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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검열 블랙리스트, 문화행정 파괴의 실체
“박근혜 탄핵, 이제 진실 규명 남았다”
2017년 04월 07일 (금) 00:18:52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3월 10일 오전 11시22분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선고가 떨어졌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박 대통령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이날 물러났다. 2013년 2월25일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1475일만이다. 문화예술인들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헌재의 탄행 인용 결정에 지지를 보냈고, 시민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신세영 기자 syshin@

그 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이 1만여 명이라는 충격적인 숫자와 함께 사실임이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공개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회의록(2015년 5월 29일)에 의하면 권영빈 당시 예술위원장은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 다시 말해 블랙리스트가 존재함을 밝히고, 지원 심의를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검열의 행태는 상식을 벗어나는 창작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 확대 노력을 30년은 후퇴시키는 것이었다. 특정 작가의 기금사업 선정을 방해하고, 전시 확정된 작품을 철거하는 것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까지도 조직적인 탄압을 받았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세월호 참사관련 글을 모은 ‘눈먼 자들의 국가’를 출간한 이후 피해를 받았다. 시집전문 출판사 ‘천년의 시작’도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에 선정돼 15년 전부터 한해 1700만원씩 지원받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원이 뚝 끊겼다. 이재무 시인은 정부지원사업에서 배제된 이유가 ‘세월호’관련 시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치검열 증거가 밝혀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9월에는 문예위가 문학창작기금 심사 과정에서 특정작가를 거론하며 선정 리스트와 심사결과를 심사위원들에게 조정할 것을 종용했고, 심사위원들이 이를 거부하자 자체적으로 선정결과를 축소 발표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서 공개되기도 했다.

특검 “헌법 본질적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이하 박영수 특검)가 3월 6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박영수 특검이 거둔 큰 성과 가운데 하나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박영수 특검은 “정부가 청와대의 입장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은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해 정권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려는 행위로 바라보려는 시각에 기인한 것으로서 헌법의 본질적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특검은 이미 2월 7일 김기춘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강요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두 사람 외에도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 정관주 문체부 1차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 등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 특검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의 근거를 정책보고서 형태로 청와대에 제공했다.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박 전 대통령의 첫 발언은 2013년 9월 30일이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안 해 문제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3월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황병헌) 심리로 진행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공판에서 “블랙리스트는 정파적으로 편을 갈라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가 과거 정권에서도 있었고, 좌·우 이념에 기초한 정당한 정책이었다. 블랙리스트는 진보를 완전히 배제하라고 한 게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라고 한 것”이라고 반박하자 좌우 이념은 명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고은 시인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무식한 일"
고은 시인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6일 밤 방송된 SBS 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서는 한국 문단계의 거장 고은 시인이 출연했다. '제정임의 문답쇼 힘’은 매회 정치, 경제, 학계, 문화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출연해 대한민국의 현황, 나아갈 길, 인간적인 삶의 지혜를 나누는 토크 프로그램. 사회 경제부 기자 출신이자 저명한 컬럼니스트인 제정임 교수가 진행을 맡고 있다. 방송에서 고은 시인은 최근 문제가 된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대선 당시) 지지율 절반으로 당선이 됐으면, 국민 앞에 겸손했었어야 했다. 스스로가 경계를 지어서 자신을 지지 하지 않는 인물들을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킨다고 하는 것은 무식한 일이자, 국제적으로도 치명적인 일”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밖에 민족의 호적부로 불리는 '만인보'의 탄생 뒷이야기도 전했다. 19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수감되었을 당시 기획된 만인보는 30여 년간 직간접적으로 만난 5천 6백여 명의 삶을 시로 엮은 연작시집으로, 해외에서는 ‘20세기 세계문학사상 최대의 기획’이란 찬사를 들은 작품이다. 최근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인 고영태 전 블루K 이사의 부모가 만인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광화문캠핑촌 해단, 블랙텐트 해체 “예술로 싸웠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됐던 ‘블랙텐트’가 3월 18일 오전 해체됐다. 블랙텐트는 문화예술계 지원 사업에서 정치 성향에 따라 예술인을 배제하거나 차별 지원한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반발해 예술인들이 지난 1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운 임시 공공극장이다. 블랙텐트 운영위원회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 시까지 블랙텐트를 운영하기로 했던 만큼,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됨에 따라 공식적으로 해체를 결정했다. 운영위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블랙텐트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지 계속 논의해나갈 계획이다”라며 “이를 위해 연극계 적폐 청산 방법을 논의하는 포럼을 여는 등 앞으로도 활동을 이어나갈 방침이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월 10일 문을 연 블랙텐트는 두 달여 동안 정부 지원에서 배제됐던 세월호 희생자, 일본군 위안부 등의 소재로 한 공연들을 시민들에게 선보여 왔다. 13일 개관축하공연에 이어 16일 개관공연 ‘빨간시’를 시작으로 3월 9일까지 총 72개 공연을 올렸다. 