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간 美 대통령 쥐락펴락한 존 에드거 후버 전 FBI 국장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우리로 치면 검찰과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를 합쳐놓은 막강한 조직이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FBI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정권과 FBI는 긴장과 갈등 관계를 유지한 경우가 많았다. 1935년 FBI 설립 이후 거쳐간 국장은 총 7명이다. 그중 임기 중 해임된 사람은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한 제임스 코미와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해임한 윌리엄 세션스 등 2명이다.… 1972년 숨질 때까지 48년간 FBI 수장으로 군림한 존 에드거 후버는 역대 미국 대통령을 주물렀던 사람이었다. 그를 거쳐 간 대통령은 30대 캘빈 쿨리지부터 37대 리처드 닉슨까지 8명에 달했다. 이 시기 대통령들은 모두 후버를 싫어했지만 해임하지 못했다. 그가 가진 권력자들에 대한 '엑스 파일' 때문이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도 혼외정사 문제로 후버에게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2017년 5월 11일>

▲ 존 에드거 후버

존 에드거 후버(1895~1972)는 살아생전 불가침의 성역이었다. FBI 국장으로 48년 동안 보필한 8명의 대통령 누구도 그를 통제하지 못해 “역대 대통령들을 FBI 요원처럼 부렸다”는 농담의 주인공으로 회자될 만큼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후버는 대학 시절부터 “강한 자만이 살아남으며 약한 자는 멸망하고 적자들만 생존한다”는 글귀를 즐겨 인용하며 ‘강한 것’을 신봉했다. 그에게 강하다는 것은 풍부한 지식이었고, 지식이란 교과서적 지식이 아니라 상대방의 덜미를 잡고도 남을 만한 강력한 정보를 의미했다.
후버를 48년 동안 지탱해준 무기는 비밀 파일이었다. 워싱턴 정가에서 후버의 비밀 파일은 전설이었고 후버를 지켜주는 보호막이자 힘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저명 인사들의 약점과 배경을 낱낱이 꿰고 있는 후버의 막강한 정보 수집 능력을 잘 알고 있어 감히 어떻게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후버는 대통령의 비리는 물론 대통령 선대의 부정과 부패, 부인의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정보력을 무기로 때로는 신화를 만들고 때로는 깨며 성역을 구축했다.
후버는 워싱턴에서 태어나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주경야독하며 야간대학에 다녔다. 조지 워싱턴대에서 법학석사를 취득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어 1919년 FBI의 전신인 법무부 수사국에 들어갔다. 그가 1924년 5월 수사국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미국의 사정은 혼란스러웠다. 무정부주의자들의 선전 선동과 폭력이 난무하고, 각종 파괴 활동이 횡행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사주에 의한 태업 등으로 공포와 불안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사국은 폭력과 부정과 음모에 대항할 힘이 없었고 내부적으로는 정실주의와 패거리 문화에 휘둘렸다.
수사국장이 된 후버의 첫 표적은 갱단과 강도들이었다. 갱단은 금주법의 허점을 이용해 한창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보니와 클라이드 부부 강도나 존 델린저 같은 탈옥수 강도로 대표되는 무장 강도들은 1930년대 대공황기를 틈타 활개를 쳤다. 후버가 벌인 ‘범죄와의 전쟁’으로 주요 갱단 두목들은 체포되었고 조무래기 강도들은 사살되었다. 후버는 범죄와 싸우는 영웅의 대명사가 되었다. 반면 후버 자신은 불우한 가족사에 정서 불안, 평생 독신에 동성애 편력이 있는 그늘진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후버의 비밀 파일은 전설이었고 후버를 지켜주는 보호막이자 힘

후버의 입지가 확고해진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였다. 루스벨트는 1935년 수사국을 FBI(미 연방수사국)로 확대 개편하고 후버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후버가 일반 시민을 상대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던 2차대전 발발 전이었다. 독일에서 나치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고 미국에서도 나치를 추종하는 극우파들이 세력을 키울 조짐을 보이자 루스벨트가 후버에게 정보 수집을 지시한 것이다. 2차대전 발발 후에는 FBI가 미국 내의 모든 정보 활동을 총괄했다.
FBI는 위험 인물로 간주되는 외국인들을 검거하고, 루스벨트의 묵인 아래 도청과 침입 등의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루스벨트의 정적에 대해서도 안보를 이유로 정보를 수집해 비밀 파일을 만들었다. 이렇게 작성된 FBI의 보고서는 루스벨트에게 수시로 전달되었다. 루스벨트는 백악관 주변의 정보 업무까지 후버에게 맡겨 자신의 아성을 굳건히 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하지만 종국에는 후버의 비밀 파일이 루스벨트를 겨냥하면서 루스벨트는 자신이 키운 개에게 물린 꼴이 되고 말았다.
후버의 입지는 1950년대의 냉전기를 거치며 더욱 강화되었다.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에게 공산주의자 명단을 제공해 ‘매카시 선풍’의 단초를 제공하고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찰리 채플린, 마틴 루터 킹의 뒤를 집요하게 캤다. 캐서린 헵번, 험프리 보가트 등 할리우드의 스타들은 물론 작가 펄 벅,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도 감시했다.
후버는 아인슈타인도 공산주의자라고 간주해 22년 동안이나 전화 도청과 우편물 검열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뒤졌다. 엘리너 루스벨트까지 공산주의자들과 연관이 있다며 감시하고 조사를 벌이자 엘리너는 “FBI가 독일 나치의 첩보 기관인 게슈타포와 다른 게 뭐냐”고 반발했다. 마틴 루터 킹도 후버의 도청에 약점이 잡혀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사후 해임이었으니 후버 자신이 임명권자였던 셈

