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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에 위로와 진심을 담다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더 늦기 전에 해야만 했다”
2017년 03월 05일 (일) 23:37:23 신세영 기자 syshin@newsmaker.or.kr

서양 법언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말이 있다.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적인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비판과 논란은 여전하다.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돼 일본군 위안부로서 생활을 강요당한 위안부 피해자. 1993년 본격 정부 등록 사업이 시작됐으며, 정부 등록을 마친 위안부 피해자는 239명으로 최근 2년여 동안 46명이던 생존 피해자는 39명으로 줄었다.

신세영 기자 syshin@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그린 영화 <눈길>이 삼일절에 개봉한다. <눈길>은 일제 강점기 서로 다른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같은 비극을 살아야 했던 ‘종분’(김향기)과 ‘영애’(김새론) 두 소녀의 가슴 시린 우정을 다룬 감동 드라마다. 지난달 13일 CGV왕십리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는 두 주연배우 김향기, 김새론과 함께 이나정 감독, 류보라 작가가 참석했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이나정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며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된 다양한 영화와 연극, 공연, 책, 그림들을 봤다. 이런 자료들을 통해 이 문제가 많은 분들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되새길 수 있었고, 큰 힘이 되었다”며 작품 준비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가난하지만 씩씩한 소녀 ‘종분’ 역을 맡은 김향기는 “<눈길>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기에 더욱 굳게 마음먹고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했다”며 당찬 속내를 드러냈다. 이어 “<눈길>은 ‘봐야할 이유’가 필요한 영화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누구나 한 번쯤 관심을 갖고, 가슴 깊이 새기고, 책임감을 얻고 가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부잣집 막내에 공부도 잘하는 똑 부러지는 소녀 ‘영애’ 역의 김새론은 “’과연 내가 이 사실을 연기로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고, 누군가는 반드시 표현해야 할 작품이라 생각했기에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류보라 작가는 <눈길> 작업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이 이야기를 단순히 소재로만 쓰지 않고 잘 그려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세계가 먼저 인정한 우리 시대 필람 영화
<눈길>의 작품성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제37회 반프 월드 미디어 페스티벌 최우수상 수상, 중화권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24회 중국 금계백화장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수상(김새론), 제67회 이탈리아상에서 대상인 프리 이탈리아상 수상까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 또,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제18회 상하이국제영화제,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상영돼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영화를 관람한 영화계, 문화계, 정치계 인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전 국민 모두가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며 입을 모아 극찬했다.

천우희, 김재경, 김민재, 박희본, 최필립, 인교진, 김현숙, 정가람, 곽동연, 정영기, 소이, 방은진 감독 등은 영화 관람 이후에도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등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영화는 비극적인 상황을 담지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그 ‘눈길’만큼은 아름다웠으면 했다. 로케이션 팀은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철원부터 소록도까지 전국의 모든 ‘눈길’을 돌아다니며 완벽한 촬영 장소를 찾는 노력을 거듭했다. 열여덟 동갑내기 배우 김향기, 김새론은 고된 촬영 가운데에서도 시종일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눈길>의 촬영이 한겨울에 진행됐고, 주요 촬영지가 주로 산과 강, 숲 등이었던 만큼 촬영 과정은 험난했다. 얼어붙은 강 위에서 장비팀 스태프가 넘어져 얼음판이 깨지는 바람에 전 스태프가 대피했던 에피소드와 추운 날씨에 피 분장이 얼면서 두 배우 손가락이 동상에 걸릴 위험에 처했던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 이나정 감독 & 류보라 작가가 말하는 <눈길>

Q. <눈길>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 류보라 작가(이하 류):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채감만 갖고 있었고, ‘감히 내가 이걸 소재로 써도 되나’라는 생각이 있어서 이야기로 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기작 얘기를 하며 할머니 서너 분들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아, 진짜 더 늦기 전에 해야 되는구나’라고 크게 느꼈다.