약 400명의 예술가가 참여했으면, 관객은 3373명으로 평균 관객수 91명이었다. 이해성 극장장(극단 고래 대표 겸 연출)은 “광장극장은 해체하지만 이 극장이 내세웠던 연극의 공공성, 극장의 공공성, 예술의 공공성은 촛불시민이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에 재정립될 국공립극장에서 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 항의하며 광화문광장에 텐트촌을 꾸린 문화예술인들 또한 노숙 142일째인 3월 25일 텐트촌을 철거했다. 광화문캠핑촌 예술인들은 언론과 국회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지난해 11월 4일 첫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앞서 지난 20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탄핵으로 1차 목표를 달성했으니 해단한다. 캠핑촌은 종료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적폐 청산이라는 남은 과제를 위해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광화문캠핑촌은 촛불로 친 텐트였고 촛불로 만든 마을이었다. 우리는 외치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쓰고, (사진을) 찍고, 신문을 만들고, 토론했다. 블랙랙리스트 주범인 조윤선·김기춘과 노동자를 탄압한 이재용이 구속됐고, 이 모든 사태의 총책임자 박근혜 시대가 끝났다”고 자평했다. 촌장으로 추대됐던 송경동 시인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행진은 이제 시작”이라면서 “광장을 달궜던 주권자들의 명령처럼 박근혜 정권의 잔재가 모두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랙리스트 침묵한 연극협회 불신임한다
연극계가 블랙리스트를 사태에 침묵했던 한국연극협회 비상대책위원회에 대한 불신임을 선언했다. 연극인 100여명은 지난 23일 밤 10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대학로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연극인연석회의를 열고 연극인연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연극인 비대위)를 발족했다. 이 비대위는 97개의 극단과 265명의 연극인이 참여한다. 이날 회의는 블랙리스트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고 후속 대책들을 마련하기 위해 연극인들이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듣기 대안을 제시하려고 마련됐다. 연극인들은 △연극협회 비대위(위원장 최종원)의 연극계 대표성 여부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및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등 관련자 처벌 △연극계 발전을 위해 정책대안 제시 △국립극단 ‘작가의 방’ 관련 검열 의혹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한국연극협회(이사장 정대경)가 설립한 비대위가 연극계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논쟁했으며, 블랙리스트 사건이 정점에 있을 때 한국연극협회가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종원 연극협회 비대위원장은 “정대경 이사장이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고 매도해선 안 되며, 문예위 위원으로 블랙리스트에 가담했는지에 대해선 연극협회 비대위에서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인자 독립기획자는 “한국연극협회는 협회 내부조사를 먼저 해야 하며, 연극계를 대표하는 대외활동을 할 자격을 잃었다”고 했고, 채승훈 연출가는 “한국연극협회가 대표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현장 연극인의 목소리를 지금이라도 경청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해성 연출은 “한국연극협회는 검열에 대해 아무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고 권위와 대표성만을 내세우며 연극인들과 소통하지 않았다. 정대경 이사장의 문예위 최고위원 시절에 벌어졌던 검열 방조 혐의도 해소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박상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등 6명을 비대위 공동 대표로 선임한 이들은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문화 부역자들’ 기록, ‘검열백서’ 쓴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정 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을 앞세웠다. 이를 위해 대통령 산하 문화융성위원회를 구성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초대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하지만 탄핵사유 중 하나가 바로 ‘블랙리스트’ 작성에 따른 권한 남용이 적용되면서 ‘문화융성’은 물거품이 되고 결국 탄핵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작성·시행된 배경에는 군부독재 시대에 머물렀던 김기춘 비서실장의 천박한 문화예술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에는 창작의 자유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검열하고 차별하고 탄압했다. 실제로 김 수석의 업무일지에는 그가 수석비서관들에게 “70년대와 같은 열의로 대처해야”라고 지시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2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진실을 국민 여러분께 밝히고, 신속한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앞장서야 할 실·국장들부터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문화예술위원회(박명진 위원장)는 홈페이지에 “국민과 예술가를 위한 기관으로서 부당한 간섭을 막아냈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으로서 힘이 없었고 용기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라는 형식적인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작성 경위와 피해 현황에 대한 설명은 없으며,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도 없다. 박명진 위원장은 2015년과 2016년의 국정감사에서 거짓 증언을 하고, 심지어 조작된 회의록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문화예술계의 요구와 예술인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작가회의,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등 문학 5단체는 2월 21일 “블랙리스트로 문화예술 능멸한 공공기관장들은 사죄하고 물러나라”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연극계는 근본적인 대안으로 박근혜 정부의 검열실태를 고발하는 ‘검열백서’를 만들기로 했다. 백서에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정부와 공공기관의 검열 사례가 담긴다. 여기에 친일 예술인부터 군사독재 정권의 부역자에 이르는 연극계의 검열 역사와 예술 지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도 수록될 예정이다. 연극 연출가인 김재엽 검열백서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기득권 동맹은 바뀌지 않고, 윗선을 핑계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현실에서 적어도 실제 자행된 사실 만큼을 정리해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전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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