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스타의 상징이자 멋쟁이가수의 대명사, 가수 윤일로의 삶과 사랑[2]
경쾌한 리듬으로 우울한 전후시대를 밝게 만들다

윤일로씨는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원로가수다.
50, 60년대 거리마다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기타부기’와 ‘월남의 달밤’의 주인공인 동시에 ‘내가 울던 파리’, ‘재즈봄’, ‘청춘 아베크’, ‘남국의 룸바’, ‘심야의 탱고’ 같은 모던한 분위기를 구사하는 로맨티스트였다. SP시대에 창작 캐럴 ‘성종이 울리는 밤’도 발표했다. '일로(一路)'라는 이름은 '오로지 한 길로만 가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 하지만 한 길로만 가기에는 재주가 너무 많았다. 직접 작사, 작곡은 물론 MC, 그리고 코미디언 보다 더 놀라울 정도의 성대모사까지 구사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64년 전성기 시절, 대한뉴스 화면을 통해 소개된 선배가수 현인과 함께 부르는 ‘신라의 달밤’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당시에 회자되던 유행어가 ‘몸은 현인, 마음은 윤일로’였다. 강아지 성대모사까지 똑 같이 구사하는 노래 ‘강아지 부기’는 또 어땠는가. 부기우기, 룸바, 탱고, 왈츠 등 유행을 리드했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냈던 만능 엔터테이너 윤일로씨의 특별함은 오늘날 우리 연예계를 풍성하게 다지는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도 중요한 날, 의미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카톡 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는 멋쟁이다. 물론 부인이 대신 보내지만 말이다. 현재 매니저 겸 비서 역할을 맡고 있다는 부인 박수전 여사(본명 박순자, 78세)도 60년대에 ‘사랑의 물새 한 쌍’, ‘희망의 청춘’ 등을 발표한 가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76세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발표한 신곡 ‘돈돈’이 그렇듯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즐겁게 했던 원로가수 윤일로씨의 삶과 사랑,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두 번째.

글 I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월남의 달밤’과 함께 제2의 전성시대가 펼쳐지다

남 남쪽 머나먼 나라 월남의 달밤/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님 얼굴/그 누가 불어주는 하모니카냐/아리랑 멜로디가 향수에 젖네 가슴에 젖네.
열대어 꼬리치는 사이공 항구/산호등 아롱다롱 물에 어리면/카누에 실어보는 그님의 노래/떠나온 수륙만리 아득한 고향 그리운 산천.
-반야월 작사, 김성근 작곡, 윤일로 노래, 1966년.

이 노래가 발표되던 1966년 무렵 월남(베트남) 파병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대단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UN군 지원을 받던 국가에서 한국군 사상 처음으로 해외로 군대를 내보내는 파병국가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1964년 9월 베트남 전쟁에 의료진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30만 명이 넘는 전투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당시 대한뉴스에서는 ‘월남소식’을 통해 시시각각 월남소식을 전해왔고 초․중․고등학생들에겐 ‘파월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 쓰는 것이 숙제이기도 했다. 골목골목 전쟁놀이의 주제가처럼 울려퍼지던 ‘맹호는 간다’, ‘우리는 청룡이다’, ‘달려라 백마’ 같은 노래들은 또 어땠는가.

그런가 하면 여성들 사이에서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고무줄 치마, 일명 ‘월남치마’가 대유행했다. 때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입을 수 있었던 이 ‘월남치마’는 심지어 시골 아낙네들까지 농사일을 할 때에도 간편하게 입을 수 있어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유행했다. ‘베트콩’이라고 하는 말도 입에 오르내렸는데 남들 몰래하는 행동을 ‘베트콩식’이라 불렀다. 이와 함께 ‘월남의 달밤’ 노래도 국내외에서 크게 히트했다.

