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황혼이 곱다. 아침 동편에서 떠서 낮 시간을 거쳐 긴 여행을 끝낸 태양은 이제 서산으로 몸을 감추면서 마지막 빛으로 하늘을 장엄하게 물들인다. 죽음을 앞에 둔 최후의 몸부림인가? 그러나 그것은 몸부림이 아니고 사라짐을 아름답게 장식하려는 뜨거운 열정이 아닐까? 여기 붉은 정열로 서쪽하늘을 불게 물들이는 저녁 해 같은 사람, 정재홍 선생을 소개한다.

황태일 기자 hti@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통신수단은 ‘편리’하기를 넘어서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다. 멀고 가까운 개념이 혼돈스럽다. 옛날 같으면 까마득히 모르고 지나갈 지구 반대편 사건이 이제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퍼진다. 스마트폰으로 연결되는 ‘SNS'라는 괴물은 비밀스러운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만의 은밀한 모습을 언제 누가 사진 찍어 퍼뜨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산다. 100년 후의 세상을 상상해보면 공포뿐이다.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서 파고드는 정보의 홍수로 세상은 한참 어수선하다. 개인주의가 강해진 사람들은 스스로 영웅 되기만을 원하고 타인을 영웅으로  만드는 일에는 지극히 인색하다. 이런 난세를 이끌어야 할 리더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신뢰받아야 할 정치인들이 국민들로 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존경받아야 할 선생님들도 자긍심을 잃고 단지 직업인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다. 대전시 서구 ‘안물안’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살면서 18년째 1만 명에게 일본어 눈을 달아주는 것을 목표로 노년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작은 거인, 정재홍 선생이 있다.

일본어 재능기부에 대한 정재홍 선생의 이야기

▲ 정재홍 선생

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중학생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어렵게 학업을 마치고부터 본인 살기에 급급한 채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전반기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한숨 돌려 생각하니 나라에 보탬 되는 일을 못하고 반백년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지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무엇인가 사회에 보답하는 일을 해보자고 찾은 것이 일본어 재능기부였습니다. ‘하필 왜 일본어냐?’ 고 못마땅해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비참하게 임진란을 겪은 일이나 근세에 들어와 치욕스럽게 일본의 식민국이 되었던 것도 일본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가 힘을 기르지 않았고 일본의 야망을 몰랐으며 나아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무지했던 탓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 같은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국민들 하나하나가 힘을 축적하는 것이고, 외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힘을 키우는 한 방법으로 작은 일이지만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날에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과 지구가족으로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상대방의 언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저에게 일본어를 쉽게 가르치는 재주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18년째 계속 해오고 있으며 그동안 대략 2000명 좀 넘게 일본어 눈을 달아드린 것 같습니다. 대전 시청을 시작으로 하여 한밭대학교 평생교육원, 서대전 세무서, 서구청, 대전시교육청 등 여러 기관을  다니며 가르쳤고 지금은 대전시 서구에서 운영하는 관저문예회관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어는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회사를 다니면서 일본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에 일본어가 필요했습니다. 독학으로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그 덕에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가 쌓여 지금은 일본어를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문법용어도 이해하기 쉽도록 바꾸어 가르치고 동사 변화 형용사 변화도 공식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배우시는 분들이 쉽게 이해된다고 하십니다.

그동안 살아오신 발자취를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1945년에 해방둥이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대학에서 식품가공을 공부했습니다. ROTC 7기로 소위 임관하여 전방에서 근무했지요. 제대하고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삼립식품에 입사해 연구실에서 빵 만드는 공부를 했지요. 해태제과로 옮겨 음료연구실에서 써니텐 등 여러 가지 과즙음료를 개발했습니다. 해태유업으로 옮겨 유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기술연구소장직을 끝으로 1992년에 사직했습니다. 회사를 중앙그룹으로 옮겨 계열사인 미래시대(주) 부사장, 중앙전자(주)대표이사, 중앙정보처리학원 원장 등의 업무를 수행하다가 1998년에 사직하였습니다. 그 후 어학 연수차 캐나다 밴쿠버 인근 한적한 전원마을 깁슨이라는 곳에 가서 후반기 삶을 위해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1999년 말에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후반기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부터 일어 재능기부를  시작했고 2008년에 구봉신협 이사장에 선출되어 2013년까지 이사장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2014년에 남대전농협 조합장에 출마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고 이때부터 자유인이 되어 마음 편히 아내과 함께 텃밭에 남새 심고, 연못 파서 연꽃 심고, 연탄불 피워가며 작은 무인카페 ‘안물안 연가(蓮家)’를 운영하면서 자연과 벗 삼는 시골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어 재능 기부는 계속하고 있으며 강단에 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