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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
헌재,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2017년 04월 07일 (금) 00:53:08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지난 3월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선고기일에서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로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3개월 만의 탄핵심판 절차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장정미 기자 haiyap@

대통령 탄핵심판은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결정은 선고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해 직무정지 상태의 박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국회 탄핵안 가결 92일 만에 탄핵 인용
지난해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34명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로 가결됐다. 당시 의석분포는 새누리당 128석, 민주당 121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야권 성향의 무소속 7석이었기 때문에 새누리당을 제외하면 탄핵 가결선인 200명을 채울 수 없었다. 이에 앞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과 무소속 의원 총 172명은 지난해 12월3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탄핵안이 통과된 당일 국회는 박 대통령에 대한 소추의결서를 헌재에 제출했고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7명이 참석해 첫 회의를 열어 강일원 재판관을 탄핵심판사건 주심으로 선정했다. 이어 12월13일 헌재는 이정미·이진성·강일원 재판관을 탄핵심판 준비절차를 위한 수명재판관으로 지정했고 사흘 뒤 박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은 “탄핵 이유가 없다”는 답변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헌재는 12월 한 달 동안 3차례의 탄핵심판 준비절차기일을 열었고 국회가 요청한 박 대통령의 변론기일 출석을 기각했다. 이후 새해 첫날인 지난 1월1일 박 대통령은 출입기자단 신년 인사회를 열고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했다.

헌재는 1월 한 달 동안 9차례의 변론기일을 거쳤고 박 대통령은 1월25일 공개된 <정규재 TV>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탄핵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후 1월 31일 박한철 당시 헌재소장이 퇴임하고 이정미 재판관이 헌재소장을 대행하게 되었다. 헌재는 2월16일 14차 변론기일을 열고 같은 달 24일을 최종변론기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틀 후 이에 반발하며 최종변론기일을 3월 2~3일로 연기해 달라고 신청했다. 헌재는 2월22일 열린 16차 변론기일에서 최종변론 기일을 2월27일로 연기했다. 다음날 국회 소추위원단은 최종 종합준비서면을 헌재에 제출했고 박 대통령은 2월26일 최종변론에 불출석할 것을 결정했다. 지난 2월27일 열린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은 최종 종합준비서면을 제출했고 헌재는 지난 3월8일 탄핵심판 선고 일자와 시간을 공개한 뒤 3월10일 탄핵 인용을 통해 탄핵심판의 마침표를 찍었다.