- 이나정 감독(이하 이): ‘더 늦기 전에’라는 작가님의 기획 의도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리고 여러 기록들 중 당시 소녀들의 바람을 적은 기록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집에 가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다”, “좋아하는 오빠와 결혼하고 싶다”, “공부를 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 “푹신한 이불을 덮고 싶다” 등등. 이 주제가 멀고 먼 일제시대의 비극으로만 느껴졌는데, 꿈 많은 소녀들의 비극이 절실하게 느껴졌고, 나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이 작품을 진심으로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용기가 났다.

Q. 어떤 사전 준비를 했고, 무엇에 가장 신경 쓰고자 했나?

- 이: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당시 개봉한 영화, 사진, 기록들을 부지런히 찾아보았다. ‘위안부’에 관련된 소품이나 의상, 사건들도 가능한 실제에 가깝게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떠한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해도 충분히 비극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실적인 방향으로 묘사하고자 했지만 그들이 함께 걷던 ‘눈길’은 아름다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서정적인 촬영지를 찾아내기 위해 스태프들과 노력했다.

Q. 배우 김향기, 김새론에 대해

- 이: 둘 다 나이는 어리지만 훌륭한 연기력을 가진 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김향기의 맑고 강한 눈빛과 김새론 배우의 서정적이고 쓸쓸한 눈빛이 각각 ‘종분’과 ‘영애’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둘 다 촬영에 들어가면 극중 캐릭터가 되어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디렉션이 없어도 캐릭터를 섬세하게 잘 표현해 줬다. 또한 두 배우가 서로 대화를 많이 하면서 함께 준비해온 것이 많아서 배우들의 감정을 믿고 그대로 담아냈다.

- 류: 연기에 대해서는 제가 감히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감독님하고 누가 했으면, 누가 하면 좋을까라는 얘기는 많이 나눴는데, 그때 의견 일치를 봤던 게 극중의 인물과 비슷한 나이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혹, ‘20대 성인 여배우 분들이 했을 경우 아주 조금이라도 성적으로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반면에 ‘열다섯 살로 산정된 ‘종분’과 ‘영애’의 나이에 맞는 어린 친구들이 이런 역을 해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향기, 김새론 두 배우가 흔쾌하게 해주겠다고 했을 때, 감독님과 저는 ‘정말 다 됐어. 우린 다 끝났어’ 하면서 정말 좋아했다.

Q. 촬영을 하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이: 끔찍한 폭력의 순간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 폭력으로 아픔을 겪은 분들이 계시고 그것이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님도 대본을 쓸 때 소재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많은 부분을 고민하셨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배우나 관객이 성적으로 폭력적인 장면을 경험하듯이 지켜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미성년자인 두 배우가 촬영하면서 간접적이나마 그러한 폭력적인 상황 속에 놓여 지지 않도록 많은 부분 유의했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나 대사는?

이: 제가 가장 명대사로 꼽는 것은 “나는 한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이다. 할머니 ‘종분’이 ‘영애’의 환영을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했던 이 대사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정서를 잘 표현해준 것 같다. 또한 얼음 강 장면과 수용소에서 생사를 확인하며 서로 노크를 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그들의 절박한 마음과 소녀들의 우정이 가장 절실하게 와 닿기 때문이다.

류: 후반부 ‘영애’가 ‘종분’과 눈길을 걸어가며 “이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고, 나중에 이만큼 배가 불러서 아이도 낳을거야”라고 소박한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이 있다. 똑 부러지고 선생님이라는 확실한 꿈이 있던 친구가 아주 소박한 꿈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이 이뤄지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Q. <눈길>을 어떤 분들이 봤으면 하고, 무엇을 느꼈으면 하는지?

- 이: 우리는 이 문제가 익숙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들어왔고 이미 알고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면서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와 다르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겪게 된 거대한 비극,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생각해 보면서 많은 분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 류: 한 분이라도 더 많이 보셨으면 한다. 몇 십 년 전에 나라에 힘이 없어서 이런 큰일을 당했다, 그래서 억울하다, 그런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극 중에 ‘은수’라는 고등학생이 나온다. 혼자 살고 있고, 소외 받고 있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힘든 이웃이 있다는 것, 세계 곳곳에 여전히 여성, 약자, 어린이들이 아주 많이 있고, 지금도 과거의 문제들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NM

▲ 눈길 언론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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