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3.23 목 09:49 전체기사 l 기사쓰기 l 자유게시판 l 기사제보 l 구독신청 l 광고안내 l 회사소개
> 뉴스 > 피플·칼럼
     
[박성서 평론]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작곡가 전오승 & 가수 나애심 Story[1]
그 소문난 ‘스타 패밀리’, 전오승과 나애심의 삶과 노래를 돌아보다
2017년 01월 06일 (금) 00:20:07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지난 2016년 7월3일, 미국 LA에서 93세의 일기로 타계한 작곡가 전오승 선생은 소문난 ‘스타패밀리’ 집안이다. 어릴 때부터 악기에의 탐닉이 남달랐던 ‘악기광’으로, 그리고 단신 월남해 기타리스트에서 작곡가로 변신했던 전오승, 특히 음반의 침체기였던 50년대,  ‘인도의 향불(현인)’을 시작으로 ‘아리조나 카우보이(명국환)’, ‘미사의 종(나애심)’ ‘이별의 인천항(박경원)’  ‘럭키모닝(박재란)’ ‘휘파람 불며(박재홍)’ ‘여인행로(송민도)’  등을 발표했다.

이어 60년대 ‘경상도 청년(김상희)’, ‘사랑의 송가(한명숙)’ ‘재클린의 슬픔(최양숙)’ ‘장희빈(황금심)’ ‘데이트와 시계(송영란)’ 등을 거쳐 70년대 ‘과거는 흘러갔다(여운)’까지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 전오승. 78년 ‘전우가 남긴 한마디(허성희)’의 히트를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싱잉스타
   
 
시대’를 연 가수 겸 영화배우 나애심씨가 그의 친동생이다.
전오승·나애심 콤비, 그 소문난 ‘스타 패밀리’ 이야기 첫 번 째.

글 l 박성서 (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생활 속에 미국 문화가 급속히 유입되었다. 대중가요 역시 상당수의 노래가 5음계를 탈피해 화성과 선율이 서양화되기 시작한다. 이전 가요에서 찾기 쉽지 않았던 새로운 리듬들이 속속 등장할 무렵 당시 젊은 작곡가 전오승 역시 폴카나 룸바 리듬에 특히 매력을 느낀다.
아울러 이러한 새로운 조류가 유행을 선도했던 그 변화의 중심에 전오승씨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콤비를 이루며 새로운 리듬을 따라 인기를 누리던 리더가 나애심씨였다.
‘전오승·나애심’ 콤비는 대구 피란시절 취입한 나애심씨의 데뷔곡 ‘밤의 탱고’를 시작으로 ‘언제까지나’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비롯해 60년대 들어서도 ‘맘보는 난 싫어’ ‘해 떨어지기 전에’ ‘아카시아 꽃잎 질 때’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다.

악기 탐닉이 남달랐던 ‘기타꾼’이자 ‘낚시광’ 전오승, 지난 2006년 잠시 귀국

지난 2006년, 당시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던 작곡가 전오승 선생이 이민간지 15년 만에 가족과 함께 잠시 귀국했었다. 당시 그와 가졌던 인터뷰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부인 김진화 여사의 팔순맞이 기념여행 겸 지인들을 만나기 위한 귀국길에 딸인 아역배우 출신, 전영선씨 또한 함께 동행했다. 아울러 이 자리에는 그의 작품으로 데뷔해 인기가수 반열에 오른 제자가수들 즉 가수 명국환, 박경원, 김용만씨와 더불어 고(故) 반야월 작가동지회장, 작곡가 김병환씨도 함께 했다.

“얼마 전에는 사람 크기만한 오징어를 여덟 마리나 낚았어요, 허허...” 예상대로 15년만의 해후는 낚시얘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오징어는 클수록 맛이 부드럽더라.’며 ‘월척 자랑’의 심사를 은근히 내비치는 ‘못 말리는 낚시광’ 전오승 선생이 참여하고 있는 ‘L.A 우정낚시회’는 60대 이상, 80대까지 총 19명의 ‘꾼’들로  구성된 낚시동호회로 매주 한 차례 미팅을 갖고 또한 월례행사로 낚시대회를 갖는다고 했다.
한 번 출조할 때마다 보통 6시간 이상씩 달려 바다낚시를 주로 즐긴다고 했다. 20여 년 미국생활의 화두가 된 오징어 ‘껀’도 무려 10시간 가까이 달린 끝에 멕시코 해안에서 잡은 것이라 했다.
정작 궁금했던 몇 년 전의 교통사고 정황은 채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후유증이 거의 없다는 확신이 들었을 만큼 건강하고 밝은 모습에 우선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 대로 그는 몇 년 전 낚시길 운전 도중 대형 트레일러와 충돌, 헬기로 긴급구조 되어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었다.