탄핵소추 사유 5가지 유형별로 심리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을 읽으며 탄핵심판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로써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350여 일을 남겨두고 대통령직을 박탈당하며 민간인 신분이 되었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를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등 5가지 유형별로 정리해 심리했다. 헌재는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좌천 인사,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해당 언론사 사장을 개입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도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참사 당일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심판 절차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보충 의견을 통해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면서 “다만, 그런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형사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국가 정책 문건을 유출했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모금에 관여했으며 최씨의 지인 업체인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제공하는 등에 개입했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사익추구를 지원하고 이를 위해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 헌재의 최종적인 판단이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이러한 위헌, 위법행위는 대의민주주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며 “박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등 법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다”며 “박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덧붙였다. 안창호 재판관은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탰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 파면되기까지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함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서 첫 탄핵으로 파면된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얻게 됐다. 1952년 2월2일 대구에서 태어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육군 소령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교사 출신인 육영수 여사의 2녀1남 중 장녀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후 1963년 2월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청와대에 입성한 박 전 대통령은 영애(令愛)로 18년간을 청와대에서 지냈다. 성심여중·고교를 졸업한 박 전 대통령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4년 2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1974년 광복절 경축행사장에서 모친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암살당하자 급히 귀국길에 오른 그는 22세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대행 역으로 활동하며 모친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1979년 10월26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안가에서 만찬 도중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서울 신당동 사저로 돌아간 이후 18년간 은둔하며 지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전두환 합수부장으로부터 9억원(후에 3억원은 돌려줌)을, 1982년에는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으로부터 300평 규모의 성북동 자택을 받기도 했다.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대 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한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대선을 8일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46세 때인 1998년 4월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집권여당 후보를 꺾고 당당히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그는 부총재 시절이던 2002년 2월 이회창 총재가 자신이 내놓은 ‘총재직 폐지, 당권·대권 분리’ 등 당 개혁안을 수용하지 않자 탈당을 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2002년 5월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시간 동안 단독회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이 총재가 개혁안을 대폭 수용하자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으로 재합류했다. 이후 차떼기 사건 수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까지 겹치며 한나라당이 큰 위기에 봉착하자 2004년 4월 총선을 앞둔 3월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통령은 당 대표로 뽑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천막당사 설치, 천안 연수원 매각 등 승부수를 띄운 끝에 121석을 얻어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그는 단숨에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이후 대표 재임 2년3개월 동안 지방선거와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의 완승을 거두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5월20일에는 서울 신촌로터리 지방선거 유세 도중 오른쪽 뺨 11㎝가 찢기는 테러를 당한 그는 병원에서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등 자신의 몸보다 당을 먼저 생각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이명박 후보와의 경쟁에서 패해 비주류로 밀렸으나 전문가들로부터 개인수업을 받으며 정책을 가다듬고 현장을 다니면서 절치부심했다. 이후 2011년 말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보선 패배, 디도스 공격 파문으로 위기에 빠지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다시 당의 전면에 등장한 그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며 개혁에 착수했고 2012년 4월 총선에서 야권연대로 맞선 민주통합당을 누르고 과반의석(152석) 확보에 성공했다. 이어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선 84%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하며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청와대를 떠난 지 34년 만에 대통령의 딸에서 대통령의 자격으로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자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란 타이틀까지 얻었던 박 전 대통령은 임기 4년차인 올해 오래 인연을 맺어온 최순실과 그 일가의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탄핵에 따른 파면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헌재의 탄핵 인용에 대한 정치계 반응
청와대는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기대와 달리 전원 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하자 심한 충격에 빠졌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일각에서는 기각 내지 각하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관측했으나 전원일치로 탄핵인용을 결정하자 침묵을 지켰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각자 방에서 TV로 생중계되는 헌재 선고를 지켜봤다. 박 전 대통령도 관저에서 자신에 대한 헌재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이날 선고문을 읽어 내려가며 언론자유 침해문제나 세월호 문제에 대해 탄핵 사유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을 때에는 탄핵 기각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권한대행이 최순실 국정농단 부분을 읽어가면서 탄핵 인용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고 결국 탄핵안 인용 결정을 내리자 참모들은 침통함에 빠졌다. 한 관계자는 결과가 나온 직후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한 것과 관련 정치권의 반응도 크게 엇갈렸다. 내심 기각을 기대했던 자유한국당은 침통한 표정 속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힌 반면 야당들은 탄핵을 인용한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국민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탄핵선고 직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자유한국당은 헌재의 고뇌와 숙의를 존중하고 인용 결정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집권 여당이자 국정의 동반자였다”며 “하지만 집권 여당 책무를 다하지 못해 지금까지 국민들이 쌓아올린 한국 국격과 한국 국민이라는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은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집권여당이 아니다”며 “이제 공당으로서 헌법과 민주주의의 엄중한 가치를 받들고 분골쇄신의 각오로 당개혁, 정치개혁, 국가개혁에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특별 성명을 통해 “헌재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국정농단 세력에 의해 무너진 대한민국에 ‘국가이성’이 살아 있음을 만방에 보여줬다”면서 “133일, 대한민국을 지켜왔던 1500만 촛불민심은 오늘을 ‘시민명예혁명’의 날로 기억할 것이다.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자 최고 주권자임을 선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는 우리 국민의 위대한 투쟁과 승리를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로 기록할 것”이라며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낡음’을 끝내고 ‘새로움’으로 채워나가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며 “만장일치로 인용해준 헌법재판소 이정미 헌재소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재판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국민의당을 대표해 국민과 함께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또 “지금 우리의 정치, 외교, 남북관계 모든 게 엉망이다. 촛불과 태극기를 하나로 모으고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을 통하게 해야 한다”며 “국민의당이 앞장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병국 바른정당 대표도 성명서를 통해 “대한민국이 정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지켜내기 위해 국민의 힘으로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고 부패한 패권주의와 절연하는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우리 바른정당이 국민을 배신한 국정농단 세력과 결별하고 황량한 벌판에 나와 탄핵을 주도했던 것이 바른 선택이었고 옳은 결정이었음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탄핵정국으로 두 동강난 대한민국은 이제 상처를 딛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국민 화합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패권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국민통합과 개헌을 주도하는 역사적 소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 ‘박 전 대통령 탄핵’ 속보로 보도
사상 초유의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에 세계 각국 정부와 언론은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미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소식에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는가 하면, 일본과 중국은 아예 생방송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를 보도하기도 했다. 마크 토너 미국 국무부 대변인 대행은 한국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소식과 관련해 “한국의 국내 정치적 문제에 대해 특정한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한국 국민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내려진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특히 “한미동맹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굳건하다”며 “미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동맹을 보호하고 함께 대응하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너 대변인 대행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남은 임기 동안 계속 협력할 것이며, 한국민이 차기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더라도 생산적 관계를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토너 대변인 대행은 탄핵결정 직전에도 “한·미 동맹의 근간은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 역시 “변함이 없다”고 확인했다. 미국 언론들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식을 ‘긴급뉴스’ 또는 ‘속보’로 전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CNN방송은 정규 뉴스 도중 ‘PARK OUT’이라는 제목으로 속보를 내보내고 촛불집회에서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인용까지 과정을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만장일치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한 사실을 전하며 청와대와 삼성그룹 등 한국사회 전반이 연루된 상황을 보도했다. 중국의 CCTV는 이날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보도를 중단하면서까지 한국의 탄핵 결정을 집중 보도했다. 특히 CCTV는 이정미 재판관의 탄핵안 선고 장면을 실시간 중계한 뒤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까지 특집으로 보도했다. 봉황TV도 헌재의 판결을 생방송으로 연결해 동시통역으로 중계하고, 향후 한국의 조기대선과 정치지형 변화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관영 신화통신도 헌재의 탄핵안 선고 직후 긴급 기사로 보도를 냈고, 환구시보는 인터넷 속보를 통해 헌재 만장일치 탄핵결정을 전하며 “한국 역사의 새장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일본 역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주요 방송들은 탄핵심판 과정을 동시통역 생중계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NHK TV아사히 등 방송들은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개시와 함께 동시통역 생중계를 진행했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자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 등 주요 매체들은 박 대통령 파면 소식을 긴급속보로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한국 국민들은 민주주의 손상에 분노를 느꼈고, 헌법재판소도 박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통령 탄핵은 한국 헌정사상 처음”이라며 “국정혼란 해소와 함께 국민 분열을 막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헌재 판결이 “한국을 역사적 시점에 놓이게 했다”며 “많은 이들이 이번 판결이 뇌물과 정실인사로 오염된 나라의 개혁 조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FT는 “박근혜 파면 후 집회 참석자들이 충돌하면서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대통령 파면 후폭풍을 우려했다.

