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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평론] ‘비둘기집', '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의 작곡가 김기웅
'사각의 링'에서 '오선지 속'으로,
2013년 12월 04일 (수) 11:18:12 뉴스메이커 webmaster@newsmaker.or.kr

'국가대표 복싱선수'에서 '대한민국 대표급 작곡가'로 우뚝 서다

‘국가 대표 복싱선수 출신 작곡가’라는 타이틀이 이름 앞에 트레이드마크처럼 따라다니는 작곡가 겸 연주인 김기웅(金基雄) 선생이 지난 11월 11일, 77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1936년 개성에서 출생해 단신 월남, 맨주먹으로 시작해 독학으로 ‘절대음’을 익혔던 자수성가형 작곡가로 1958년, 미8군쇼단 ‘Make in Whoopy Show'에서 기타리스트로 음악계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작곡가로 변신해 주옥같은 노래들을 남겼다. 국가대표 복싱선수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이야기, 김기웅 선생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해본다.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워커힐 악단 시절 내한한 루이 암스트롱과, 1963년.
대중음악계에 또 하나의 별이 졌다. ‘비둘기집’, ‘저녁한때 목장풍경’, '저 꽃 속의 찬란한 빛이‘ 등의 노래로 사랑받던 작곡가 김기웅 선생이 지난 11월 11일, 담도암으로 별세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시각에 공교롭게도 필자는 압구정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가수 겸 작곡가 김준,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명수씨와 함께 있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재기하는 ‘봄비'의 가수 박인수씨가 22년만에 발표하는 신곡 ‘준비된 만남’을 녹음 중이었다. 갑자기 날아든 비보는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선생을 마지막 본 것이 바로 이 스튜디오였기 때문이다. 36년만에 원멤버 그대로 재결성한 사중창단 쟈니브라더스의 컴백을 위해 편곡과 노래 지도를 맡아주었던 김기웅 선생이었기에 갑작스런 별세 소식은 더더욱 쉽게 믿겨지지 않았다. 가까운 기자들에게 다급히 연락을 취하는 내내 선생과의 인연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렇게 인사도 없이 갑자기 떠날 것을 대비해서였을까.
다행히도 선생은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자신의 대표곡을 친필악보로 만들어 건네주었고 또한 전성기 시절 사진들도 찾는 대로 전해주기도 했다. 평소 매우 부지런한 성격 탓이었으리라. 해서 김기웅 선생에 대한 추모를 겸해 그동안 틈틈이 발표했던 글들을 찾아 그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해본다.

고희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 ‘고독한 나그네의 노래’
지난 2006년 7월3일, 고희(古稀)기념으로 제작된 음반 ‘김기웅 작품집 2006’에는 그의 음악인생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 자신의 대표곡을 두 장의 CD에 담아 제작된 이 기념음반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고희를 맞아 작곡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시인 천상병의 시 ‘귀천’을 테마로 작곡, 직접 노래까지 불렀다. 인생의 깊이가 한껏 느껴지는 이 노래를 통해 앞으로도 쉽게 멈추지 않을 그의 창작열, 열정이 느껴졌다.
   