악기 탐닉이 남달랐던 유년시절

작곡가 전오승은 1923년 3월16일, 평남 진남포에서 부친 전상연(全常淵)과 모친 장중차(張中次) 사이의 5남4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명은 전봉수(全鳳壽).

진남포 봉정공립보통학교 시절, 담임선생의 기타연주에 감명 받아 기타를 처음 손에 잡는다. 매우 완고한 부친 몰래 수시로 창고에 숨어들어 기타에 심취했고 또한 이불을 대여섯 개씩 뒤집어쓰고 하모니카를 불곤 했듯 악기연주에의 탐닉은 남달랐다. 그 당시부터 이불 속에 숨어 악기에 몰두하던 것이 습관화 된 듯, 오른쪽 어깨가 늘 내려앉은 모습은 곧 음악적 집념의 형상, 그 징표는 혹 아니었을는지 모를 일이다.

39년, 진남포 실천상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해방 후 본격적인 음악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월남해 서울 마포에 정착, 서대문에 있던 작곡가 조두남선생의 자택을 드나들며 화성악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때 함께 작곡기법을 배운 동료가 바로 김희조선생.

기타리스트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HLKA 경음악단’에 전속된다. 일제시대 경성방송국(JODK)에서 출발한 이 ‘정동방송국’은 이념의 혼란기에 대북방송을 주로 하던 곳이라 세칭 ‘대적방송국’이라고도 불렸다.
아울러 박시춘 선생이 운영하던 럭키레코드에서 음반 취입 시 기타반주를 맡기도 했다. 당시 그가  레코딩에 참여한 곡 중 하나가 ‘럭키 서울’. 이 무렵 그는 연주인에서 한 단계 도약, 작곡을 시작한다. 바로 현인의 목소리로 취입된 ‘인도의 향불’. 그에게 있어 최초의 히트곡인 셈이다.
작곡가로써 그가 처음 사용한 예명은 ‘전오성(全吾星)’. 그러나 곧바로 ‘전오승(全吾承)’으로 스스로 이름을 바꾼다. ‘全 吾 承’-, 뜻 그대로 '모두 나를 따르라'라는 의미다. 아울러 작사가명으로 즐겨 사용하던 이름 또한 처음에는 ‘세고석(世鼓石)’이었지만 얼마 뒤 ‘세고천(世鼓千)’이라 스스로 바꾼다. ‘世 鼓 千’이라는 이름은 ‘세상을 향해 천개의 북이 동시에 울린다’는 뜻, 곧 ‘우렁참’의 극치다. 이 이름들만으로도 그가 창작자로서의 자신감과 기개가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전오승, 나애심 명국환 박경원과 콤비시대 열다

홀로 월남한 전오승은 한국전쟁 중이던 ‘인천상륙작전’ 날. 오빠를 찾아 월남한  동생 나애심(전봉선)과 극적으로 상봉한다. 아울러 1.4후퇴 때 피난 내려온 나머지 가족들과 재회하는데 그는 가족들을 일본제 트럭에 태워 당시 방송국 악단원들과 함께 피난시키고 본인은 국방부 정훈 공작대 소속 연예중대에 입대, ‘군번 없는 용사’로 활약한다. 휴전 후 53년부터 전오승은 미8군 전속경음악단 활동과 더불어 본격적인 창작에 몰입, 비로소 ‘전오승 시대’의 장(章)을 연다. 

   
▲ 전오승 나애심 콤비의 노래 ‘과거를 묻지마세요’ 노래비
이 무렵 함께 파트너를 이룬 ‘전오승 사단’은 바로 ‘나애심, 명국환, 박경원’ 3인방. 나애심은 5,60년대를 풍미했던 싱잉스타로 가수와 영화배우, 두 분야에서 모두 큰 획을 그었던 엔터테이너였다. 기타리스트로 또한 작, 편곡가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오빠 전오승이 그러했듯.
‘전봉수-전봉선’ 남매, 즉 ‘전오승-나애심’ 컴비는 대구 피난 시절 취입한 나애심의 데뷔곡 ‘밤의 탱고’를 시작으로 ‘언제까지나’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비롯 60년대 들어서도 ‘맘보는 난 싫어’ ‘해 떨어지기 전에’ ‘아카시아 꽃잎 질 때’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다.

아울러 가수 명국환 역시 데뷔 곡 ‘백마야 우지마라’를 시작으로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방랑시인 김삿갓’ ‘아리조나 카우보이’ ‘구원의 정화’ 같은 곡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톱가수 대열에 들어섰고, 박경원 역시 전오승 곡인 ‘비애(悲哀) 부르스’로 데뷔, ‘이별의 인천항’ 등을 발표, 한껏 인기를 구가한다. 전오승의 곡을 받아 데뷔한 50년대의 스타, 세 가수들이 발표한 노래의 노래비 또한 ‘인연’을 각인하듯 각각 하나씩 세워져 있다. 바로 ‘과거를 묻지 마세요’  ‘방랑시인 김삿갓’ ‘이별의 인천항’ 이 그 것.