피의자 입장으로 첫 검찰조사 소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3월21일, 탄핵 11일 만에 진행된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도중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가기 직전 취재진을 향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혐의를 부인해왔던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발언이었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거나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승복한다는 뜻을 밝힌 적이 없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은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사익’도 취한 적이 없다는 게 박 전 대통령이 지금껏 펴온 논리다. 최순실씨의 사익 편취는 사전에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연설문 초안을 최씨에게 건넨 것은 인정했지만, 이는 초안인 만큼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13개다. 지난해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8개를 적용했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5개를 적용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 ▲공무상 비밀누설 ▲특가법상 뇌물수수 및 제3자 뇌물수수 등 5가지 죄명이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다.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와 제3자뇌물죄를 적용했다. 삼성그룹이 승마 지원을 명목으로 최순실씨에게 수십억원을 지원한 부분은 뇌물죄,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원의 출연금을 낸 부분은 제3자뇌물죄를 각각 적용했다.

또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시행 주도,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강 전 체육국장 등 부당인사 조치, 이상화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승진 인사 개입 등에 공모했다고 판단하고 직권남용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모두 8개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요와 현대차에 납품계약 강요 및 플레이그라운드 71억원 광고발주 압력, 롯데에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 출연 요구 등이 있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대가성을 인정한다면 뇌물죄가 성립돼 실형이 불가피해진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1억원 이상의 뇌물죄의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에 선고되는 집행유예의 범위를 벗어난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이 뇌물죄가 아닌 다른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 선고를 받는다면 집행유예를 통해 실형을 피할 수도 있다. 형법에 따르면 ▲직권남용(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강요(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공무상비밀누설(2년 이하 징역·금고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은 모두 이론상 집행유예 대상에 포함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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