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문화생활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모처럼 음악회에 간다고 치자. 요즘 도시마다 있는 아트센터라는 곳에 가면 대개 대형공연장이 하나쯤은 있고, 객석은 최소한 몇백 석은 된다. 웬만한 공연은 좌석이 꽉 차있게 마련인데, 모처럼 관람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 한 번쯤 가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었구나. 나는 잘 해봐야 몇 년에 한번인데, 다른 사람들은 사는 게 꽤 여유가 있나봐.”
놀이공원을 가거나 해외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평소에 무척 여유생활을 즐기고 사는 것 같다. 반면 영화나 공연장을 자주 찾는 사람은 내심 이와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제법 왔군. 하지만 나보다 더 자주 오는 마니아는 그리 많지 않을 거야.” 그래서 마니아들끼리 모이면 서로 자신의 문화편력을 자랑하느라 은근히 말이 길어진다. 

진실을 살펴보자. 놀이공원에 일 년에 한번 이상 가는 사람, 해외여행을 ‘자주’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다니는 사람의 비중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자기가 부러워하는 일은 남들이 더 자주 즐기는 것 같고, 자기가 자부하는 일은 자기 경험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많다 적다의 판단은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경우에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람의 심리 기준은 한 가지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든가 ‘내 자식이 더 잘나 보인다’와 같은 심리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자기중심적 편파’(Egocentric Bias)라고 한다. 바라는 것이 있을 때는 내가 이미 이룬 것이 작아 보이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을 때는 내가 이미 갖춘 것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는 원리다.  이와 관련한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의 D 해밀턴 박사팀의 연구가 잘 알려져 있다. 일단의 사람들에게 각자 가벼운 상자를 하나씩 들게 하고 다른 사람이 든 상자는 내 상자보다 가벼울까 무거울까를 가늠하게 하는 실험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상자는 자기가 든 상자보다 무거울 거라고 추정하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자무게가 모두 150g으로 같은 것이었다. 이번에는 750g 상자를 들게 하고 역시 다른 사람의 상자 무게를 가늠하게 했더니 이번에는 내 것이 더 무거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사람은 유사한 고통을 여러 사람이 나누고 있을 때, 내가 더 고생한다는 쪽으로 생각하기 쉽다고 한다. 불만족스럽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을 때, 자신의 불만족이 남의 불만족보다 더 클 거라고 본다는 것이다.자기 파트너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에게 지금이 파트너와 대체하고 싶은 이상형은 어떤 형인지 프로필을 적어보게 한 후 그 프로필에 적힌 항목들(외모, 성격, 취향, 지식이나 기술, 직업 등)을 구분한 표를 만들고, 그동안 실망하여 헤어졌던 사람들의 특징을 그 표에 똑같이 적어보도록 하였다. 그가 이상형의 조건으로 제시한 항목을 취합해 적힌 사람들마다 평점화하여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사람마다 10개의 조건 가운데 최소 6~7개 항목에서는 그의 기준에 합격점을 받고 있었다. 8~9개 항목에서 충족되면 거의 이상형의 완성에 가깝다. 그런 정도라면 굳이 헤어지고 다시 이상형을 찾아야 할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 객관적 조건으로는 그렇다. 그런가하면 작별이나 이혼을 고려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앞으로도 지금 헤어지려는 대상보다 더 나은 파트너를 만나게 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자기 파트너에게 언젠가는 불만을 느끼고 더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지 못한 것을 한탄할까. 물론 10개의 조건 중 9개를 충족하고도 모자라는 단 한 가지가 결정적으로 참을 수 없는 조건일 때, 이별은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 심리법칙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기중심적 편파.’ 물론 사람에게 이런 심리가 본능적으로 작용하는 데에는 긍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불만을 느껴야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존재다. 객관성과 상관없이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본능적 불만의 착각현상은 인류를 발전시키는 여러 동력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사람이 덜 예뻐 보이고, 내 생활이 덜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이런 심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고통이 된다면, 이것은 본래 본능적 착각의 일종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 사람, 내 것도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다보면 불행한 감정은 훨씬 누그러들 것이며 삶은 좀 더 관대해질 지도 모른다. NM 

▲ 이은주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