▲ 김기웅 독집음반 ‘돈 벌러 가는 길’, 1972년.
1978년, KBS 전속악단장, 그리고 이후 KBS 전속합창단을 맡기도 했던 독특한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작곡가 겸 가수였다. 또한 연주인이기도 했다.
1936년, 부유한 개성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기웅 선생은 송도중학교 2학년 때인 1.4 후퇴 당시 가족들과 헤어져 단신 월남, 인천에 정착한다. 이후 복싱 일곱체급을 모두 석권했던 당시 복싱 명문고 성북고에 진학, 3학년 때부터 복싱을 시작한 뒤 웰터급 고교 챔피언에까지 오르면서 신흥대(현 경희대 체대) 특기생으로 발탁된다.
1956년 공군 입대 후 공군대표 복싱선수로 출전, 불행히도 시합 도중 반나절 동안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하지만 제대 후 복학, 다시 링에 선다. 그러나 60년 로마올림픽 출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맛보아야만 했다. 이미 큰 부상을 한 번 당했던 선수였기에 관련단체의 정략에 의해 올림픽출전권을 다른 선수, 즉 김기수 선수에게 넘겨줘야 했던 것.
올림픽 진출의 꿈이 좌절된 이후 방황의 날이 시작되었다. ‘통금 후 귀가, 낮 12시 기상’이라는 일과가 일상이 되었을 만큼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만난 이가 고향 선배인 트럼펫터 왕성배씨다. 그의 권유에 따라 음악의 길을 택한 뒤 음악감상실에 다니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었을 정도로 음악에 빠르게 몰입해갔다.
직접 ‘코류붕겐’을 구해 독학으로 ‘절대음감’을 익힐 정도로 음악에 몰두, 적응해갔다. 누구보다 적극적인 성격의 그는 결국 기타리스트로 미8군쇼단 ‘Make in Whoopy Show'에 입단한다. 1958년도의 일이다. 이때부터 점차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 62년에는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인 워커힐악단에 전속단원으로 발탁되기에 이른다. 그의 인생에 있어 제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62년 4월 워커힐악단에 입단, 리듬기타를 맡는 동시에 악단 연주곡과 노래반주 편곡까지 도맡았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악보자료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자료를 귀로 듣고 채보해야 했기 때문에 수시로 밤을 새야 했다. 또한 가수들의 편곡을 도맡은 탓에 가수들마다 개성 살리기 위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다시 경희대 음대 작곡과 2학년에 편입, 본격적인 작곡공부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많은 음악을 채보, 분석할 수 있었고 편곡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들이 훗날 국내외가요제에 수상하는 그의 작품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스스로 회고했다.

작사가 전우와 콤비 이뤄 작곡가로 데뷔
   
▲ 가수 윤복희와, 1962년.
그가 작곡가로 본격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던 가수 위키리(본명 이한필)와의 만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미8군쇼 ‘Make in Whoopy Show'에서 함께 활동할 당시 위키리의 소개로 잡지사 ’아리랑‘에서 근무하던 전우(본명 전승우)를 만나게 되었다. 과묵하고 미남형의 전우는 위키리와 경기고 동창이었다.
위키리는 당시 인기가수였던 박형준, 유주용, 최희준과 함께 ‘포 클로버스’ 팀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포 클로버스(Four Clovers)'는 일종의 ‘따로 또 같이’ 그룹이었다. 말하자면 각자 솔로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때에 따라 함께 무대에 올랐던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

   
▲ 아리랑시스터즈1964년.
위키리의 제안으로 조직된 이 프로젝트 그룹 ‘포 클로버스'는 개인 리사이틀, 또는 그룹 조인트 리사이틀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모두 ‘미8군무대 출신’이자 ‘학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 멤버들은 각종 대학축제 등에도 초대되는 등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이들의 주 레파토리는 팝. 위키리는 스윙조의 바비 달린의 ’Make the Knife'와 ‘Ciementine'을, 최희준은 ’Monalisa'와 'Too Young' 등 넷킹콜을, 박형준은 ‘Rose Tatto', 그리고 'And I Love You So'를, 유주용은 라틴 계열의 노래를 구가하며 미8군쇼 무대와 대학가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세계레코드사로부터 음반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이때 발표하는 첫 음반이 ‘포 클로버스 & 봉봉/저녁 한때 목장 풍경’이다.
포 클로버스와 봉봉 사중창단을 한 음반에 묶어서 앨범을 제작키로 하고 각자에게 맞는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작사는 전우가 맡았다. 위키리에게는 ‘저녁 한때 목장 풍경’과 ‘종이배’를, 최희준에게는 ‘그리운 별아’와 ‘향수’, 박형준에게는 ‘나 홀로 있어도’, 유주용에게는 ‘그대는 오시지 않네’, 그리고 봉봉 사충창단에게는 ‘까만 눈동자 그 아가씨’를 각각 취입시켰다.
말하자면 이 음반이 작곡가 김기웅의 첫 데뷔 작품집인 동시에 작사가 전우(본명 전승우), 가수 위키리(본명 이한필), 봉봉 남성사중창단이 한꺼번에 대중들 앞에 등장한, 이들의 첫 데뷔음반이었다.

