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 588번지와 우리나라 매춘史
2월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골목 어귀부터 각종 경고문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경고문이 낭떠러지라도 되는 듯 골목 앞까지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1980년대 200여 개 성매매업소가 자리 잡아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이었던 이곳은 번지수를 따 ‘청량리588’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다음 달 도심재개발사업에 따라 지도에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일보 2017년 2월 16일>

우리나라에는 원래 공인된 매춘업이라는 게 없었다. 기생이나 여사당 등이 매춘을 하긴 했으나 매춘이 본업은 아니었다. 반면 일본에는 16세기 후반부터 ‘유곽’이라는 공인된 매춘 제도가 있었다. 일본의 매춘업이 조선으로 들어온 것은 청일전쟁 후였다. 홀로 조선에 온 일본 남자들이 여자를 찾는 일이 잦아지자 이들을 상대하는 매춘 여성이 일본에서 흘러들어온 것이다.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주둔한 용산 일대와 군대를 따라온 민간인들의 주거지가 된 남산 진고개 일대에 요리점을 가장한 윤락 업소가 밀집했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된 첫 유곽 지역은 1902년 7월 24일의 부산이었다. 부평정 1정목에 세워진, 요리를 팔며 성매매하는 ‘안락정’이 국내 최초의 유곽이었다.
인근에 유사한 집들이 생겨나 ‘아미산하(蛾媚山下)’ 유곽으로 불렸던 이 유곽들은 1907년 8월 미도리마치로 장소를 옮겨 훗날 ‘완월동 사창가’의 뿌리가 된다. 1902년 12월 인천 선화동에 세워진 시키시마 유곽은 1960년대 숭인동으로 장소를 옮겨 훗날 ‘옐로 하우스’로 자리를 잡았다. 1903년에는 원산에도 신마치 유곽이 생겼다. 윤락과 유흥의 문화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들의 조선 진출이 급증하면서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1904년 10월 서울 남산 부근 쌍림동(현 묵정동) 일대에 신마치 유곽이 생기면서 유곽은 전국적인 형태를 띠었다. 1906년 용산 도원동에 모모야마 유곽, 1908년 대구 야에가키초 유곽, 1909년 청진의 성가곤 유곽과 나남의 이하정 유곽, 1910년 목포 죽동 유곽과 대전 중동의 춘일정 10번지 등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매음이 근대의 코드인 것처럼 전국으로 확산되어 1910년 한일합방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10개 이상의 도시에 유곽이 들어섰다.

▲ 청량리 588

대한매일신보 1910년 1월 25일자는 “연말에 내부 위생국에서 조사한 바 매음녀의 수효를 대강 들은즉 한인 매음녀가 2,468명이오 일인 매음녀가 2,830명인데 한성 내에 제일 많고 그 다음은 경상북도, 함경남도, 경상남도, 경기도요 제일 적은 곳은 강원도라더라”라고 보도했다.
당시의 매춘업은 원칙적으로 공창(公娼)이었다. 즉 외부와 격리된 지역에 모아놓고 그곳에서만 성을 팔게 하는 제도였다. 창기는 유곽 지대로 들어서면 외부와의 출입이나 연락이 제한되었다. 1908년 9월 일제가 창기의 자격에 제한을 두는 ‘창기 단속령’을 발표하고, 1911년 6월 성 검사를 받아야 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매매는 공인 직업이 되었다.
일제는 더 나아가 1916년 3월 31일, 일제 경무총감부령 제4호로 ‘유곽업 창기 취체 규칙’을 발표해 공창제를 법제화했다. 각 지방마다 달랐던 밀매음 단속과 성병 검사를 전국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취체 규칙에 따라 일본식 공창제가 법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매춘이 합법화되고 창기들에게는 세금이 부과되었다. 규정을 위반하면 구류나 과료에 처해졌고 선불을 받은 창기가 도주하면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았다. 이로 인해 구류, 과료, 태형 등을 받았던 조선인은 1,797건(1916), 3,316건(1917), 4,518건(1918)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유곽이 얼마나 빠르게 확산했는지 1919년 12월 16일자 ‘시카고 트리뷴’지는 “일본이 조선 땅에 도입한 공창 제도는 조선인들의 성적인 타락을 위해 고안된 악의 제도”라며 실태를 꼬집을 정도였다. 법의 보호를 받게 되자 유곽업은 더욱 늘어나 1930년에는 유곽이 25개로 증가했고 창기 수는 3,170명(일본인 1,798명, 조선인 1,372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허가도 받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는 사창(私娼)도 많았기 때문에 매춘업 규모는 공식 발표보다 훨씬 컸다. 한 기록에 따르면 1931년 사창 창기 수는 조선인 5,073명, 일본인 4,361명이었다.

