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김기종은 흙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물유리라 불리는 규산소다 액체를 이용해 표면을 갈라지게 한 트임 기법이 그것인데, 이 트임 기법만의 투박하고 질박한 표면 효과로 흙의 회화적 자율성 내지는 주체성을 획득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신선영 기자 ssy@

흙으로부터의 자유

▲ 김기종 도예가.

도예가로서는 드물게 육군 학사장교 출신인 그는 화가가 되려고 진학한 미대에서 우연히 흙을 접한 뒤 어릴 적 꿈을 접고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이러한 이력이 그의 작품에 독특한 개성으로 나타나는데, 반듯하면서도 절제된 형태미와 실험정신을 앞세운 거침없는 표현력이 그의 작품에서 묘한 동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도예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래된 장르다. 분명 오랜 연원이지만 전통이라는 토대 위에 당대의 예술적 감수성을 접목시키고자 한 그는 오래된 낯섦으로, 새로운 친숙함으로 도자의 새 길을 개척해 냈다. 그가 “전통을 중요시하면서도 현대적 아름다움이라는 공예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에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품 시리즈 <흙이 주는 자유>는 커다란 예술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흙을 도자라는 하나의 정형으로 이뤄냄에 있어서 인위적으로 어떤 형상을 조형해냈다기보다는, 마치 흙의 내부에 현존해 있는 어떤 형태를 끄집어낸 것 같은 자연스러운 형태미가 마음을 안정시켜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유롭게 분출된 트임 기법이 억압되고 갇혀 있던 의식의 경계를 풀어주며 묘한 해방감 내지는 안도감을 안겨준다. 일종의 숨구멍 같은 것이다. 그동안 다른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단순한 트임 기법을 과감히 넘어선 것이어서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김기종 작가에게 있어서 트임 기법은 흙과 불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본연의 개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 특질 중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 흙이 주는 자유 16-26, 330x330x200mm, 2016.

도자를 바라보는 시선
도자를 흙과 불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가마 속에서 초벌과 재벌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제작 과정 상의 특징 때문이다. 같은 흙으로 가마에 넣는다고 해도 기물의 성형, 유약의 발림, 건조 과정에 따라 불의 적용이 달라지는 탓에 어느 한 단계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숙련과 기술이 요구된다.

작가는 작품 주제가 정해지고 작업 구상이 끝나면 흙을 선별해 토련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적게는 3일에서 많게는 10일 동안 성형을 한 뒤 음지에서 완전하게 건조시킨다. 유약을 빨아들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온도인 850도의 가마에서 애벌구이가 끝나면 조심스럽게 기물을 꺼내 완전히 식힌 뒤 유약을 바르거나 핸드 페인팅을 한다.

▲ 흙이 주는 자유 16-05, 300x300x360mm, 2106.

다음 시유가 끝나면 다시 가마에 재임한 뒤 1300도에서 고온 소성에 들어간다. 이렇게 12시간에서 15시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엄청난 온도를 견뎌낸 뒤에야 도자의 진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작가는 이 기나긴 일련을 결코 급하거나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조금만 방심해도 도자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도자도 그러한데, 유약의 정도와 성형의 방식이 남다른 그의 작품은 더욱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마치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 혹은 한 명의 인간을 성장시키는 과정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하나의 생명을 다루듯 조심스럽다. 생명을 만들어가듯 형태를 잡고 마음이라는 선을 내어 정체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고 함부로 다룰 수 없다.

▲ 흙이 주는 자유 16-21, 320x320x310mm, 2016.

도예가들이 작품을 자식에 비유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작가는 작품이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망치로 내려치거나 바닥에 던져 깨뜨리는 일이 없다. 자식이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식을 버리지 않듯이, 화병이 안 되면 화분으로라도 그 생명을 유지시켜준다.

이렇게 작가의 영감에 의해 완성된 작품들은 이미 수많은 전시를 통해 세상에 선보여져 왔다. 지금까지 12회의 개인전과 53회의 초대전을 열고 230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또 세계도자PRE-EXPO여주국제도예전, 한·미얀마수교40주년국제교류전, 한·일미술교류전 등에 출품했다.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충청북도미술대전, 충청남도산업디자인전, 전국기능경기대회 등 각종 미술대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사)한국도예협회 이사, 서울아트포럼21 부회장, (사)충북예총 부회장이라는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중견 작가로서의 책임 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 흙이 주는 자유 16-28, 330x330x230mm, 2016.

이밖에도 협성대학교 조형회화과 및 예술대학원 환경회화학과에 출강하며 23년 동안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젊은 작가들과 교류하며 당대의 현실적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3한국예술문화도예명인으로 선정됐으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2007충북의꿈>에 대표 작가로 선정돼 청주예술의전당에 대표 작품을 제작 설치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2008년 지식경제부장관에게 표창을 받으며 대내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기종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