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문화유산을 고이 간직하면서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일 만큼 나라를 빛내는 일이 또 있을까? 자수공예 김태자 명장이 바로 그렇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품고 있는 꿈과 소망, 땀으로 이루어 놓은 위대한 유산과 업적들을 오색실에 꿰어 옷감 위에 찬란하게 꽃피우고자 했던 그녀의 바람. 오랜 꿈과 숙원이라고만 생각돼 왔던 이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나라는 ‘중요무형문화제 제80호’라는 직함을 그녀에게 하사했고, 그녀는 지금 자수장 전수교육조교라는 직함을 통해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지혜를 고스란히 물려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 지난 200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수공예상에 1등을 차지하면서 전 세계에 김태자 명장의 재능과 실력을 검증받았다

김태자 명장의 고향은 관광도시로 유명한 제주도이다. 1남7녀 중 첫째로 태어난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꾸려야 했다. 우연한 기회에 양장기술을 배웠던 그녀는 늘 가족들의 옷을 직접 지었고 당시만 해도 신(新) 문물에 속했던 양장과 학생들의 교복을 만들기도 했다. 적으면 서너 개, 많으면 여남은 개 되는 옷의 단추 구멍 다듬는 일은 늘 그녀의 몫이었다고. 외할머니가 수를 놓으셨고 어머니는 양장점을 운영하셨기에, 김 명장의 솜씨는 그냥 생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일을 도와 단추 구멍에 매달렸던 시간들. 당시에는 너무나 하기 싫었던 일이었지만 되돌아보면 바느질의 기본은 모두 그때 배운 솜씨. 하지만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되길 원했던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몇 년 동안 자수와 거리가 먼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듯했다.

남편의 내조가 더욱 큰 힘이 되다
그러던 중 다시 자수에 관심을 가지데 된 것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부터였다. 자수와 관련된 직업을 갖기 위해 서울로 자수를 배우러 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낮 시간의 여유를 이용해 자수연구소에서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체계화된 교육 방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학 강의처럼 일주일에 한두 시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할 만큼 사사(師事)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특히 자수는 그 어떤 일보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기에, 김 명장은 외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바느질 솜씨와 어릴 적 어머니 곁에서 단추 구멍을 다듬던 경험을 매우 값지게 여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외에도 자수 명장으로서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으로 김 명장은 남편을 꼽는다. 남편은 그녀가 자수연구소 운영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지난 1981년 자수공모전 신문광고를 들고 와 작품 출품을 권유했던 사람도 바로 남편이었다고. 무모하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남편의 마음 씀씀이에 용기를 얻은 김 명장은 자신의 작품을 결국 출품하게 되었고 입선이라는 첫 수상의 영예도 누릴 수 있었다. “남편의 외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하는 김 명장은 “작품을 하다 보면 일주일 넘게 집을 비우는 경우도 많았지만 남편은 아이들 문제며 집안일을 많이 해결해 주었다”며 자신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큰 이유가 바로 남편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첫 입선의 수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의 여러 차례 입선과 1985년 문화재위원장상, 1986년 문공부장관상, 1991년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며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1992년에는 KBS 대하드라마의 자수고증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후 1996년, 자수공예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공로로 전통자수공예 명장에 선정되었다.

정부의 지원과 국민들의 새로운 인식 필요해
남편에 이어 자신의 일 때문에 제대로 신경을 써 주지 못했던 아이들. 이제 그 아이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김 명장을 물심양면 돕고 있다. 특히 미술을 전공한 두 딸은 도안이나 밑그림의 디자인은 물론, 색실을 선택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예쁜 마음씨, 야무진 솜씨 못지않게 자수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색채감각이다. 동일한 도안이 주어져도 어떤 색감의 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김 명장은 수익성이 없는 공예분야에서 사명감으로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에게 자수를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작품을 할 때면 오히려 앞장서 살펴주는 아이들에게서 많은 힘을 얻는다고. 이러한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김 명장은 명장 선정이 된 이후로 연 4회씩 이루어지는 전통자수 공예분야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개인전과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물론, 일본 순회전을 비롯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 전통자수 시연과 전시회를 열어 우리나라의 전통자수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편 지난 200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수공예상에 1등을 차지하면서 전 세계에 김 명장의 재능과 실력을 검증받았다.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미술공예학과 강사로 재직 중인 김태자 명장은 이 외에도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 박물관 특설교육 전통자수전문가과정 주임교수로 활약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등 전통자수 공예발전과 전승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타 문화 유입에 대해 김 명장은 “시장 개방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우리 것에 대한 우수성과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철저한 기능전수와 함께 자수인들 스스로 우리의 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의식이 없으면 전통자수의 맥은 끊길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기도. 이에 그녀는 전통공예의 저변확대와 정부 지원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고 가르치고 싶은 선생이 있더라도 제도적인 뒷받침과 지원이 없으면 교육은 불가능하기에 이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

기계자수에 비해 생동감이 있고 전통의 멋과 바늘을 잡은 이의 기교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전통자수. 수를 놓는 이의 마음이 그대로 옷감 위에 옮겨지기에 그만큼 전통자수는 더욱 매력적이고 우리 선조의 기품을 느낄 수 있는 분야이다. 35년 동안 전통을 만들어 온 김태자 명장의 노력이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기 위해 정부의 지원과 국민들의 새로운 인식이 절실한 때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