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목수의 손길을 따라 변화한다. 때론 들보가 되고, 때론 서까래가, 때론 처마 끝에 평고대가 된다. 목수는 나무의 성질을 잘 알아야 쓰임새를 제대로 할 수 있다.

▲ 김범식 한국전통건축연구원장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물을 둘러 보면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수만개의 나무조각을 하나하나 끼워맞추는 기술이 그렇다. 또 주춧돌을 편편하게 갈기보다, 주춧돌에 맞춰 나무를 곡선으로 가공하는 기술에도 혀를 내두른다. 기둥 두 개로 중심을 잡는 일주문을 보면 “저것이 가능하냐?”고 되묻기도 한다. 고건축은 그래서 한국의 유형문화를 대표하는 종합예술로 꼽힌다.

한국의 정신이 살아 있는 전통건축의 표상을 잇다
김범식 한국전통건축연구원장은 전통 건축물을 복원하고 수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도편수(대목장)이다. 경상북도가 선정한 건축목공예 부문 최고의 장인인 그는 정제된 조형미와 절제된 선, 건축물의 양감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부자재와 단청의 아름다움을 살린 전통건축에서 우러나는 오랜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복원해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문화재의 예술양식을 승화시키며 한국의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전통건축의 표상을 잇는 이 시대의 독보적인 장인으로 꼽히는 김범식 원장은 50여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김천 직지사 극락전, 청도 운문사 관음전 등 전국 130여 개의문화재와 건축물을 수리·복원·신축하며 ‘민족의 인문과 과학의 결정체’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8년에는 한국인물연구원이 선정하는 한국현대인물열전 33인에 포함되었으며, 한국건축가협회상, 문화재청 공로상, 국회의장 표창 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최근 김 원장은 모형건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지난 15년 이상 전통건축물 모형을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지금까지 국보 18호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308호 풍남문, 국보 5호 봉정사 극락전, 국보 49호 수덕사 대웅전, 국보 52호 해인사 장경판고문, 보물 819호 덕수궁 중화전, 보물 1563호 동화사 대웅전 증의 모형을 제작했다.

▲ 전통 건축물을 복원하고 수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도편수(대목장) 김범수

“비록 모형이지만 문화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면서 “또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좋은 수단도 된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국보와 보물을 찾아다니면서 보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를 모형으로 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우리 문화재를 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1년에는 국보 1호인 숭례문과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을 비롯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건축물을 정교하게 축소한 모형 18점을 전시한 <2011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도편수 김범식의 우리 건축 모형전>을 선보여 큰 호평을 받았으며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각국 대사들, 외신들이 다녀가 위상을 높인 바 있다.

후진 양성 통해 진정한 전통 건축의 명맥 잇다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소목장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형편에 생계를 위해 목수일을 시작했던 김범식 원장. 그는 이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최기영, 전흥수 대목장의 스승이었던 김덕희 선생과 김윤원 선생의 문하로 입문해 전통건축분야에서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

▲ 대구MBC전시관

김 원장은 도편수가 되기 위한 기술과 경력을 차근차근 쌓고, 이를 바탕으로 건축목공예부문 국내 최고의 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건축물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그는 후진양성을 통해 진정한 전통 건축의 명맥을 잇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도 녹록치만은 않은 실정이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쉬운 방법만을 찾는 현대사회의 특성상, 느리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는 전통 건축일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 여기에 정부의 지원이 전무한 것도 후진 양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범식 원장은 “일반 기술자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며 기술을 가르치지만 정작 전통 문화재를 위해 일하는 기술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면서 “문화재 공사인데도 불구하고 일반 건물을 짓는 것과 똑같이 취급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힘이 더 많이 드는 전통 건축 현장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초심으로 기초부터 튼튼하게 지어 나가는 것이 우리 전통을 지키는 길”이라며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하는 차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