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 황현이 쓴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전봉준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서울로 압송될 때 죽력고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다.

▲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주로 손꼽히는 죽력고를 전통의 방식으로 빚어내는 전북 정읍시에 위치한 태인주조장의 송명섭 장인

조선시대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와 서유구의 <임원십육지> 등에 나오는 죽력고는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 감홍로, 전주 이강고와 함께 3대 명주로 꼽은 최고의 명품 술이다.

조선 3대 명품주 죽력고의 맥을 잇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주로 손꼽히는 죽력고를 전통의 방식으로 빚어내는 명인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전북 정읍시에 위치한 태인주조장의 송명섭 장인. 전라북도 전통주 부문 무형문화재인 송명섭 장인은 어머니로부터 죽력고 제조비법을 계승하여 발전시켜 왔으며 2000년도 국순당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우리술을 찾습니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송 장인은 “죽력고는 죽력으로 만들어지는 술”이라면서 “죽력은 대나무 토막을 항아리에 넣고 3~5일간 불을 지펴 흘러내리는 대나무즙을 말한다. 죽력고는 죽력에 솔잎, 생강 등을 넣고 소주를 내리는 방법으로 증류시켜 만든다”고 설명했다. 죽력고는 대나무를 쪼개 항아리에 넣고 3일 이상 불을 지펴 대나무액인 죽력을 얻고, 20일 걸려 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을 다시 소줏고리에 붓고 장작불로 8시간을 가열해 죽력에 잰 댓잎에 여과시켜 소주를 내려 만든다. 술은 추수를 끝낸 지금부터 농사일 시작되기 전인 3월까지만 빚는다. 자신의 땅에서 직접 농사지은 쌀로만 가지고 순수 전통방식으로 빚어내다 보니 1년에 생산되는 죽력고의 양은 아주 적다. 예약을 한다 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양이다. ‘고’는 최고급 약소주에만 붙일 수 있는 술의 극존칭으로, 죽력고는 대나무가 많은 전라도 지방에서 빚은 약용주로 한방에서는 어린이가 풍으로 갑자기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사용되었는데, 생지황·계심·석장포 따위의 한약재를 넣어 빚기도 했다. 약 기운이 강한 죽력고는 적당히 마시면 다음날 아침에는 사우나를 한 듯 몸속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몸이 가뿐하다. 송명섭 장인은 “어머니는 외증조부로부터 죽력고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면서 “외조부는 전북 고부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는데, 늘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술의 비방을 모아 죽력고 등 약술을 빚어 치료 보조제로 이용했다고 들었다. 이 중 죽력고 제조비법은 어머니를 통해 내려왔다”고 덧붙였다. 조선 3대 명품주로 손꼽혔던 죽력고가 최근에서야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그간 죽력이 식품이 아닌 약재로 식약청에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송 명인은 죽력고를 살려내기 위해 서울 중앙도서관 등을 뻔질나게 오가며 각종 문헌을 죄다 복사해 번역했다. 결국 지난 2002년 죽력을 이용해서도 전통주를 담글 수 있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받아냈다. 그 대답을 듣는 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현재 죽력고의 맥이 이어지게 된 것은  송명섭 장인의 그러한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컨설팅 지원으로 죽력고의 명품화 도모

▲ 조선시대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와 서유구의 <임원십육지> 등에 나오는 죽력고는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 감홍로, 전주 이강고와 함께 3대 명주로 꼽은 최고의 명품 술이다

지난 2003년 전통 술 담그기(죽력고) 부문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송명섭 장인은  2010년에는 ‘발아곡류를 이용한 누룩의 제조방법’을 특허 출원하는 등 전통주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송명섭 장인이 빚어내는 죽력고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는 MBC특집다큐멘터리 <한국의 술>, KBS <9시 뉴스> 등 40여 차례에 걸쳐 각종 방송에 출연했으며 현재 태인주조장에는 죽력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체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송명섭 장인이 빚는 정읍의 명품주 죽력고가 ‘2012년도 전통주 등 제조업체 컨설팅지원사업’ 공모사업 지원대상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었다. 2012년도 전통주 등 제조업체 컨설팅 지원사업은 농식품부와 농수산유통공사가 전통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송명섭 장인은 이번 공모사업 지원대상으로 선정됨에 따라 국비 1천 600여 만원을 지원받게 되었으며 자담 400만원 등 총 2천만원을 들여 죽력고의 명품화를 위한 컨설팅을 지원받는다. 아울러 죽력고에 맞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명품주에 걸맞는 면모를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송명섭 장인은 지난 4월 전통주 부문 식품명인에 신청하여 현재 농식품부에서 이를 심의중이다. 그는 “최남선이 조선 3대 명주로 꼽았다면 조선인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하질 않겠나. 죽력고는 내가 처음 만든 술이 아닌 우리 민족의 술이다”면서 “우리 것, 우리 맛을 지켜내고 널리 전파시키는 역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