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불산 누출 사고가 터진 지 넉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상주에서 염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유독물질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종서 기자 jslee@

지난 1월 12일 오전 상주 청리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웅진 폴리실리콘 공장에서 밸브 파열로 추정되는 사고로 염산 200t가량이 누출돼 주민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번 사고에서 다행히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유독가스 누출에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사고 발생 후 상주시(성백영 시장), 소방서, 경상북도, 경찰서, 대구지방환경청(심무경 청장), 군부대 등 관계기관 140여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사고수습에 총력을 기울였다.

밸브 파손으로 발생한 人災
지난 1월 12일 발생한 상주폴리실리콘 공장 염산누출 사고는 현장 감식결과 염산탱크와 연결된 밸브가 파손돼 빚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중부본부 김은호 이화학과장은 1월 14일 “현장을 둘러본 결과 메인 밸브가 파괴돼 염산이 누출된 것을 확인했다”며 “육안 검사만 해서는 정확한 원인을 말할 수 없는 만큼 파괴된 밸브를 수거해 실험실에서 정밀 검사를 해 원인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고 원인과 관련, “폭발로 파손된 것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폭발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며 “날씨 때문에 동파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정밀 검사를 통해서만 원인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4명으로 구성된 국과수 감식팀과 경북지방경찰청은 11월 14일 오전 11시경 현장에 도착해 회사 관계자로부터 사고 개요를 들었다. 이어 염산이 누출된 사고 현장으로 이동해 염산 탱크를 점검하고 밸브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등 약 2시간에 걸쳐 사고 원인을 찾는 데 주력했다. 국과수는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상주 웅진폴리실리콘(주) 염산 누출사고와 관련 국과수의 감식과 함께 경찰 수사도 본격화 되고 있다. 상주경찰서는 우선 사고경위를 밝히기 위해 최초 민간인 신고자와 공장 근무자 등을 상대로 1월 13일부터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현장으로부터 6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소를 사육하면서 공장 쪽에서 흰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지난 1월 12일 가장 먼저 신고를 한 김모씨로부터는 청리면사무소에 오전 10시 40분, 시청은 10시 42분, 119는 10시 45분, 112는 11시 01분께 각각 신고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용역업체 소속 공장 경비원인 최초 발견자 하모씨는 “경비실 근무 중, 12일 오전 7시 20분께 사고현장 쪽에서 연기가 올라와 처음에는 염산유출인지 몰랐는데 계속해서 안쪽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 오전 7시 39분께 공장직원 유모(31)씨에게 전화로 알려 줬다”고 했다. 유씨는 경비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공장직원들에게 조치를 취하도록 연락을 한 다음 자신은 오전 11시 30께 공장에 도착해 직원들과 함께 염산을 이동시키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국과수의 정밀 감식결과를 보고 수사범위와 업무상과실 여부, 사고 후 조치의 적절성 여부 등을 본격 수사할 예정이지만 일단 공장 책임자, 사고 당일 근무자 등을 불러 유독물질 관리 실태, 공장측 과실 여부 등을 집중 조사 중이다. 한편 본지 취재 결과 최초 민간인 신고자 김씨가 진술한 신고 시간(오전 10시 40분)은 청리면사무소의 접수시간과 일치하고 있으며 이후 청리면에서는 현장 조사를 거쳐 시청 3개 부서에 약 20분 후인 오전 10시 59분에 팩스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염산 유출사고 발생한 공장, 지난해부터 급격한 경영난
염산 유출사고가 난 상주 폴리실리콘공장은 태양광부품 신소재 생산업체다. 태양광 업황 악화로 폴리실리콘의 생산원가는 Kg당 33달러인 반면 지난해 1월 평균 제품가격은 30달러에서 작년 연말엔 15달러선으로 급락하면서 경영난을 겪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9개 금융사로부터 3천100억원을 대출받았으며 부채상환비율을 초과해 상환 요구를 받았지만 분기별로 500억원씩을 상환하기가 어려워 지난해 7월 가동중단(휴업)과 함께 8월에는 매각 검토에 들어갔다. 이후 막대한 전기요금(미납요금 100억원 중 42억원 납부)과 부가가치세 보전압류(91억원) 등의 압박을 받으면서 급기야 10월에는 직원 254명을 22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대표이사도 경질됐다. 이 같은 상태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염산 누출사고가 터지자 웅진폴리실리콘(주)은 물론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던 상주시도 절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리면 마공리 청리일반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공장은 부지 58만5천㎡, 건축면적 5만㎡에 달한다. 지난 2008년 7월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상주시도 고용창출과 세수증대, 인구증가 등에 큰 기대를 걸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09년 1월 기공식 뒤 6천500억원을 투자하면서 공사에 들어가 2011년 4월, 연간 폴리실리콘 5천t 생산 규모의 제1공장을 준공했다. 이후 지난해 2월에는 800억원을 추가로 들여 제1공장 기계설비를 증설하면서 총 투자규모 7천300억에 연간 생산량이 7천t 규모로 본격적인 가동이 이뤄지는 듯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 한편 웅진폴리실리콘 상주공장에서 누출된 염산이 인근 소하천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 당국은 누출 당시는 강한 산성이 검출됐지만, 현재는 정상수치를 회복해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웅진폴리실리콘 염산 누출 사고 당일인 1월 12일 오후 5시10분쯤 저류조에서 공장 내 폐수처리장으로 염산을 옮기던 중 전력 과부하에 따른 단전으로 펌프 작동이 일시 중단돼 소량의 염산이 우수로를 통해 병성천 지류인 소하천으로 일부 누출됐다고 밝혔다. 염산이 누출된 소하천에서 650m 떨어진 곳에는 낙동강 제1지류인 병성천이, 19㎞ 떨어진 곳에는 낙동강이 있다. 누출 당시 수질 검사 결과 강한 산성인 염산의 유입으로 소하천의 수소이온농도(pH)는 1~2로 떨어졌다. 하천의 일반적인 수소이온농도는 6~7이다. 하지만 누출된 이후 상주시와 합동으로 소하천에 임시 물막이와 3개소에 방지턱을 설치했고, 임시 물막이 내 저류수는 가성소다로 중화 처리해 현재는 소하천의 수소이온농도가 정상수치로 돌아왔고, 병성천의 수소이온농도도 정상이라고 밝혔다. 대구지방환경청 수질총량과 관계자는 “사고 이후 추가로 누출된 염산은 전혀 없었고, 이날 오전 8시부터 수시로 시행한 수질검사에서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염산 누출 사고, 이번에도 초동 대응 미흡해
이번 상주에서 발생한 염산 누출사고 직후 염산 소량이 인근 소하천으로 흘러 들어갔으나 공장 측이나 상주시 등이 이를 공개하지 않아 수질오염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장 측과 상주시 측은 대구지방환경청이 사고 당일 오후 5시 10분부터 20분간 공장에서 소하천으로 이어지는 빗물 관로에 대해 실시한 수질 검사에서 PH(수소이온농도)가 1~2도의 강산성을 띤 것으로 나타나자 소하천으로 흘러가는 입구 등에 가물막이와 방지턱을 설치하고 중화 처리를 했다. 이는 염산 탱크에서 누출된 염산을 저류조에서 폐수처리장으로 보내는 작업을 하던 중 전력 과부하로 잠시 전기가 끊기면서 펌핑이 중단돼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주시 등은 지금까지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당국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사고 공장에 대한 상주시의 관리, 감독 부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 40분쯤 사고 현장에서 600여m 떨어진 마을에 사는 김모씨가 사고 사실을 청리면사무소에 처음 신고했다. 이어 2분쯤 뒤 상주시에도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상주시 등은 이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신고를 했는데도 별다른 조치가 없자 5분 뒤 또다시 119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시는 또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친 이 공장(2012년 7월 가동 중단)에 대한 유해화학물질 지도, 점검에서 사용하다 남은 불산과 황산 등 다량의 유독성 화학물질이 보관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지난 경북 구미 불산 누출 사고에 이어 이번 상주 염산 누출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정부 관련 부처가 엇박자를 보여 빈축을 샀다. 상주시 사고 현장 관계자는 “사고 발생 당시 지식경제부와 환경부는 유관 기관 대책반을 긴급 투입했지만 고용노동부 공무원은 보이지도 않았다”면서 “사고 발생 3일째인 14일에도 지역 산하기관인 산업안전공단 직원 한 사람만 나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일터인 현장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고용부가 사고 현장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으냐고 성토했다.

