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었던 사람 정운, 정걸, 나대용, 송희립…

1592년 조선은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임진왜란 7년 전쟁, 16만 일본 정예군의 파상공격 앞에 조선군은 속수무책이었고, 개전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당해 선조는 임진강 건너 몽진 길에 올랐다. 선조는 명나라로 망명을 꾀했고, 대소신료들은 제 살길 찾기에 바빴던 이때, 기적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전라좌수사 이순이었다. 그는 모든 해전에서 전란 내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23전23승으로 나라와 백성을 구했다. 하지만 이순신의 그늘에 가려 역사와 평가의 빛을 받지 못했던 이들이 있다. 이순신과 함께한, 그들은 누구였을까.

신세영 기자 ssy@

▲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

우리 역사 속 최고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충무공 이순신은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임진왜란 전승을 거두었던 기적 같은 사건의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업적을 이순신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일까? 우리가 이순신에게 열광하는 사이, 주목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 임진왜란 최고의 선봉장이자 돌격장 정운, 임진왜란 첫 해전부터 최후의 현장 노량해전의 숨은 공신 송희립, 80세의 나이로 이순신의 군사(軍師)로 참전했던 해전의 명장 정걸, 거북선 건조의 핵심 책임자였던 나대용까지……. 최강 수군으로 불렸던 전라좌수군 핵심참모들을 만나 본다.

이순신 수군의 최고 선봉장이자 돌격장, 정운(鄭運)
이순신의 최측근이었던 정운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된 비슷한 시기에 녹도지역의 만호가 된다. 이순신은 왜구의 주 침략지역인 녹도를 완벽하게 방비한 정운을 극찬했다. ‘만호 정운이 애쓴 정성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난중일기 1592년 2월 22일) 녹도만호 정운이 이처럼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한 데는 배경이 있었다. 1587년 고흥 지역에는 이른바 손죽도 사건일 일어났는데, 이는 왜선 20여 척이 쳐들어와 노략질을 한 사건이었다. 손죽도 사건의 후손 조치로 정운이 녹도만호에 부임했고, 정운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 완벽한 태세를 갖췄던 것이다. 이순신은 비록 자신보다 2살 많고 무과 급제도 선배지만 당시로는 엄연한 부하장수인 정운이 마음에 들었고, 이후 정운은 이순신의 심중을 가장 잘 헤아리는 장수가 됐다. 특히, 정운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첫 출전을 할 수 있도록 가장 강력하게 요청했다. 정운의 주장에 이순신 함대는 출전을 감행했고, 사흘 뒤에는 첫 전투 옥포해전을 치렀다. 옥포해전에서 녹도만호 정운의 활약은 눈부셨고 당시 정운은 후부장, 즉 함대의 맨 뒤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전투선이 감히 적을 공격하지 못하자 후부장이었던 정운이 군사들을 독력해 선봉으로 나서는 용맹함을 보였다. 이어 학익전으로 유명한 한산해전에서는 조선수군은 적선 59척을 격침시켰고, 이 전투는 왜군의 수륙병진의 전략을 완전히 분쇄한 전루로 임신왜란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정운은 이 전투에서 일본군 대선 2척을 격침시키고 포로까지 구출해내는 큰 전과를 올렸다. 첫 출전부터 해전에서 전공을 세우던 정운은 임진년 그해 부산포 해전에서 적탄을 맞고 49세의 나이로 전사하게 된다. 정운의 죽음에 이순신은 직접 제문을 지어 추모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깊었다. ‘…아, 인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고 사는 데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으니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이야 정말로 아까울 게 없으나 유독 그대의 죽음에 대해서만 나의 가슴 아픈 까닭은 무엇이던가… 아 슬프다 이 세상에 누가 내 마음 알라주랴 슬픔 머금고 극진한 정성 담아 한잔 술 바치오니 아 슬프다…’