   
▲ 강원도 정선에 세워진 명국환 노래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
아울러 전오승은 그의 전성기 때인 50년대 후반, 오아시스, 신신(이후 신세기), 케네디 등 음반사를 통해 많은 작품을 남긴다. 그 기록을 살펴보자면, 김용만의 ‘효녀 심청’, ‘한양 가는 방자’, 박재홍의 ‘휘파람 불며’, ‘꿈에 본 대동강’, 박재란의 ‘푸른 날개’, ‘럭키모닝’, ‘해피 세레나데’, 송민도의 ‘인생행로’ 등으로 격변의 50년대, 물자부족과 열악한 시설로 ‘우리나라 최악의 음반 침체기’였던 이 무렵, 음반 제작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았던 때였기에 그 무렵 그가 남긴 노래들은 우리 가요사에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생활 속에 미국 문화가 급속히 유입되었다. 대중가요 역시 상당수의 노래가 5음계를 탈피해 화성과 선율이 서양화되기 시작한다. 이전 가요에서 찾기 쉽지 않았던 새로운 리듬들이 속속 등장할 무렵 당시 젊은 작곡가 전오승 역시 특히 폴카나 룸바 리듬에 매력을 느낀 듯하다. 계층상승적 욕구와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조류가 유행을 선도했던 그 변화의 중심에 전오승씨가 있었고 그와 콤비를 이루며 새로운 리듬을 따라 인기를 누리던 리더가 나애심씨였다.

 ‘노래하는 글래머 스타’ 시대 연 가수 겸 영화배우 나애심은...

정열적인 눈, 이지적인 마스크로 등장,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노래하는 스타, 즉 ‘싱잉스타(Singing star) 시대’를 열었던 나애심. 1953년 ‘밤의 탱고’를 시작으로 3백여 곡의 주옥같은 노래를 남김과 동시에 1980년대 초까지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는 스크린과 무대를 동시에 장악, 배우와 가수 두 분야에서 모두 큰 획을 그었던 인물이었다. 아울러 ‘백치 아다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 ‘아카시아꽃잎 필 때’ 등 직접 영화에 출연하며 동시에 영화주제가까지 히트시켰다.
  
당시로서는 꽤 큰 키에 속하는 162㎝에 ‘버스트, 웨이스트, 히프 사이즈가 몇이냐.’로 화제가 되며 한국 여배우 최초로 글래머 스타라는 칭호까지 얻은 그의 또 다른 애칭은 ‘한국의 안나 카시피’. 이렇듯 이국적인 용모가 돋보이던 나씨는 실제로 ‘춤추는 안나’라는 노래까지 발표했을 정도. 나애심으로부터 시작된 글래머 스타, 즉 육체파 배우의 계보는 이후 김지미, 도금봉, 김혜정으로 이어졌다.

‘글래머스타’이자 ‘멋쟁이의 대명사’로 1950∼60년대 예술인들의 집합지인 ‘명동시대의 주역’이기도 했던 그는 또한 당대 예술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지며 시인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고 극작가 이진섭씨가 즉흥적으로 곡을 붙여 만든 노래 ‘세월이 가면’을 현장에서 최초로 부른 일화 속 인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세간에 회자되는 이러한 일화는 실제 사실과 다르다며 한사코 부정했다. 이에 관련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별도로 정리할 생각이다.

 
‘인천상륙작전’ 다음날 오빠 전오승 찾아 월남

   
▲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노래하는 스타, 즉 ‘싱잉스타(Singing star) 시대’를 열었던 가수 겸 영화배우 나애심.
본명은 전봉선(全鳳仙).1930년 진남포에서 출생했다. 진남포여고를 졸업한 후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던 스무 살 때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이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이튿날, 그는 당시 정동방송국(현 KBS)의 ‘HLKA 경음악단‘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던 오빠 전오승을 찾아 단신 월남한다. 이듬해인 1·4 후퇴 당시 서울로 피란 내려온 나머지 가족들과 가까스로 상봉, 피란길에 오른다.

그가 들려준 회고, “당시 오빠와 함께 방송국 경음악단에서 활동하던 박춘석, 최상용씨 등 연주인 여덟 명의 가족들, 총 80여명과 함께 남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피란민 행렬에 합류했어요. 먹을 것이 없어 한 끼 걸러 한 끼씩 동냥을 하며 죽음의 사선을 넘던 그 25일 간의 일들은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메어옵니다.”