특히 ‘월남의 달밤’은 메콩강에 달이 뜨고 정글에 별이 지는 열대의 나라 월남에서의 사병들에겐 이국만 리 고국을 그리워하며  향수를 달래주는 벗이기도 했다.
이 노래의 첫 발표 당시 노래가사는 ‘남 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으로 되어 있었다. 베트남이 섬나라로 묘사된 것. 때문에 각 계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모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월남이 섬이냐, 아니냐’라는 문제가 출제되어 틀린 답이 속출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결국 이후 이 가사는 ‘섬의 나라’에서 ‘머나먼 나라’로 바뀌었다.

머나먼 땅에서 펼쳐진 파월장병 위문공연, 그리고 눈물바다...

1966년 3월, ‘종군연예인단(단장 박시춘)’이 발족된다. 과거 군에 종사한 일이 있는 연예인들로 구성된 이 종군연예인단은 군 위문공연의 일원화를 꾀했는데 해군 군악대 출신인 그도 연예인단에 합류. 간사 직을 맡았다.
월남 파병과 더불어 연예인들의 위문공연도 줄을 이었다. 그 역시 1967년 2월, 청룡부대 위문공연을 시작으로 69년, 71년 세 차례 위문공연을 다녀왔다. 당시 문화공보부가 주관한 이 주월국군 연예위문단에서 그는 코미디언 백금녀와 함께 MC로 활동, 원맨쇼까지 맡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펼쳤던 월남위문공연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모든 군인들이 ‘월남의 달밤’을 합창하며 울고 웃던 모습은 더더욱 그러하다. ‘월남의 달밤’을 실제 부른 주인공이었던 그의 존재는 지금으로 치면 ‘군통령’이었다. 한 번 갈 때마다 사병들과 사진을 대략 5만장 정도 찍어야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그에 따른 에피소드 또한 많다. 어느 날 위문공연 중 빨랫줄에 널어놓은 공연단의 여자속옷이 없어졌다. 사병들이 훔쳐간 것이다. ‘여자 속옷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부적처럼 총알이 피해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그 이후 위문단원들은 아예 여성속옷을 따로 몇 벌씩 챙겨가서 사병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 그는 월남의 사병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자연예인이 함께 MC를 보는 코미디언 백금녀씨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팬티 한 장으로 여러 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젊은 군인들에게 춤과 노래, 오락과 쇼는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역설적으로 힘들고 고달픈 현장일수록 노래와 춤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슴 아픈 장면도 많았다. 공연을 마친 뒤 사병들을 안아주며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격려를 하고 돌아섰는데 그중 한 사병이 헬리콥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거수경례를 하고 있어 모두들 눈시울을 붉혔다. 적들이 도처에 숨어있는 이 위험한 전쟁터에 그 사병을 두고 간다는 게 못내 가슴이 아팠다.

작사, 작곡, 진행까지 네 박자 모두 갖춘 엔터테이너...

가수로서 ‘기타부기’ ‘월남의 달밤’ ‘항구의 사랑’ ‘기분파 인생’ 같은 히트곡을 갖고 있는 그는 동시에 싱어송라이터로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노래들이 1961년에 발표한 ‘파리의 마돈나’를 시작으로 ‘내 사랑 희야’, ‘비 젖은 골목길’ ‘강아지 부기’ 등.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해군 군악대 시절, 제대할 때 행진곡을 하나씩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 엄한 제도가 그에게 작곡에 눈 뜨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는 늘 기타와 오선지를 지니고 다니며 틈틈이 작곡을 했다.
본인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곡은 ‘파리의 마돈나’. 그러나 방송이나 무대에서 잘 부르지 않은 탓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회고한다.

