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원>을 통해 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라디오 스타>, <왕의 남자> 등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했던 이준익 감독이 복귀작으로 <소원>을 선택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또 하나의 전 국민 관람 영화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신세영 기자 ssy@

10월 2일 개봉을 앞둔 이준익 감독의 신작 영화 <소원>이 지난 9월 23일 언론시사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과 주연배우 설경구, 엄지원, 이레가 참석한 기자간담회는 수많은 취재진의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상영이 끝난 후 이준익 감독과 설경구, 엄지원, 이레가 참석한 간담회에는 영화에 대한 다양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 이준익 감독

‘소원’이의 아빠 ‘동훈’ 역의 설경구는 “처음에는 두려워서 시나리오를 읽지 못했다. 이준익 감독을 만났을 때 정면을 똑바로 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어 “촬영하면서 평범한 일상이 정말 큰 소원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찍었다. 한 순간 지나가는 게 일상인데, 평범한 일상이 소원이고 소중한 1분 1초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며 영화를 통해 느낀 바를 설명했다. ‘소원’이의 엄마 ‘미희’ 역의 엄지원은 “영화 속 일련의 과정들을 겪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고 아팠다. 하지만 영화 속이긴 해도 가족이 있었기에 의지하면서 촬영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쁘게 보이는 것은 포기하자고 생각해서 노메이크업으로 촬영했고 6kg 체중을 증량했다. 정말 진심으로 연기하길 원했다”고 작품에 임한 마음가짐을 드러내며 영화를 관람한 여운으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온 ‘소원’ 역의 아역배우 이레는 “쉬운 연기를 할 때는 이레답게 했는데 어렵고 힘든 장면을 찍을 때는 ‘소원이의 마음을 어땠을까]라는 생각으로 찍었다. <소원>을 모두 함께 보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영화 <소원>은 가장 아픈 곳에서 피어난 가장 따뜻한 감동을 담아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소원이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설경구와 엄지원은 각각 소원이의 아빠 ‘동훈’과 엄마 ‘미희’ 역을 맡아 세상의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는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김해숙, 김상호, 라미란 등 검증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현실적인 캐릭터를 드라마틱한 감정으로 열연해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루어냈다. 특히, 촬영 당시 연기를 지시하는 이준익 감독은 물론 연기하는 배우들 모두 눈물이 벅차올라 촬영을 지속하지 못했을 정도로 특별한 진심을 담았다.

이준익 감독, 이유있는 복귀
이준익 감독은 지난 2005년 조선시대 궁중광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왕의 남자>를 통해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인간사의 희로애락과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사람과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담아내며 1,230만 관객을 동원,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이어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등의 작품을 통해 현실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사람을 향한 세심하고 온기 어린 시선으로 공감을 자아냈다. <평양성> 이후 상업영화 연출을 고사했던 이준익 감독을 복귀시킨 작품은 바로 <소원>이다. 이준익 감독이 연출을 결심한 이유는 시나리오의 공이 가장 컸다. 성폭행을 소재로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을 느끼면서 울컥한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새롭게 데뷔하는 각오로 임했다”는 소감을 전한 이준익 감독은 “끔찍한 현실이지만 지금도 버젓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폭행, 특히 아동 성폭행은 이 사회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렬하고 가장 마음 아픈 상처”라면서 “너무 아파서 들여다보기조차 힘든 소재인 만큼 가짜가 아닌 진짜 같은 마음과 감정으로 임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울 수 없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가족들이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는 과정을 진실하게 담아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불행과 절망의 끝에서 희망이 시작되는 휴먼 드라마를 선보일 것”이라는 말로 영화가 전할 진심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Q. 아동성폭행이라는 다소 민감한 주제를 영화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 <소원> 시나리오를 의뢰 받았다. 평소에 뉴스에서나 나오는 아동성폭행은 내가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냥 통탄만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았다. 너무나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고 난 후 읽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긴 했지만 정면으로 아동성폭행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깊숙이 들어가 보자고 생각했다. 흥행을 떠나 영화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찍었다. 너무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이기에 불순한 태도가 영화에 들어갈까 봐 공손하게, 아주 정중하게 모든 상황의 인물들에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게 노력했다. 여기 함께한 배우들이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은 방향을 보고 찍었던 현장이었다. 오늘 그 현장을 영화로 처음 만나봤는데, 우리의 진심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Q. 엔딩 크레딧을 보니 아동정신상담을 해주시는 분 이름도 있더라. 소재도 그렇고 8살 아역이 연기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캐릭터인데 이레 양에 대한 어떤 배려가 있었나?
- 이레는 현재 초등학교 1학년이고 캐스팅됐을 때는 미취학 아동이었다. 우리가 가장 배려해야 했던 사람은 이레 부모님이었다. 이레 어머님과 작품에 대해 충분히 의논했다. 이레 가족들과 저희가 많이 고려했던 점이 첫 번째는 이레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이런 소재의 영화를 촬영할 때 아동심리와 관련된 폐해가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영화에서도 나오는 해바라기센터에 가서 이레가 영화를 찍는데 있어서 필요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고 아이의 심리적 반응에 맞는 처방을 받았다. 영화를 촬영할 때도 중간 점검으로 정신과전문의가 현장에 와서 이레와 상담과정을 거쳤고, 이 정도면 아이가 이 영화를 찍어도 후유증이 전혀 없겠다는 확인을 받은 뒤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를 찍고 난 후에도 아이에게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충분히 관찰하고 처방했다. 이런 과정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소통을 하는 장치를 만들고 촬영해왔다.