이 무렵 TBC 동양방송이 개국하면서 포클로버스의 노래가 자주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그 중 ‘저녁 한때 목장 풍경’이 인기 차트 1위에 올랐다. 봉봉 사중창단 또한 KBS-TV에 전속이 되다시피 출연이 잦았다. 이 음반을 통해 발표되는 곡들은 나름대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고 김기웅 선생은 회고했다. 한 예로 북창동에 Maxico 음악살롱, 이곳은 팝 애호가들의 요람이라 불릴 만큼 수준 높은 곳으로 유명했다. 특히 클래식 소품에서부터 팝과 스탠더드 재즈의 장르를 넘나드는 신상철 선생의 바이얼린 연주는 일품이었다. 많은 실력자들이 이 무대를 거쳐 갔는데 자신의 작곡인 ‘나 홀로 있어도’도 이 곳의 주 리퀘스트였다고 김기웅 선생은 자랑스러워했다.

저녁 한때 목장풍경’과 작사가‘전우’에 대한 기억
   
▲ 김기웅의 친필 악보 ‘비둘기집’
또한 그는 작사가 전우선생과 콤비가 되어 가요계에 데뷔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평소 듣던 대중음악의 노랫말이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것이 바로 작사가 전우였다. 속칭 'KS마크(경기고-서울대 출신)'라 불리던 인텔리, 작사가 전우 선생은 작곡가 김기웅씨와는 1936년생 동갑내기로 함께 콤비를 이뤄 ‘비둘기집’,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 등 목가적이고 밝은 소리를 지향하는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앞서 거론했듯 이 둘의 첫 데뷔곡이 바로 ‘저녁 한때 목장 풍경’이다.

‘끝없는 벌판 멀리 지평선에 노을이 물들어오면
외로운 저 목동의 가슴 속엔 아련한 그리움 솟네.
뭉게구름 저편 산 너머로 기러기떼 나르고
양떼를 몰고 오는 언덕길에 초생달 빛을 뿌리면
구슬픈 피리소리 노래되어 쓸쓸히 메아리치네.
(전우 작사, 김기웅 작곡, 위키리 노래, 1964년)

‘미8군무대 출신’이자 ‘학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 ‘포클로버스’는 첫 음반의 성공에 힘입어 ‘포클로버스 2집’을 67년도에 발표한다. 이들 음반에 수록된 노래들 역시 모두 전우-김기웅의 콤비의 작품들로만 채워졌다. ‘산마을(박형준)’ ‘별빛속의 러브레터(최희준)’ 등이 담겨 있는 명반이다. 허나 이 음반은 이른바 ‘워커힐 스타일’로 편곡되었기 때문에 현과 관악기의 리듬섹션이 너무 강해 전작 노래가 상당히 가려진 아쉬움을 준다.

김기웅씨는 이후 라디오 드라마 ‘지각한 신부(김상희)’, 영화주제가 ‘국경 없는 밤거리(배호)’, ‘거리의 말괄량이(이금희)’ 등으로 점차 두각을 나타낸 후 69년, 월남에서 돌아와 컴백한 ‘왕손가수’ 이석을 위해 만들어 건네준 곡이 바로 ‘비둘기집’과 ‘두마음’. 매번 편곡을 해줘도 악보를 곧잘 잊어버리기로 유명한 이석은 정작 ‘비둘기집’의 음반 취입 당시 LA에 가 있는 바람에 결국 이 노래는 남성듀엣 투에이스(오승근, 홍순백)에 의해 먼저 취입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노래가 투에이스의 데뷔곡이 된 셈. 이때 ‘황혼길(이찬)’, ‘길(조영남)’, ‘고향(정우)’ 등의 노래도 함께 발표되었다.