그는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들이 많다. 남진에게 건네준 ‘불청객’과 송해가 부른 ‘노총각 맘보’, ‘평양처녀’ 등이 그 것. 남진의 경우 방송국에서 만나서 건네준 곡이고, 송해의 경우는 라디오 공개방송 ‘즐거운 유람선’을 함께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져 그를 위해 만든 노래다. 송춘희의 ‘내 낭군’, 금호동의 ‘평화스런 마을’, 성재희의 ‘나를 두고 가지마오’도 마찬가지. 가수를 보고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노래로 만들어 건네준 곡들이다.
비교적 최근 스님가수로 유명한 덕윤스님과 해초스님에게 직접 ‘비 나리는 남포동’이란 곡을 만들어 음반으로 취입시키기도 했다. 해초스님은 오래 전에 야간업소에도 자주 찾아오던 팬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스님이 되어 나타나 예전에 윤일로씨가 발표했던 ‘비 젖는 골목길’이란 노래를 리메이크하고 싶다고 해서 건네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윤일로씨 또한 지난 2010년, 76세 때 ‘돈돈(유영환 작사, 작곡)’을 발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모두를 놀라게 한 성대모사, ‘강아지 부기’

그가 만든 곡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노래는 ‘강아지 부기’라는 곡이다. ‘강아지 부기’는 음반 취입 중 한 곡을 더 넣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즉흥적으로 만들어 취입했다는 놀라운 일화가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이 노래 ‘강아지 부기’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성대모사가 뛰어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3절로 되어 있는 이 노래의 1절엔 귀여운 스피츠, 2절엔 사나운 세퍼트, 3절에서는 우리나라 토종개 복실이가 등장한다. 이 노래 속에 강아지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바로 윤일로씨가 직접 내는 성대모사다.

쉽게 믿기 어려운 이 놀라운 성대모사가 화제가 되면서 윤일로씨는 극장무대에 설 때마다 개 짖는 소리를 요청받아 그의 무대 단골메뉴가 되었다. 심지어 박재란씨가 취입한 노래 ‘강아지 왈츠’에 등장하는 강아지 소리 역시 윤일로씨가 내는 성대모사. 취입 당시 작곡가 이인권 선생에게 불려가 ‘왈왈’하며 강아지 역할을 했다는 일화가 그렇듯 그의 성대모사는 신기에 가까웠다.

무대에서의 인기 또한 대단했다. 특히 삼천포 공연 당시 무려 아홉 곡의 앙코르를 요청받았던 일화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무려 아홉 곡의 앙코르를 받아 노래를 불렀는데 관중들이 마지막으로 한 곡 더 불러 달라고 요청해서 할 수 없이 노래를 부르려는데, 앞에 앉아있던 관객 하나가 “야,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하고 소리치더군요. 그래서 “이 분이 그만하라고 해서 들어갑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관객들이 그 사람에게 몰려가 집단구타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까지도 그 분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허허...”

‘대전에서 가장 빼어난 가수’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가수, 박수전을 만나다

현재 매니저 겸 비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부인 박순자 여사를 만난 것은 KBS 남산방송국에서였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부인 박수전 여사는 가수 출신이다. 박수전(朴秀田)이란 예명은 ‘대전에서 가장 빼어난 가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발표한 노래 ‘사랑의 물새 한 쌍’은 음반 발표 당시 나화랑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사실 윤일로씨가 만들어 건네준 곡이었다.

한 쌍의 물새가 모래 위를 걸어가네/정다운 발자욱은 사랑의 추억인가/밀리는 파도 속에 지워지는 발자국/아--- 아--- 아---/지워진 발자욱에 물새가 울고 가네.
한 쌍의 물새가 보금자리 찾아가네/어두운 밤하늘에 별빛이 등대인가/가는 곳 어드메냐 너의 집은 어딘가/아--- 아--- 아---/사랑의 물새 한 쌍 내일 또 만나려나. - 박수전 노래 ‘사랑의 물새 한 쌍’.

청춘스타의 상징이자 멋쟁이가수의 대명사, 가수 윤일로의 삶과 사랑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NM

▲ 합동 일류 공연을 마치고, 왼쪽 끝 인물이 윤일로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