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인 미술관에서 박혜숙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사람, 사람들>을 주제로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추억할 수 있는 우리네 모습을 선보인 전시였다. 화폭을 터전 삼아 그들의 삶을 하나씩 반추시킨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선영 기자 ssy@

사람 그리기

▲ 박혜숙 작가.

박혜숙 작가가 인물화의 매력에 빠진 것은 미얀마에서였다. 호텔 벽면에 무성의하게 걸린 그림이었지만, 햇빛을 받고 있는 여인의 밝고 온화한 모습이 그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이후 재래시장에서 본 그림에서도 두건을 두른 할머니의 모습이 생과 사의 한 단락처럼 강하게 다가왔다.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느닷없이 특수하게, 그리고 특별하게 다가온 것이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 평범해 보이지 않는 순간이 눈에 들어와요. 장기를 두는 노인, 생선을 파는 상인, 경마장에 입장하는 말 탄 기수... 이들의 삶이 갑자기 특별해 보이는 순간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사진을 찍어야 해요. 그걸 회화로 돋보인 거고요.”

그들의 삶을 돋보이는 데는 그의 기법이 한 몫 했다. 붓을 속도감 있게 몰아붙여서 찰나의 표정을 결정짓는데, 이때 생기는 붓의 거친 질감이 살결처럼 도드라졌다. 여기에 높은 채도만의 강렬함이 인물에 생기를 더했다. 세밀 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읽히고 감정이 전달되는 그림이었다.

“세밀 묘사가 인물화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보타니컬 아트를 오랫동안 하면서 세밀화의 정법을 따르기는 했지만, 인물화는 정서적인 교감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포인트 잡기에 몰입했어요. 이렇게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희열과 함께 속도가 붙어서 다작하게 되는데, 그걸 전시장에 걸어놓고 보니 삶이 더 다양해지더라고요.”

▲ <사람, 사람들>, 65x45cm, Oil on canvas.

그래서 <사람, 사람들> 전은 늘 우리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전시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작품에서 면면히 살아 있었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견디는 모습이 어떤 이에겐 애잔함으로 어떤 이에겐 연민으로 다가갔다.

“전시장에 오신 분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감동해서 울컥했다는 분도 계셨고, 동요 작곡가라며 즉석해서 악기를 연주한 분도 계셨어요. 서민의 그림이 위로가 되는 그림이었다면 아이의 그림은 희망이 되는 그림이었을 거예요.”

▲ <사람, 사람들>, 72x52cm, Oil on canvas.

천진한 자유로움
티 없이 맑은 눈과 해맑은 미소가 눈에 띈다. 미소 한 번에 사방이 밝아지고 미소 두 번에 근심이 사라진다. 그가 그린 아이들의 모습이다. 아이 그림에 있어선 국적 불문 인종 불문이었다. 싱가포르,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에서 만난 아이들이었다.

“선교 활동을 십여 년 했어요. 그때 찍은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몇 작품 했어요. 특히 연 밭에서 일하던 아이가 기억에 남았어요. 작은 체구로 커다란 연잎을 한 무더기씩 뜯어 나르면서도 저를 보고 씩씩하게 웃더라고요. 찰나의 순간에 이뤄지는 눈빛 교감이 너무 좋았어요.”

▲ (좌) <사람, 사람들>, 45x65cm, Oil on canvas. (우) <사람, 사람들>, 40x60cm, Oil on canvas.

작가는 사람을 대할 때 늘 눈을 보고 얘기한다.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일어나는 정서적 교감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그린 눈은 진실한 눈빛으로 사람을 무마시키는 매력이 있다. 흑백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흑백 그림도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식탐이 많아서 냄비째 대고 먹는 아이, 친구들과 개구진 포즈를 취하는 아이, 장난감을 들고 어린 동생과 놀아주는 아이... 이런 순수한 모습이 어른들의 눈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거 같아요.”

▲ <사람, 사람들>, 60x40cm, Oil on canvas.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흑백 대비로 나타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도리어 순수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줬다. 화려한 색을 입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흑백 음영이 강한 흡입력으로 시선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구체적인 말을 더했다. 순수성에 대한 의미이자, 회화성에 대한 의미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NM

흑백은 보편하다.
간단하고 깨끗하다.
그 보편함에
그 간단함에
그 깨끗함에 머무르고 싶다.
그냥... 기대고 싶다. (작가노트 中)

▲ <사람, 사람들>, 60x50cm, Acrylic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