일본의 매춘업이 조선으로 들어온 것은 청일전쟁 후

조선인 창기 수가 늘어난 주된 원인은 가난이었다. 특히 1929년 세계대공황이 몰아치면서 빈민층 소녀들이 매춘업으로 스며들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학대를 견디다 못해 삭발 파업을 하거나 자살하는 여성들도 생겨났다. 중일전쟁 후에는 ‘위안부’란 이름으로 공창이 공급되었고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4년에는 ‘정신대’란 이름으로 악명을 더했다.
광복 후에는 일본인 유곽업자들과 창기들이 이 땅을 떠나면서 매춘업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일본인이 물러간 유곽은 한국인이 차지했으나 미 군정은 공창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1947년 8월 7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공창제 폐지령을 제정하고 10월 28일 미 군정장관이 폐지령을 인준함에 따라 1948년 2월 14일 발효와 함께 공식적으로는 이 땅에서 공창제가 사라졌다.
언론은 ‘여권 수호의 서곡’, ‘추한 왜정 잔재 해소’라며 반겼지만 한편에서는 사창 밀매음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공창이 폐지되었다고 해서 6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매매춘이 하루아침에 근절될 리가 없었다. 우려한 대로 대구의 유곽은 자갈마당으로, 대전의 유곽은 중동 10번지로, 부산의 미도리마치는 완월동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사창이 성행했다. 미군 기지촌까지 형성되면서 유곽 지역은 더 넓게 분포되었다.
1961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여론을 반영해 ‘윤락행위방지법’을 만들었지만 처음부터 선언적 의미가 강했던 데다 8년 후에야 시행령이 발표되다 보니 역시 유명무실화되었다. 오히려 1962년 정부가 32개 기지촌과 성매매 집결지 104곳을 특정 지역으로 선정해 공창 아닌 공창을 인정한 꼴이 되었다. 창녀들은 서울역, 영등포, 청량리, 미아리 텍사스, 종로3가 등지에 집단 거주하면서 포주와 공생 관계를 맺었다. 게다가 전통적 사창가 외에 다방, 찻집, 사우나, 터키탕, 이발소, 카페, 룸살롱, 여관 등으로 무대가 확대되어 전국 어디에서도 성매매가 가능하게 되었다.
2004년 9월 정부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성매매특별법)’을 만들어 단속을 강화한 뒤로 사창가는 대부분 문을 닫고 사라졌지만 이 역시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으로 튀어나오는 풍선 효과처럼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은밀한 방법으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어 범법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현희 KAL 858기 폭파  
김정남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쥔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 용의자들을 체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보 전문가들은 고도로 훈련받은 공작원이라면 수사망을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지적한다.… 치밀한 암살 작전엔 범행 즉시 제3국으로 향하는 탈출 계획이 포함된다. 범인이 도주로에 진입하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1987년 대한항공 KAL858기를 폭파한 김현희도 계획된 탈출로였던 공항에서 범행 이틀 뒤 체포됐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8일>

김승일(70세)과 김현희(25세)가 일본인 부녀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로 위장해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 공항에 내린 시간은 1987년 11월 29일 오전 7시 44분이었다. 그들이 타고온 KAL 858기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해 아부다비와 태국의 방콕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로, 그 안에는 이라크 주재 총영사 부부를 비롯해 중동으로 돈을 벌러 갔다가 3년 만에 돌아오는 한국인 노동자 등 모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김현희와 김승일은 아부다비 공항에 내리면서 858기 선반 위에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와 술병을 두고 내렸다. 그 안에는 350g의 콤퍼지션 폭약 C4와 700cc의 액체폭약 PLX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858기에 탑승하기 전, 폭발물이 9시간 후에 폭발하도록 시간을 맞춰놓았다.
두 사람은 아부다비 공항에서 도주용으로 계획된 로마행 비행기를 타려 했으나 통과 비자 문제에 걸려 하는 수 없이 수 시간을 기다린 끝에 바레인행 비행기를 탔다. 그동안 KAL 858기는 11월 29일 오후 2시 1분(한국시간) 미얀마 랑군(현 양곤) 지상관제소와의 교신을 마지막으로 2시 5분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발했다.
바레인에 도착한 김승일과 김현희가 호텔에 투숙해 있는 동안 우리 정부는 아랍에미레이트 주재 한국 대사관을 통해 858기에 탔다가 아부다비 공항에 내린 15명의 외국인 탑승자 가운데 2명의 일본인이 의심스럽다는 보고를 받았다.
북한이 해외 공작 거점으로 자주 이용하고 있는 빈(오스트리아)과 베오그라드(유고슬라비아) 등을 여행한 점, 두 사람의 목적지인 바레인은 베오그라드에서 암만(요르단)을 경유해 직행하는 것이 편리한 데도 3시간 또는 6시간씩 공항 내에서 통과여객으로 대기해야 하는 바그다드와 아부다비를 경유한 점 등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일본 측에 두 일본인의 신원 조회를 의뢰하자 일본이 위조여권임을 알려주었다. 김승일과 김현희는 한국 정부가 바레인에 이런 사실을 알린 것도 모른 채 12월 1일 로마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바레인 공항으로 나갔다가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 순간 김승일은 독약 앰풀을 깨물어 자살했다. 김현희도 독약 앰풀이 들어 있는 담배 필터를 깨물었으나 경찰의 즉각적인 제지로 의식만 잃었을 뿐 목숨은 붙어 있었다.
정부는 바레인 정부에 두 사람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바레인 정부는 수사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 김현희의 신병을 억류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해 김승일의 시체 및 증거물 일체와 김현희를 우리 측에 인계했다.