30년 군 선배인 팔순의 작전참모, 정걸

▲ 1593년 정걸 장군에게 내려진 교지

팔순의 노장 정걸은 이순신 보다 20년 앞서 경상도와 전라도 수군절도사를 여러 번 했던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구들과의 전투 경험이 풍부한 노장이던 그는 나이가 많아 모든 관직을 은퇴하고 고향 고흥에 살고 있었다.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던 당시 이순신은 47세, 정걸은 이순신보다 서른한 살이나 많은 78세였다. 임진왜란 전까지 해전 경험이 없었던 이순신은 노련한 백전노장이 필요했고, 정걸은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군의 스승 역할을 했다. 정걸은 장수의 자문 역할을 하는 이순신의 조방장이 되었으며, 이순신은 정걸을 ‘영공(令公)’이라는 극존칭으로 불렀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정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무려 스물아홉 번이나 나온다. 경험이 풍부한 정걸의 활약은 이어졌다. 임진왜란 다음해 조정은 이순신의 조방장 정걸을 충청수사로 임명했는데, 여든에 가까운 노장에게 다시 벼슬을 준 것이다. 1593년 초의 행주대첩, 정걸은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0배 많은 왜군을 맞아 행주산성의 조선군은 적의 공격을 하루에 7차례나 막아냈으나 전투 막바지 화살이 떨어졌다. 행주산성이 적에게 함락 당할 위기에 처하자 부녀자들은 치마를 짧게 잘라 돌멩이를 날라 던지며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절체절명의 위에 처한 행주산성이었으나 한강을 건너 노을 속으로 배 2척이 건너오고 있었다. 그 배에는 화살이 가득 실려 있었는데, 바로 충청수사 정걸이 보내준 화살이었고, 이에 조선군은 빛나는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날 묘시(卯時)로부터 신시(申時)에 이르도록 싸우느라 화살이 거의 떨어져 가는데 마침 충청 병사(忠淸兵使) 정걸(丁傑)이 화살을 운반해 와 위급을 구해주었습니다.”(-선조실록 26년 2월 24일 중에서) 이후 한강 방어선 구축 등 전란 극복에 온 힘을 다하던 정걸은 전쟁이 끝나기 1년 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한다. 한편, 정걸은 그의 아들 정연과 정홍록 까지 3대가 3년에 걸쳐 전장에서 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승 신화의 스타, 거북선을 만들다’ 군관 나대용

▲ 소충사에 모셔진 나대용 영정

거북선은 임진왜란에서 탁월한 전투무기였다. 당시 일본군의 주전술인 등선육박전술에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북선 건조의 실무 책임자가 바로 나대용이었다. 고향 나주에서 전선을 연구하던 나대용은 스스로 이순신을 찾아갔고, 당시 조선의 주력 전함은 판옥선, 갑판 아래 선실에는 격군들을 배치하고 전투요원과 통통은 갑판 위에 배치했다. 전투요원들이 적에게 노출되는 구조였는데, 이 판옥선에 뚜껑을 덮고 옆을 막은 것이 바로 거북선이었다. 적진 한가운데로 돌격해 들어가 근접 포격을 하는 거북선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고, 왜군의 등선육박 전술을 막기 위한 장치도 있었다. 등 위에 쇠못을 꽂아 왜군들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순신은 이러한 거북선의 구조를 임금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정면에는 용머리를 설치하여 포를 쏘았으며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승선요원들의 안전도 확보, 적진을 마음대로 돌진해 갈 수 있었습니다.” 전라좌수영의 선박을 견조하던 선소, 거북선은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거북선을 만들 수 있도록 이순신은 군관이었던 나대용을 배를 만드는 책임자로 임명하고 전권을 위임했다. 필요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이순신의 리더십이 발휘된 것이다. 나대용 역시 자신을 알아주고 신뢰하는 이순신을 만나 거북선이라는 당시 세계 최고의 전투선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나대용은 군관으로서 해전 승리의 큰 공을 세운다. 나대용은 거북선이 처음 출전한 사천해전에서 부상을 입었고, 구 부상이 악화돼 전쟁이 끝난 다음 교동수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현재 그는 거북선 제작의 공로로 소충사에서 매년 과학의 날에 제사지내고 있다. 