후버는 자신의 활동을 과장하거나 포장하는 데 탁월했다. 후버의 표적이 되면 시시껄렁한 깡패라도 무시무시한 범죄자로 둔갑했다. 후버는 어떤 시기에 어떤 범죄자를 체포해야 국민이 환호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후버가 국가를 대신해 적색분자, 깡패, 나치 동조자, 체제 파괴자를 단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불의에 대항하는 미국 공권력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후버가 없었다면 국가 안보는 엉망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기자들도 후버의 영웅담을 열심히 전해주었고 의회 역시 후버가 신청한 예산이라면 그대로 통과시켜 후버의 아성을 강화해주었다.
후버는 FBI 조직 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중요 사건이 터지면 후버 자신이 이틀이고 사흘이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일에 매달리는 데다 수시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비밀 요원들에게 가정과 부인의 안부를 묻는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엄한 규율과 후한 대우도 요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대통령들은 후버가 제공하는 정보에 길들여지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후버를 제거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누구도 토사구팽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후버를 가장 껄끄러워한 인물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여자 문제에 대해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유분방했던 케네디는 후버에게 약점이 잡혀 사실상 ‘을’의 처지에 놓여 있었다. 케네디 형제는 나란히 대통령과 법무장관을 지낼 만큼 위세가 당당했지만 후버 앞에서는 한낱 허세에 불과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도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후버를 어쩌지 못했다. 1964년이 후버의 의무 은퇴 연령인 70세였는데도 FBI 국장 자리를 계속 유지하도록 임기를 연장해주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역시 후버를 두려워했으나 어느덧 국민이 이미 노쇠한 후버의 퇴진을 바라고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1971년의 갤럽 조사에서 국민의 51%가 후버의 은퇴를 희망하고 41%가 반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노쇠한 후버의 은퇴를 원한 것이지 후버 개인에 대한 불신은 아니었다. 후버의 업적을 평가하라는 설문에는 81%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FBI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90%가 지지한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이 이 뜨거운 감자를 놓고 고민에 빠졌으나 다행히 후버가 1972년 5월 2일 77세로 눈을 감아주어 고민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사후 해임이었으니 후버 자신이 임명권자였던 셈이다.

■6월 항쟁 30주년
1987년 6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민정당 전당대회는 시작부터 환호의 도가니였다. 대회는 전두환 대통령이 민정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당대표의 손을 번쩍 추켜올리면서 절정에 달했다. 전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정부 교체를 방해하는 행위는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엄포는 8시간 만에 공포(空砲)가 되고 말았다.

민정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던 6월 10일 저녁 6시. 서울의 성공회대성당에서는 42번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타종 후 성공회에 모인 40여 명의 재야인사들이 이름도 긴 ‘박종철 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범국민대회’를 선포했다. 지난하던 민주화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을 6월 항쟁의 도화선이자 30년 가까운 군부통치의 구각을 깨뜨리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 달려가는 시민항쟁의 분수령이었다.
그해 1월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조치 이후 국민의 분노는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누군가 이 폭발물에 불을 붙여야 했으나 야당과 재야는 방법면에서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범국민연대 구성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던 5월 18일,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했다.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표출하는 기폭제였고, 빨리 불을 붙이라는 역사의 명령이었다.
야당과 재야세력이 총결집해 결성한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가 범국민대회일로 잡은 것은 6월 10일이었다. 민정당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것에 대한 맞불작전이었다. 6월 10일 오전 국민의 무관심 속에 노태우가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정국은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700여 명의 정치인과 재야인사가 가택에 연금된 상태에서 오후에 범국민대회가 강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 전 연세대 이한열 군이 교정에서 시위를 하다 뒷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전국 곳곳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한열은 6월 9일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연세대 정문 앞에 서 있었다.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총결의대회’를 연 직후였다. 오후 5시쯤 최루탄을 쏘며 달려드는 경찰에 쫓겨 학교 안쪽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경찰이 쏜 최루탄이 이한열의 뒤통수에 직격으로 명중했다.
곧바로 병원 응급실에 옮겨진 이한열은 “뒷머리가 몹시 아프다.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세상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약 30분 후 그는 의식을 잃었고 27일간의 혼수상태에 빠졌다. 시민들은 피를 흘리며 눈의 초점을 잃은 채 힘없이 동료에게 안겨 있는 한 장의 로이터 사진을 보고 분노했고, 6·10 국민대회에서 억눌린 분노를 표출했다.

