이를 대량 매각하기 어려울 것으로 추정했다. 부채상환에 부족한 자금을 석유 수출로 메워야 하지만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에 대한 추가 제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디폴트 위기감은 증폭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국제사회 반대에도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하려 하자 미국은 지난 7월26일 베네수엘라 고위급 인사 13명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미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안을 내놨다. 베네수엘라가 아랑곳하지 않고 예정대로 제헌의회 선거를 치르자 7월31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미국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인과 기업은 마두로 대통령과 거래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날 미 재무부는 마도로 대통령의 미국 금융기관 내 모든 자산을 동결하고 자국민·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한다고 백악관 일일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번 조치는 마두로 정부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일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한 데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마도르 정권을 비판해왔으나 국가 정상 개인에 대한 제재를 부과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스티븐 므뉘신 미 재무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민심을 저버린 독재자”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덧붙여 “마두로를 제재함으로써 미국은 분명하게 마두로 정권의 정책을 반대하며 온전하고 번영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베네수엘라인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석유와 관련된 제재 등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며 베네수엘라 사태 전개에 따른 추가 제재 가능성도 열어뒀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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