봉봉사중창단 이연실 정미조 투에이스 이찬 허림 이미배 등, 김기웅 작곡의 노래로 데뷔
‘비둘기집’은 발표되자마자 대히트를 기록한 노래. 때마침 ‘다함께 노래부르기의 선구자’ 전석환씨가 진행하던 공개방송프로그램 ‘삼천만의 합창’의 시그널 곡으로 채택됨과 동시에 '새마을 합창 경연대회'의 지정곡으로 선정되면서 이내 삼천만의 국민가요로 자리한다. 현재까지도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리어지는 이 노래의 노래비는 87년 타계한 작사가 전우선생의 묘 앞에 추모비로 세워져 있다.

1970년, 공군군악대 교관으로 임관된 김기웅씨는 이후 70년대 통기타시대에 들어서면서 ‘하얀 눈길(이연실), '인어이야기(허림)'에 이어 박인환 시를 낭송한 '목마와 숙녀(박인희)', 72년 신인상을 수상하는 가수 정미조의 ‘그리운 생각’, TBC 재즈페스티벌에서 입상한 이미배의 ‘밤하늘’, 김용호 시에 곡을 붙인 ‘담배(서유석)’와 고띠에의 시를 노래한 ‘지다 남은 잎새(윤희정)’, '봄이 오는 길(박인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발표된 곡으로 아울러 이 무렵인 72년, 박건호 작사 '돈 벌러 가는 길'을 직접 노래를 취입해 발표한다. 이밖에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요(정소녀, 최병걸), DBS 라디오 드라마 ‘제2차 세계대전’의 주제가인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리라(윤희정)’을 발표했다. 이렇듯 60년대 위키리, 봉봉, 투에이스, 이찬에 이어 70년대 이연실, 정미조, 이미배, 허림 등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데뷔한 가수들이다.

특히 1974년,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박경희)’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참가하는 제5회 YAMAHA 동경가요제를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열린 세계국제가요제에 잇달아 입상하는 저력을 발휘한다. 77년 MBC 제1회 서울가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다시 만날 날’, 그리고 78년, 제7회 동경가요제 동상을 수상하는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박경희)’에 이어 제8회 동경세계가요제에서 가창상을 수상한 '아 사랑아(정미조)' 역시 그의 음악성이 한껏 발휘된 작품들이다.

유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와 ‘어머니의 괴얄띠’
   
▲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박경희)’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가수 박경희와 작곡가 김기웅. 1974년.
1978년 KBS 악단장을 맡으며 드라마, 영화음악에도 몰두, 한층 작곡 영역을 넓혀 활동한다. 그가 작업한 드라마 영화음악들을 살펴보자면 KBS 대하드라마 ’풍운‘, ‘개국’, ‘새벽’을 비롯해 당시 완성도 높은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TV 문학관의 ‘등신불’, ‘전우’, ‘바닷가 소년’, ‘남과 북’, ‘13세 소년’ 등. 또한 MBC 특집극 ‘천둥소리’, ‘딸아’, ‘추억 만들기’, ‘그 겨울의 긴 계곡’, 주말드라마 ‘유산’ 그리고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의 체조음악, 전국체전 매스게임 음악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지난 2006년 고희를 맞아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 곡을 붙인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를 발표함과 동시에 ‘고독한 나그네의 노래’라는 타이틀의 콘서트를 개최, 가창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한 고희 기념 콘서트 이후에도 창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나이에 무슨 작곡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난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만들어야 할 생활노래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온 국민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들 말이죠. 이를테면 우리는 아직도 생일 축하노래를 미국 민요로 대신하고 있고 한때는 애국가조차 찬송가 곡조에 맞춰 부른 때도 있었죠.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한국영화음악작곡가협회 고문이자 소망교회 장로 겸 음악부장을 맡고 있던 김기웅 선생은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만년까지 창작에 몰두했다. 가장 최근에 완성한 곡은 유영애의 시에 곡을 붙인 ‘어머니의 괴얄띠‘.
‘정직한 노래는 닫혀버린 마음의 문을 다시 열게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선생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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