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룩해 온 물질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32개국 중 31위로 하위권에 속해 있다. 이의 대안으로 최근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정숙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지식 습득과 앎으로서의 인문학을 넘어 행복한 삶을 위한 가치로서 인문정신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황인상 기자 his@

바쁜 일상 속 현대인들은 조용히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대답할 틈이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차라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하거나 이어폰을 꼽고 부족한 잠을 청하는 것이 현실이다. 바야흐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인문학의 역할이 새삼 중요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인문학’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아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런 인문학에 대해 신정숙 교수는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는 요즘 세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이고, 모든 학문의 근본적 토대이자 삶의 의미를 제시해 줄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 시대의 새로운 열망, 인문 지식의 힘

▲ 신정숙 교수

한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와 경영 등의 실용학문이 사회를 이끌며 인문학은 외면 받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연구야말로 삶을 관통하는 핵심주제라는 것을 인식한 지식인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신 교수는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인문학 연구가 단순한 지식 생산에 머무르며 사회의 발전방향과 동떨어져 있을 때 인문학의 가치와 효용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 연구자들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발맞춰 자신의 성과를 다른 연구자뿐만 아니라 대중과 교류해야한다”고 전했다. 최근 대기업 채용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많이 요구하고 있다.

토익과 자격증 등에 많은 비중을 두었던 과거와 달리 열린 채용, 파격 채용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스펙 대신 인문 지식에 대한 소양을 묻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2011년 구글의 부사장은 앞으로 6천 명의 직원을 채용하되 그중 4~5천 명은 인문학도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공표했다. 실제로 국민은행이 지금까지 읽었던 인문학 책 목록 등을 요구하며 채용 시장에 변화를 일으켰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인문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미미한 수준이다. 신 교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인문학 자체에 대한 제도적 차원의 적극적 투자와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 관련 학과의 경우 이미 폐과되었거나, 폐과의 위기에 처한 경우도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지만 큰 소명. 자기 주도적 인재 양성
조선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자유전공학부는 전국적으로도 매우 희소성이 있는 학과이다. 지역과 세계에 기여하는 자기 주도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09년에 독립학부로 설치됐으며, 2011년에 기초교육대학으로 편입되었다. 학부생의 자유로운 전공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계열의 구분 없이 110여 명의 학생들을 무전공으로 선발하고, 1년 동안 지도교수와 함께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에 적합한 전공을 탐색하는 과정을 거친 후 전공을 정하게 된다. 신정숙 교수는 국어국문학 전공자로서 교양필수 교과목인 ‘사고와 표현1·2’를 담당하고 있다. 이 교과목은 대학생들의 가장 기초적인 역량으로 볼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 향상에 초점을 둔다. “자유전공학부는 지도교수가 5명 내외의 학생들의 입학과 전공 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조언을 해주는 ‘평생지도교수제’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향후 자유전공학부는 전공을 정해서 대학에 입학하는 기존의 입학 시스템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미래 대학의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신 교수는 ‘김동리 소설에 나타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형과 위장’, ‘김동리 소설의 죽음에 대한 공포·매혹’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동리 문학에 나타난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탐색하는 이번 연구는 문학, 예술학, 철학, 역사학 등 다른 인문학 분야의 주요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김동리 문학 작품은 항상 새로운 흥밋거리를 던져 준다. 이번에 그의 전체 작품을 분석해 보는 과정에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그의 문학, 수필 등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김동리 뿐만 아니라 시대와 인종, 지역을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신 교수는 1982년 김동리의 '을화'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러한 인류 보편적 특징이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동리 소설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이라는 연구 논문이 국내 학술지가 아닌 국제학술지에 게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인에게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요즘 연구와 교육을 병행해야 하는 ‘교수’라는 직책을 생각할 때마다 ‘스승’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오른다. 스승은 21세기 시대에 걸맞지 않은 다소 진부한 단어임에도 대학이라는 공간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제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 이러한 저의 성장과정에서 제자들의 성장 역시 이뤄내는 것, 그것이 제 작지만, 큰 소명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