이순신의 최후의 현장에 함께한 군관 송희립

▲ 송희립의 영정

전남 고흥의 재동서원은 여산 송씨들의 문중서원으로 이 서원에는 송희립과 그의 형 송대립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이순신의 사람들을 이야기 할 때, 좌(左)정운 우(右)희립을 손꼽는다. 이 중 송희립은 이순신의 그림자처럼 임진왜란 첫 해전부터 최후의 현장인 노량해전까지도 함께 했다. 이순신의 군관이었던 송희립 역시 정운과 마찬가지로 이순신의 첫 출전을 종용했다. ‘전라도, 경상도 등 맡은 지역을 따지지 말고 적을 토벌해야 합니다.’ 전쟁이 나자 형제들과 함께 의병들을 이끌고 이순신 휘하로 들어갔던 송희립은 부산해전에서 일찍이 전사한 정운 대신 이순신의 핵심 측근이 되어 전란 내내 그의 곁을 지켰다. 경남 남해의 관음포는 이순신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1598년 11월, 이순신은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를 해상봉쇄하고 있었고, 이를 구하기 위해 최소 300여 척의 왜 선단이 진격해왔다. 이들과 맞서 싸운 것인 바로 이순신 최후의 해전인 노량해전이다.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전투로 이순신은 관음포로 쫓겨 들어가 왜군을 소탕하다가 왼쪽 겨드랑이에 적탄을 맞고 대장선 갑판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이순신 최후의 현장에 이순신의 아들, 조카와 함께 바로 송희립이 있었다. “이순신의 갑옷과 투구를 벗겨 붉은 담요로 주검을 싸고, 또 다시 초둔으로 덮었다. 그리고 이내 이순신의 갑옷과 투구를 입고 초둔 위에 가리고 앉아서 대신 깃발과 북을 잡고 더욱 급히 싸움을 독촉하니, 왜적의 배는 크게 패하여 대포에 의해 부서지거나 갈구리에 걸려 침몰된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은봉전서 권7 노량기사(露梁記事) 중에서) 이순신이 전사한 후, 송희립은 이순신 대신 북채를 들고 해전을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그의 전공은 뒤늦게 알려져 후에 전라좌수사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순신이 최후를 맞이한 관음포 언덕에는 작은 사당이 하나 서 있다. 이순신의 시신이 처음 뭍으로 올라왔던 곳에 세위진 사당인 이락사 옆에는 이순신의 그 유명한 유언이 새겨져 있다. ‘전방에 싸움이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그리고 이름 없는 그들

▲ 이순신 표준영정.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이 1953년 제작한 것으로 여러 영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충남 아산 현충사 소장

조선 판옥선 한 척에는 약 200명이 승선해 있었다. 노를 젓는 격군만도 130~140명이었으며 포를 쏘는 포수, 화살을 쏘는 사수 등이었다. 조선 수군의 기세가 한창 오를 때는 약 2만여 명의 군사가 있었는데, 과연 이들 모두는 누구였을까. 전란 중에 가족을 잃은 이, 복수의 일념으로 수군에 지원한 이, 군역과 세금의 의무가 없었던 노비들 중에는 강제로 징발된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 한 자 남기지 못하고 거친 바다에서 야차와 같은 왜적과 맞섰던 그들의 가장 큰 적은 왜적이나 엄격하기만 장군도 아닌 바로 배고픔이었다. 한산도 시절, 하루에 군량미가 백미로 백 가마니가 필요했고, 전란 도중에 이 많은 군량을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정은 군량을 조달할 능력이 없었으며, 조정대신들은 명나라 지원군 군량 대는 것만으로 힘에 부쳤다. 이순신 자신이 굶주리는 군사들의 참상에 눈물이 났다고 숱하게 적고 있다. 이들이 바로 진정한 이순신의 사람들, 조선수군과 격군들이었던 것이다. NM (참조 「한국사를 바꿀 14가지 거짓과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