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 교수가 연초부터 한국을 방문해 가벼운 흥분을 일으켰다.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의 진화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제공한 진화생물학자에게 질문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인간이 과학으로 생각할 줄 알기 때문에 과거 창궐했다가 멸종한 공룡과는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멸종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인류의 진화에 대해 생물학적인 측면보다는 문화적 기술적 측면에 더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인간이 과거에는 머리가 점점 커지면서 진화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과 미래에는 문화와 과학기술의 변화에 따른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의 관심사는 인공지능이다. 한국에서도 프로기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통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터. 인간의 진화를 얘기할 때 인공지능은 빠질 수 없는, 어쩌면 미래 인류의 정체성에서 가장 핵심적인 테마일 것이다. 기후변화나 소행성 충돌 같은 물리학적 변화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외적 요인이라면 인공지능의 발전이야말로 인간 내적 요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 인류의 성(性)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인류의 미래 섹스를 예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이버섹스다. 이는 꽤 오랫동안 전화기나 인터넷 영상, 채팅 등을 통한 실제 인간 대 인간의 성적 교감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거기에도 인공지능의 개념이 끼어들었다. 사랑을 나눌 상대를 필요로 하는 인간과 그 인간에게 대응하는 인공지능 사이의 성적 교감이 가능한 시대가 올수 있다는 것이다. 근래 그 가능성을 실감있게 보여준 영화가 있었다. 국내에서도 개봉된 미국영화 <HER>(2013, 스파이크 존스 감독)는 실재하지 않지만 마치 현실의 연인보다 더 영리하고 자상한 사이버 인격체와 한 남자의 사랑이 줄거리를 이룬다. 아내와 별거중인 작가 테오도르는 공허한 삶을 달래주는 컴퓨터 속 인공지능 ‘사만다’와 소통하다가 사랑을 느끼고 연인처럼 지낸다. 사랑의 감정은 성적 교감의 욕망을 불러일으켜 고비를 맞게 된다. 사만다의 ‘대리육체’를 통해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진정한 사랑에서 정신이 더 중요한가 육체가 더 중요한가 하는 고전적 주제도 느끼게 되는 장면이다. 적어도 테오도르에게 있어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육체보다는 정신적 교감에 더 무게가 있었던 셈이다. 좀 더 상상해 보자면 개인의 특성에 맞게 최적화된 ‘인공지능 연인’은 조만간 기술적으로 가능해질 것 같다. 상상컨대 이러한 인공지능에 전통적인 섹스인형(sex doll)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의 기술까지 접목시키면 20-30년 내에는 내게 꼭 맞는 인조인간의 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상품화된 인공지능 애인, 인공지능 남편이나 인공지능 와이프들이 등장한다면 인류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과학기술 시대의 인간. 새로운 주제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인류는 많은 숙제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왔다. 의식주 문제로부터 보다 나은 공존의 방식들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왔는데, 이것이 크게 보면 문명적 진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이 늘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주었는가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하다. 외적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개발해온 다양한 무기들은 인류 전체로 보면 잠재적 불행을 오히려 확대시킨 면이 있고 특히 핵무기들은 인류 전체의 안전한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도킨스 박사도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게 될 미래사회에 대해 경고를 빠트리지 않았다. “스티븐 호킹 같은 학자들도 인류가 정교한 인공지능을 통해 자기파괴의 씨앗을 뿌리고 스스로 위험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 바가 있지요.”
사람들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점점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친구대신 컴퓨터 게임과 더 친근한 아이들. 만나서 대화하기 보다는 인터넷과 SNS로 더 많이 소통하면서 정작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 이미 섹스가 퇴화된 채로 개인화되어가는 부부들, 가족들.
한번은 속도를 늦추고 이러한 현재에 대해, 그리고 이 현실이 초래할 미래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숙고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NM 

▲ 이은주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