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옥 작가의 관심은 인간, 정확하게 말해서 ‘나’다. ‘나’를 주제로 미래에 대한 지향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나’는 고독, 불안, 허무와 같은 감정들을 극복하려는 의지에의 표의로써 현실과 맞서는 작가 자신이다.

신선영 기자 ssy@

루드베키아 여인

▲ 김춘옥 작가.

김춘옥 작가가 나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으로 거슬러간다. 꽃과 자연경만 그리던 그에게 “구체적인 나를 표현해보라”는 지도 교수의 권고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그 대상은 의자였다.

“교수님께서 의자를 나로 생각하고 감정 이입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무작정 의자를 차에 싣고 바다로 갔어요. 꽃무늬 천을 의자에 묶어서 거센 바람에 날리게 한 뒤 그냥 두어도 보고 던져도 보며 의자의 비명소리까지 담아보려고 했어요.”

그렇게 연 개인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의자의 딱딱하고 경직된 이미지가 자신을 더 삭막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재 구상에 들어갔다. 어차피 나를 드러내는 거라면 나 자체로 보여주자는 생각에 나에 집중된 동작들을 그려 나갔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꽃 이미지도 그대로 가져갔다.

“원래 꽃을 좋아했어요. 어린 시절 머리에 커다란 플라스틱 꽃핀을 꽂고 행복해하던 기억이 제 기쁜 날의 상징이거든요. 처음에는 머리카락에 몇 송이 그려 넣다가 나중에는 꽃으로만 머리를 그리게 됐죠.”

작가가 즐겨 그리는 꽃은 루드베키아다. 마당에 심어 놓고 감상하던 꽃 중에서 선택했다. 뜨거운 태양을 향해 손바닥 펴듯 꽃잎을 활짝 펼친 모양이 인간의 심리 기저에 있는 표출의 욕망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여인의 생명력도 더 강하게 어필됐다.

▲ 나르시스의 방16-1, 90x60cm, 장지에 채색, 2016.

“나를 가장 나답게 그리는 게 중요했어요. 마인드맵을 한다고 하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해서 정체성을 찾는 건데, 아무리 분석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아니게 되기도 하고 변하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결국 삶은 끊임없이 나를 탐구하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아요.”

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보다는 나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불완전한 기호로써 존재하게 하는 것. 이것에 그의 작품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신화 속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완전한 자기 모습에 매료됐다면, 작가는 물에 비친 불완전한 자기 모습에 매료된 것이다.

▲ 나르시스의 방16-5, 160x100cm, 장지에 채색, 2016.

무용수와 나  
작가는 물 대신 거울을 이용해서 자신을 내비쳤다. 그래서 거울 앞에 선 무용수는 작가이고, 무용은 그림 그리는 행위가 된다. 무용을 선택한 이유는 움직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동력을 갖고 있어서 주위를 환기시기 때문이다.

“무용이나 미술이나 결국에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려는 거잖아요. 무용수가 거울 앞에서 자기 몸 선을 가다듬듯이 저는 화판 앞에서 붓질을 가다듬고, 무용수가 무대 위에 설 날을 기다리듯이 저는 전시회 열 날을 기다려요. 완전한 날을 위해 불완전한 날들을 끌어안는 거죠.”

▲ 나르시스의 방16-6, 160x100cm, 장지에 채색, 2016.

그도 그럴 것이 유난히 더웠던 지난해 여름, 작가는 옥상 작업실에서 에어컨도 없이 밑 작업을 해야 했다. 풀도 쑤고 배접도 하고 아교반수도 하고 과슈도 얇게 펴서 여러 번 바르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늘 다리가 퉁퉁 붇고 목덜미가 뻣뻣해 있었다. 여기에 새로운 작품에 대한 심리적 압박까지 더해져서 정신적으로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땀은 흠뻑 쏟았는데 진전된 게 없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작품 속 무용수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어요. 무용수가 두 팔을 펼치기도 하고 한껏 끌어안기도 하면서 자기감정에 몰입하는 것은 무너지지 않으려는 철저한 자기애에요.”

▲ 나르시스의 방16-3, 160x100cm, 장지에 채색, 2016.

이렇게 만든 작품들로 지난 1월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여덟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제목은 <나르시스의 방>이었다. 나르시스가 지나친 자기애로 비쳐져서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도리어 그 잣대를 거부하며 자기애를 반등해보였다. 

“사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사랑하지 않고는 발전도 없고 성숙도 없어요. 저도 이만큼 활동을 할 수 없었겠죠. 얼마 전에는 아트 상품으로 개발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에요. 여러 방면으로 공유돼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면 좋겠어요. 나르시스의 방에 놓인 거울과 같은 존재로요.”

▲ 나르시스의 방16-2, 160x100cm, 장지에 채색, 2016.

김춘옥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삼육대학교 미술컨텐츠학과에 출강 중이다. 지금까지 여덟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섯 번의 국내외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3월에 열릴 코엑스 화랑아트페어와 7월에 열릴 아홉 번째 개인전 준비로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