한동안 허위진술로 일관하다가 범행일체 순순히 자백

김현희는 대통령선거 전날인 12월 15일 서울에 도착해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김현희는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중국 흑룡강성 태생의 백취혜로 중국 광주에서 살았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마카오 도박장 등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중 신이치를 만나 양녀로 입양되어 일본에 살고 있다”는 등의 허위 진술로 일관하며 수사진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수사진은 김현희가 거주했다고 주장한 일본 주소지가 허위로 확인되고 중국과 일본의 전통적 생활양식이나 지리에 미숙하며, 사용하는 중국어도 흑룡강성 말씨가 아닌 점 등을 집중 추궁했다.
서울 도착 후 8일이 지난 12월 23일 오후 5시경, 김현희가 갑자기 옆의 여자 수사관에게 우리말로 “언니 미안해”라고 말하고는 울먹였다. 마유미가 김현희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김현희는 이후 범행 일체를 순순히 자백했다. 1972년 11월 우리 측 남북조절위 대표들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장기영 대표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당시 중학교 1학년생이 자신이라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김현희의 진술은 1988년 1월 15일의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자신은 북한 노동당 조사부 소속의 공작원으로 아버지는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고 했다. 1962년에 태어나 평양외국어대 일본어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0년 공작원으로 뽑혀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7년 8개월간 공작원 교육을 받았으며 1987년 10월 7일 김정일의 친필 공작 지령을 받고 11월 12일 평양을 출발해 모스크바(소련)~부다페스트(헝가리)~빈(오스트리아)~베오그라드(유고슬라비아)를 거쳐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KAL 858기를 탔다고 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둔 남조선에 큰 타격을 주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김현희는 조사 과정에서 일본에서 납치된 이은혜라는 여성으로부터 21개월간 일본인화 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일본은 이은혜가 1978년 일본에서 사라진 다구치 야에코임을 밝혀내고, 2002년 9월 북한·일본 정상회담에서 이은혜가 다구치임을 김정일이 실토하도록 함으로써 KAL기 폭발사건이 결국 북한의 소행임을 간접 인정하도록 했다.
김현희는 재판에 회부되어 1심과 2심의 사형 선고를 거쳐 1990년 3월 27일 대법원에서도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4월 12일 특별사면 조치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를 살려둔 것은 KAL기 폭파사건이 북한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테러임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은 “김현희라는 여성이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모략극”이라고 맹비난했다. 북한의 성명은 1988년 4월 전대협의 배후조직인 반미청년회를 통해 22가지 의혹으로 제기되었다.

가짜설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 더 이상 나오지 않아

▲ 김현희가 입에 자살방지용 재갈이 물린채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진상규명대책위를 결성한 유가족들도 115명이나 되는 탑승객의 유해 또는 유품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점, KAL기가 두부 크기의 폭발물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점, 어린 시절의 김현희 귀 모양이 성인이 된 김현희의 귀 모양과 다르다는 점 등을 들어 우리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의 국가정보원은 김현희에게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안기부 공작원임을 고백하라”,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라”, “수녀가 되라”는 등 유무형의 압력을 가했다. MBC PD수첩에 출연할 것을 강요했고, 공개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김현희의 거주지를 방송사에 알려주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115인의 신부는 2003년 11월 김현희 KAL 858기 조작 의혹사건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보름 뒤에는 MBC의 PD수첩이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을 보도했다. 이처럼 전방위로 가해오는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김현희는 끝까지 버텼다. ‘김현희 가짜설’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김현희가 북한의 공작원이 맞다고 주장하는 측은,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면 25년도 더 지났으니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일본과 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 등 여러 나라가 개입되어 있어 조작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자작극 주장을 일축했다.
죽은 김승일의 치아를 검시해보니 충치를 납으로 때운 것으로 밝혀졌는데 납을 충치 치료에 쓰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고, 김현희가 베오그라드에서 북한 외교관으로부터 폭탄을 받았다고 진술한 내용이 유고 정보부에 의해 실제로 확인된 것도 가짜설을 부정하는 증거로 채택되었다. 대통령선거 하루 전 김현희를 국내로 압송해 선거에 영향을 끼친 정치적 의도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사건 자체가 조작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는 2007년 “KAL기 사건은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 의해 이뤄졌고, 당시 안기부가 이 사건을 기획·공작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발표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