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상실, 소외, 고독과 같은 불안한 감정들이 내포돼 있다. 일테면 정체성 혼란에 대한 반작용 같은 것이다. 현실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갈등을 반복하는 이 시대의 청춘이자, 미술 작가인 신선희도 수없이 되뇐 질문이라고 한다.

신선영 기자 ssy@

나비와 나

▲ 신선희 작가.

신선희 작가의 작품에는 앳된 소녀가 등장한다. 작고 가냘픈 몸매, 탄력 있는 매끈한 피부, 윤기가 흐르는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제 나이 때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소녀는 그러한 자신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하다. 굳게 다문 입술과 초점 없는 눈빛으로 무표정을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수방관적인 태도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이 소녀를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이라고 말했다.

“방안에서 작업만 하다 보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고, 가진 것도 없는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생각에 곧잘 빠지게 돼요.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계속 자문했어요. 종래에는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능이 있고, 이 재능으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으며, 이 행복을 응원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배경을 최대한 밝고 환하게 그려서 소녀에게 이 좋은 것들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이러한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배가시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나비다. 미대를 졸업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육년 여간 붓을 놓았었고, 붓을 다시 잡을지 말지를 고민하던 찰나에 우연히 본 나비가 그에겐 어떤 계시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면 찢어질 것 같은 얇은 날개를 갖고 있지만 시종일관 나풀거리면서 자기만의 길을 가는 나비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순수 그 자체였다. 이 나비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2013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재능, 행복, 사람... 이런 것들은 저 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독수리처럼 힘차고 당당한 날갯짓은 아닐지라도 나비처럼 나풀거리면서 우리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죠. 그래서 소녀에게 나비로 옷을 지어 입혀주고, 악기로 만들어서 손에 쥐어주고, 화관도 만들어서 머리에 씌워줬어요. 이 작품들을 모아 지금까지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전시 주제는 <네 꿈을 펼쳐라> 였어요. 아직 올려다 볼 것이 많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자화상이 자칫 자기중심적으로 치우치거나 자기 고립에 빠지지 않도록 나비라는 특정 소재를 개입해서 상실감, 소외감, 박탈감, 허무함과 같은 메마른 감정들을 위로해줬다. 특히 근작에서는 나비의 의미가 더 부각될 수 있도록 상징화해서 작품의 형식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 허무, 90x72cm, oil on canvas, 2015.

나비의 꿈
근래에 선보인 작품들은 거대하고 웅장한 대자연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나비의 날개를 활짝 펼쳐서 화면 중앙에 커다랗게 배치했고 그 사이사이에 섬, 구름, 바다, 호수, 동산과 같은 대자연을 점층적으로 그려 넣어 신기루 같은 유토피아를 건설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대자연의 광경이 미지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그리고 경외심이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다.

“나비의 양 날개 사이에 만들어진 공간이 저에겐 또 다른 곳으로 가는 통로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그 통로에 제가 바라는 세계들을 하나씩 그려 넣었어요. 이 세계들은 우리가 목표하는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천국으로 가는 문> 시리즈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 그린 작품들인데, 모든 것이 무너져도 제가 바라는 이상향에 반드시 도달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요.”

▲ 천국으로 가는 문(시작), 130x130cm, oil on canvas, 2016.

우리의 삶을 천국으로 가는 여정으로 비유한 <천국으로 가는 문> 시리즈는 시작, 여행, 휴식이라는 주제로 총 세 작품으로 나뉜다. 천국에 도달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문을 선택해서 열고 들어가면(시작) 망망대해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나룻배에 의지한 채 어디로 연결될지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여행) 여기에는 그 너머 어딘가에 아름다운 호수와 동산이 펼쳐져 있을 거라는(휴식) 작가의 소망과 염원이 담겨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이상향을 향해 가고 있어요. 하지만 그곳에 도달하는 일은 만만치 않죠. 작품 <선택>에 뱀을 그려 넣었듯이, 우리 삶에는 수많은 유혹과 위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잘 지켜서 이상향에 꼭 도달하자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어요. 여기서 나비는 삶의 목표를 나타내는 지표이자,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에요.”

▲ 선택, 116x91cm, oil on canvas, 2016.

그래서 근래 작품들은 청춘의 자화상에서 청춘의 시대상으로 영역이 확대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삶에 유혹과 위협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현실의 장벽이 높으면 높아질수록 점점 더 거대해지는 나비 형상이 마치 이 시대 청춘들이 느끼는 불안한 감정들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오히려 긍정적 역량으로 발휘시켜보려는 작가의 의지는 자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존재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를 끊임없이 물으며 계속 성장하고 있다. NM

▲ 섬, 91x91cm, oil on canva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