30년 군부통치의 구각 깨뜨려

6월 10일 전국적으로 5만 8000명의 경찰이 동원된 가운데 전국 22개 도시에서 24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서울에서는 23개 대학 2만 3000명이 6·10 국민대회 출정식을 오전에 연 후 시내로 진출했다. 근무를 마친 직장인들은 넥타이를 맨 채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차량들은 경적으로 지지를 표시했다. 시위 도중 경찰에 붙잡힌 대학생이 시민들의 도움으로 풀려나고,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최루탄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하는 경찰에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의 수많은 거리는 최루탄 열기와 함께 “호헌 철폐”, “독재 타도”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시위는 전국 541곳에서 벌어졌다. 하룻동안 시위 현장에서 연행된 사람은 4000여 명에 달하고 730여 명의 시민과 경찰이 부상했다. 공공시설도 화염병과 투석으로 21곳이나 부서졌다.
그날 밤, 태풍의 눈은 명동성당이었다. 경찰에 쫓긴 1000여 명이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하면서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열기를 이어갈 작은 불씨가 되었고 6월 항쟁의 횃불을 밝히는 성지가 되었다. 청와대는 한동안 강경 진압에 미련을 두었으나 명동성당에 공권력이 진입했을 때 발생할 여러 문제를 검토한 끝에 인내를 선택했다.
명동성당 시위대가 6월 15일 농성을 풀면서 한껏 고조되던 위험수위도 낮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6월 18일 ‘최루탄 추방대회’에 맞춰 전국이 다시 시위대로 넘쳐났다.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거리를 가득 메운 6월 18일의 주역은 부산이었다. 평소 4·19와 부마사태 등을 통해 부산과 마산이 반정부 기치를 들면 정국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부산시민의 이날 시위는 6월 항쟁의 중대한 분수령이었다. 국민운동본부 추산 30만 명의 학생과 시민이 부산 중심가에서 밤새도록 시위를 벌이며 수백 대의 차량 시위대를 앞세워 부산시청과 KBS부산총국 점거를 시도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민주화의 함성이 지축을 흔들었다. 경찰력이 무너져 군이 나오느냐 아니면 전두환 정권이 굴복하느냐의 갈림길이었다. 한동안 비상조치설이 나돌아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우려를 표명했으나 그 시각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표는 6·29 선언을 준비하며 정국의 전환을 꾀하고 있었다.

정권 교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혁명이 아닌 항쟁으로 불려

6·10 대회를 계기로 봇물처럼 터진 민주화 요구 시위는 전국 37개 도시에서 100만 명이 참가하고 3400여 명이 연행되는 ‘6·26 평화대행진’에서 절정을 이뤘다. 평화대행진은 민주화를 열망해온 이 땅의 시민·학생들이 마지막 에너지를 모두 연소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3일 후 노태우의 6·29 항복선언이 발표됨으로써 이 땅의 민주화도 마침내 첫발을 내디뎠다.
이한열은 뇌사 상태에서 이 모든 과정을 홀로 지켜보다가 7월 5일 영면했다. 나흘 뒤 열린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은 슬픔이고 축제였다. 연세대에서 10만 명으로 시작된 추도행렬은 신촌로터리 노제를 지내며 30만, 시청 앞에선 100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고층 사무실에서는 창문 밖으로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고 서울시청과 주변 호텔들의 태극기는 학생들에 의해 조기로 내려졌다. 300여 개의 만장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한열이는 부활한다”, “한열아 너의 가슴에 민주를”
6월 항쟁은 4·19와는 달리 정권 교체라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혁명이 아닌 항쟁으로 불렸지만 노동, 통일, 시민, 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가장 먼저 변화의 물결이 시작된 것은 경제 개발 논리에 밀려 수십년 간 원천봉쇄 되어온 노동운동이었다. 6·29 선언 1주일 후인 7월 5일 울산 현대엔진의 민주노조 설립으로 불붙은 근로자들의 투쟁은 들불처럼 번져 노동자 대투쟁으로 발전했다.

▲ 6·26 평화 대행진 참가자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