그렇게 정착한 대구 피란 시절, 그는 작곡가 김동진을 단장으로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 첫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 곽규석(후라이보이), 구민(성우) 그리고 현미(가수) 등과 오페라 ‘아리아’의 무대에 서기도 했고 또 호구지책으로 함께 피란생활을 하던 김미정(미스코리아 출신 영화배우, 가수 현인의 미망인), 그리고 이경희(영화배우), 그리고 막내 동생 전봉옥(가수) 등과 함께 ‘아리랑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무대와 일반무대에까지 나섰다.
비록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미군부대공연을 갈 때마다 손짓발짓해가며 군인식량이나 초콜릿, DDT, 휴지 등을 얻어 와야 했을 만큼 물자가 매우 귀했던, 절박한 시절이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실력을 인정받은 나애심은 당시 대구에 있던 오리엔트레코드 녹음실을 빌려 정식 음반을 첫 취입한다. 전오승 작곡의 ‘밤의 탱고’, ‘정든 님’ 같은 블루스 리듬의 곡들로 당시엔 녹음 시설과 방음 시설이 매우 열악해 어렵게 녹음을 끝낸 뒤 테이프를 틀어 보면 ‘재치국 사이소!’ 같은 당시 주위의 소음들이 종종 들어가 있어 몇 번이고 재취입해야 하는 소동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시절이라 회고했다.

이 때 처음 사용한 예명이 나애심(羅愛心). ‘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라는 뜻을 담은 이름으로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씨가 지어준 것. 환도 직후,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시작하는 그는 16㎜ 다큐멘터리 ‘여군’을 시작으로 ‘불사조의 언덕’ ‘미망인’ 등 전쟁영화에 이어 극영화 ‘구원의 애정’에서 첫 주연을 맡는다. 이 영화의 주제가가 ‘물새 우는 강 언덕’. 영화에서는 나애심이 이 주제가를 불렀고 음반으로는 백설희가 취입해 널리 알려진 노래다.

이어 문예영화 ‘물레방아’로 주목을 받은 그는 계속해서 계용묵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백치 아다다’에 캐스팅되는데 처음엔 기분이 매우 언짢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가수로서 목소리 연기 또한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하필 대사가 거의 없는 언어 장애인 역할이 맡겨진 것이 나름대로 불만이었던 셈. 그러나 6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촬영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던 이강천 감독은 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그의 선글라스 아래에는 항상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 감독의 실제 다섯 살 난 딸이 바로 언어장애인이었기 때문. 해서 나씨는 ‘아다다’ 역을 위해 온몸을 던져 열연함과 동시에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이 곡을 쓰고 홍은원이 노랫말을 쓴 주제가 또한 발표되자마자 큰 반향을 몰고 왔다. 결국 이 ‘백치 아다다’는 그의 대표곡이자 대표작으로 자리 잡는다. 1956년의 일이다. (계속)

 

 

박성서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1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14.XXX.XXX.162)
2017-01-07 14:55:31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14.XXX.XXX.162)
2017-01-07 14:55:22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14.XXX.XXX.162)
2017-01-07 14:55:16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14.XXX.XXX.162)
2017-01-07 14:55:10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14.XXX.XXX.162)
2017-01-07 14:55:04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asd232ff3969
(64.XXX.XXX.164)
2017-01-06 18:18:06
sdfsdf34555
100% 안전한 사이트만을 추천하는 드림 입니다.
안전-신뢰100% 먹튀없는 검증된사이트만 취급합니다.고화질-모바일지원
―▶▶▶▶ ET386 . C 0 M ◀◀◀―
asd232ff3969
(64.XXX.XXX.164)
2017-01-06 18:17:47
sdfsdf34555
100% 안전한 사이트만을 추천하는 드림 입니다.
안전-신뢰100% 먹튀없는 검증된사이트만 취급합니다.고화질-모바일지원
―▶▶▶▶ ET386 . C 0 M ◀◀◀―
asd232ff3969
(64.XXX.XXX.164)
2017-01-06 18:17:12
sdfsdf34555
100% 안전한 사이트만을 추천하는 드림 입니다.
안전-신뢰100% 먹튀없는 검증된사이트만 취급합니다.고화질-모바일지원
―▶▶▶▶ ET386 . C 0 M ◀◀◀―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59.XXX.XXX.31)
2017-01-06 16:33:27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59.XXX.XXX.31)
2017-01-06 16:33:17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59.XXX.XXX.31)
2017-01-06 16:33:10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명성교회 (김삼환) MSCH.OR.KR 예수님 믿으세요 M S C H . O R . K R
전체기사의견(11)
뉴스메이커About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999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4층 뉴스메이커 | 전화 : 02-733-0006 | 팩스 : 02-733-0009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상호
뉴스메이커는 (주)뉴스메이커에서 발행하는 시사종합월간지로서 특정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자유 독립 언론입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뉴스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