김 총리 “사고 수습 신속하게 마무리” 지시
김황식 국무총리는 1월 14일 최근 경북 상주 웅진폴리실리콘 공장 염산 누출사고와 관련해 “주민들의 염려가 없도록 철저한 방제 작업 등 사고 수습을 신속하게 마무리 하라”고 지시했다. 김 총리는 이날 세종청사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환경부, 방재청 등 관계 기관에 “지난해 9월 구미 지역 불산 누출 사고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재발해 국민의 걱정을 사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사고 수습과 함께 ‘유해화학물질 안전대책’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써 달라”며 “겨울철 동파 등에 대비, 사업장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등 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여야 역시, 정부에 신속한 수습과 주민 안전 보호를 촉구했다. 새누리당 이상인 대변인은 “유독성 기체인 염화수소가 누출됨에 따라 주민들이 두통을 호소하고 인근 축산농가에서는 소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다”며 “사고은폐 의혹도 제기되고 있으며 늑장대응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관계 당국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철저하게 사고 수습을 해야한다”며 “2차피해를 방지하는데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현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다량의 염산이 유출된 상주지역에 인명피해는 없다지만 방제작업 지연으로 지역주민들의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며 “방제당국은 사고수습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촉구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1월 14일 상주 염산누출사고와 관련해 “유독물 사고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도·시군, 유관기관 관계자들과 가진 유독물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긴급영상회의에서 유독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특히 사고 인근 주민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는 한편 유언비어로 인해 주민이 동요되지 않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 지사는 이어 대량 누출사고였음에도 도와 상주시, 대구지방환경청, 경찰, 군부대 등 유관기관이 신속히 대응해 응급복구를 완료한데 대해 관계직원을 격려했다. 걍북도와 시군 관련부서장, 경찰청, 대구지방환경청, 가스안전공사, 안전보건공단 등 유관기관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31일까지 관계기관 합동으로 도내 유독물 취급업체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키로 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