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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그루지야 전쟁, 그 후
신 냉전의 시작인가
2008년 12월 13일 (토) 17:15:08 정재원 기자 jw@

2008년 8월 8일, 세계의 이목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집중되고 있던 그때 축제의 화려한 불꽃 사이로 죽임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정재원 전문기자 jw@

 동유럽의 강자 러시아와 약자 그루지야 간의 전쟁이 시작된 것. 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루지야공화국 내 자치공화국 지위를 갖고 있는 인구 7만 명의 남오세티아(South Ossetia) 지역에 대한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영향력 경쟁 때문이었다.
   
 

 1991년 구(舊)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그루지야에는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Abkhazia) 2개의 자치공화국이 존재한다. 이들 공화국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러시아계 인구가 70% 이상을 차지해 친미?친서방 노선을 추구하는 그루지야와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

 남오세티아 분리주의자들은 1991년부터 독립을 요구하며 러시아 편입을 주장해 왔지만, 사카슈빌리 현(現) 대통령은 “남오세티아는 그루지야의 영토”라며 강경하게 맞섰다.

 러시아는 1990년대 분리주의자 측과 그루지야 측의 내전에 개입하며 군대를 보낸 뒤, 이후 주둔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이름만 바꾼 뒤 사실상 군사적으로 이 지역을 장악해 왔다. 결국 7일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아 선제공격에 의해 이 전쟁은 촉발됐다.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이지만 그루지야가 침공한 곳은 자국 내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아였다. 사사건건 분란이 끊이지 않는 자국영토의 완전 복속이라는 명분을 갖고 침공을 강행한 것이다. 하지만 남오세티아의 뒤에는 120만 대군의 세계 최강 러시아군이 있었다. 병력 3만7000여 명의 그루지야로서는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되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전쟁이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은 나흘째가 되면서 그 끝이 보였다. 8월 9일 러시아와의 전쟁을 선포한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10일 러시아에 휴전 협상을 제안하며 전날 장악했던 남오세티아 츠힌발리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지만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휴전 제안을 거부하고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 인근을 폭격했다.

 자국 병력의 50배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반격, 또 다른 친러 자치공화국 압하지야의 그루지야군 공격, 믿었던 우방국들의 외면 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것이 휴전을 제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전쟁은 그루지야의 처참한 패배로 끝이 났다. 득보다 실이 많은 아주 비참한 패배였다.

 잘 알려졌듯이 이 전쟁의 주인공은 친미 성향의 그루지야와 독립을 요구하는 친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아, 그리고 평화유지란 명목하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이다. 바탕에 깔린 그림만으로는 남오세티아의 독립전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은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다. 천연자원을 둘러싼 러시아와 미국의 각축, 턱밑의 친미 국가 그루지야에 대한 러시아의 견제, 동유럽 미사일 디펜스 시스템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관계,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 추진 등이다. 결국 이 전쟁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와 러시아 중심의 세력이 벌이는 신(新) 냉전의 대리전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그루지야는 북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남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서쪽으로는 터키와 흑해를 접하고 있는 카프카스(Kavkaz) 산맥의 중심지이다. 옛 소련에서 분리된 작디 작은 그루지야가 국제질서의 향방에 중요 변수가 되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체코와 폴란드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 내 자국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하에 그루지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추진은 러시아에 있어 눈엣가시처럼 보일 것이다. 이미 지난 2006년 나토는 그루지야에 ‘공고한 대화(Intensified Dialogue)’ 상대 지위를 부여한 바 있고,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는 그루지야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재확인시켰다.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이 이뤄진다면 동유럽에 대한 나토의 세력이 강화됨은 물론이고, 그루지야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 흑해함대 관련 군사정보가 나토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전 대통령)는 “나토에 가입하려는 그루지야의 열망은 다른 나라와 국민을 핏빛 모험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라 말할 정도로 경계하고 있다.

 또한 그루지야를 지나는 원유 및 천연가스 라인의 지배권이 서방 세계로 넘어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과 러시아는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통제권을 놓고 다투어 왔다. 그루지야에는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원유를 유럽으로 실어나르는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야)-세이한(터키)을 연결하는 BTC 송유관이 지난다. BTC 송유관은 미국이 2006년 개통시켰으며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영토를 거치지 않고 유일하게 서방으로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에너지 안보는 물론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중대한 전략적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천연가스를 나르는 BTE(바쿠-트빌리시-터키 에르주름 연결) 파이프라인도 있다. 남카프카스라 불리는 이 라인은 길이 692km에 연 66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총 연장 1,776km의 BTC 송유관 중 그루지야 구간은 260km이고, 남오세티아 구간도 100km에 달한다. BTE 가스관의 그루지야 구간은 248km나 된다.