Q. 영화를 보면서 <라디오 스타>처럼 담담하면서 계속 감동적인 느낌을 받았다. 배우 선정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 설경구, 엄지원을 캐스팅하게 된 배경은?

▲ 영화 '소원' 언론시사회에 이준익 감독을 비롯한 주연배우 설경구, 엄지원, 이레가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올해 1월 1일에 이 영화를 찍기로 결정하고 바로 캐스팅에 들어갔다. 설경구가 마침 그 때 스케줄이 된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만나자고 하더라. 만나고 헤어진 뒤 바로 한다고 했다. ‘동훈’ 역을 설경구가 해준다고 해줘서 정말 감사하고 고맙다. 부연설명을 하면 괜히 또 미사여구 같지만 보시면 아시지 않는가. 현장에서도 그랬다. 설경구는 아마 이 이야기 자체의 진정성을 정면으로 맞이하겠다는 정신과 마음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던 것 같다. 엄지원도 마찬가지다. 엄지원은 여배우가 노메이크업으로 촬영하는 건 바라지 않는 모습일 텐데 절대 그런 거 가리지 않고 꽃무늬 펄럭 치마 입고 그렇게 촬영해줬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그런 게 영화에 모두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Q. 극중 배우 김상호가 TV 뉴스를 보는 장면에서 몸으로 자막의 자극적인 단어를 가리고 있던데 의도적으로 가린 건가?
- 사실은 아동성폭행과 관련된 직접적인 단어 사용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사자들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는 민감한 표현들이 많다. 수술실에서 의사가 쓰는 단어를 보면 상상조차 하기 끔찍한 대사다. 피해를 강조한다고 해서 이 영화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 배제하려고 했다.

Q. 제목을 <소원>으로 짓고 주인공 아이 이름도 ‘소원’이로 지은 이유가 있는지?- ‘소원’이 이름이 왜 ‘소원’이냐고 물으셨는데, 그건 제가 바꿨다. 끔찍한 사고를 당해서 일상이 파괴된 가족에게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일 것 같은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이상 어떤 것도 없다. 시나리오 수정할 때부터 그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제목을 <소원>으로 정했다.

Q. 아빠와 딸은 어떻게 보면 먼 관계인데 이 사건을 통해 아빠와 딸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 같은데…
-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꼭 그런 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아빠와 아이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에피소드들이 주축이 됐을 뿐이다. 사실 남자 입장에서는 아빠와 딸이 포커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 보면 ‘미희’와 ‘소원’이의 말하지 않아서 보이는 감정들의 심리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설경구가 캐스팅되는 과정에서 “<라디오 스타>처럼만 찍으면 되지!”라고 말한 적 있다. 보면서 우는 데 웃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웃겨서 나오는 게 아니고 행복하고 따뜻한 웃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하면서 웃는 거다. 그게 목표였다. 그게 전달되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Q. 영화 결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보통 아동성폭행을 영화 소재로 다룰 때는 고발이 목적이다. 하지만 일련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소원>은 고발이 목적이 아니다. 카메라가 좇아가는 건 피해자의 내일이다. 피해자의 내일을 보여주기 위해 달려간다. 그들에게 가장 행복한 결말은 무엇일까에 대한 것이다. 물론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도 바람 중 하나이지만 그보다 우선은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탈무드에 이런 문구가 있다.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 우리는 이 가족들이 정말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에 이 영화의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이상의 사회적인 목소리는 영화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이 그것을 주장하는 것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주장을 해왔지만 현실로 다가오지 못했다면 ‘그럼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가치가 무엇일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됐다고 생각했다. 많은 영화에서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벌칙을 강하게 주장해왔기 때문에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