 또 러시아는 서방 국가에 ‘경고’하기 위해 개입했다. 미 부시(Bush) 행정부의 지지를 받는 그루지야를 이번 기회에 누름으로써, 친(親)서방·탈(脫)러시아를 추구하는 우크라이나·몰도바는 물론, 서방에도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루지야 사태가 떠오르는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무기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유럽, 유엔 등 국제사회가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에 나섰지만 러시아는 이를 비웃듯 그루지야 영내까지 침공했다.

 유엔과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 작전은 21세기에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며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러시아에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지만 러시아는 결의안 초안에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아 공격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합의를 거부했다.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가지고 있어 유엔 차원의 압박수단 자체가 무용지물인 것이었다. 나아가 서방 세계는 이란의 핵문제, 석유 보급라인의 봉쇄 가능성의 위험, 아프가니스탄으로의 보급로 확보 등 러시아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라 제재 압박을 가할 수도 없다. 즉, 러시아의 위세만 높여준 꼴이었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유럽 강대국들이 전쟁에 개입할 수도 없다. 자칫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택은 기껏해야 그루지야와의 휴전 협상테이블에 하루라도 빨리 러시아를 설득해 앉히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은 옛 소련의 붕괴로 미국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던 ‘힘의 균형’이 다시 냉전 상태로 돌아간 듯 보인다. 오일 머니의 막대한 부와 독점적 위치에 있는 대(對)유럽에너지 공급, 1백만 군대와 수천 기의 핵탄두, 세계 3위의 국방예산 등은 옛 소련의 위상 회복을 현실로 가능하게 만든 것.

 전쟁 발발 후 닷새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 유엔, 나토 등 국제기구들이 연일 러시아를 비난하며 군사행동 중단 및 휴전을 촉구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비웃는 듯 그루지야를 향해 과감한 공격을 감행했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무력 사용에도 불구하고 서방 세계는 러시아를 상대로 실효적인 제재 조치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각국 지도자의 희비도 엇갈렸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총리가 그루지야 사태를 계기로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다면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는 별’이란 오명을 들으며 임기 5개월 남은 초라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린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최악의 지도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순회의장이기도 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모스크바와 트빌리시를 오가며 휴전 막판 협상을 성사시켰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휴가를 즐기던 와중이었음에도 휴전 협상을 위해 특별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작전 종료를 명령한 것도 사르코지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였다. 사르코지는 메드베데프와의 회동에서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의 향후 지위 및 안전을 담보하는 방안 ▷러시아와 그루지야 상호 적대행위 중단 등의 내용을 담은 6개 평화안 합의를 이끌어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어 트빌리시로 이동해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의 합의도 이끌어냈다. 분쟁의 원인인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의 장래문제를 수정안에서 삭제해 불씨를 남겨 놓긴 했으나 중재자로서의 외교력은 충분히 입증한 셈이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그루지야가 친미 성향의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응으로 일관,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그루지야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돼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려 있다.

 그루지야 사태는 또 러시아의 실질적인 권력구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포천 지는 11일 세계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남오세티아 전장에서 지휘관들을 만나고 격려한 러시아의 지도자는 ‘푸틴’이었으며 같은 시각 ‘현직 대통령’인 메드베데프는 모스크바에 남아 일상업무에 매달렸다며 이번 전쟁의 배후가 누구인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한편 사카슈빌리의 경우 러시아의 축출 의지 이전에 스스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를 처지다. 작년 말 이후 야권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그가 남오세티아를 왜 공격했는지, 러시아가 신속히 보복할 의지가 있음을 왜 생각지 못했는지 등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경우 그루지야 국민의 저항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종전(終戰) 이후 러시아는 그 위상이 격상된 반면, 그루지야의 경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그루지야의 경제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전쟁 재발 위험이 상존한데다 정국이 불안하기 때문에 외국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 투자자들을 유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된 지적이다. 특히 재건 사업에 소요될 막대한 예산 조달도 그루지야 정부로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며, 최대 교역국인 러시아가 2006년처럼 경제 제재를 할 경우 2003년과 같은 경제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전쟁발발과 동시에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그루지야의 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한 단계 낮췄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도 신용등급을 ‘B+’에서 ‘B-’로 낮추고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 의견을 부여했다.

 이렇다면 외국인 투자가 국가경제의 주를 이루는 그루지야의 입장에선 직격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경제 제재에도 10%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저력이 있기 때문에 경제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있긴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인한 타격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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