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든 공예는 고단하고 열악했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의 문화 DNA를 품고 있기 때문에 사명감으로 버텨왔고, 시대마다 고유의 삶과 멋을 그 속에 담았다. 한 나라의 전통문화의 핵심은 바로 공예인 것이다.

황인상 기자 his@

공예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으며 삶의 향기를 만들고 있는 분야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는 뛰어난 장인정신을 갖고 있지만 기계화에 밀리고, 자본에 밀리고, 마케팅에 밀리는 등의 현상이 반복되면서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작품’ 향한 열정으로 전통 방식 고수

▲ 서광수 대한민국명장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한도 서광수 선생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1호이자 대한민국명장 14호다. 국내에서는 몇 안 되는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빚고 있는 그는 50여 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오로지 ‘도예’의 외길을 걸어왔다. 현재 서광수 명장은 투각으로 만든 백자, 철화백자. 진사, 다완, 다기, 분청자기 등 다양한 작품을 빚어 만들어 낸다. 그 중에서도 백자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옛날의 깊은 멋과 맛이 우러나 백자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어머니의 젖빛인 유백색을 완벽히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 명장의 작품은 같은 태토, 성형, 조각, 소성과정을 거친 작품들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오묘한 붉은 색에 푸른 바다빛을 표현하듯 심오한 색조의 작품을 비롯, 우둘투둘 좁쌀 문양의 작품, 빗살이 새겨진 문양, 붓으로 힘차게 휘갈긴 듯 포효하는 문양 등 저마다 고귀한 자태를 뽐낸다. 특히 서광수 명장의 백자 달항아리는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작품성과 예술성 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모두 전통가마에 소나무로 불을 지피는 전통방식으로 빚어진다. 장작가마의 성공률은 고작 30%. 100개의 기물을 넣으면 건질 수 있는 사기는 많아야 30개 정도다. 전통 장작가마는 기온과 습도에 민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서광수 명장은 “흙을 고르고 반죽을 만들어 물레 성형을 마친 뒤 조각하거나 그림을 입힌 후 유약을 발라 초벌과 재벌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 3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한도요에서는 일 년에 평균 4번 정도 가마에 불을 댕긴다”고 덧붙였다. 가마에 한번 불을 지피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화목으로 화력이 센 강원도 소나무만 쓰는데 나무 값만 1천만 원. 여기에 하동 백토·서산 물토·양구 백토와 전국에서 장석, 대리석, 석회석을 모아 태토를 만들고 유약을 만드는 데는 정성은 물론 비용이 들어가, 한 번 작업에 수천만 원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광수 명장이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도자기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겠다는 도예가의 장인정신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서 명장은 “최근 들어 차문화가 확산되면서 다완이 많이 나가 점점 관상용 자기 판매도 늘고 있지만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기는 여전히 힘들다”면서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전통 도예를 감당하려 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전통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다
1961년 14세의 어린 나이에 도예계에 입문한 서광수 명장. ‘백자의 대가’로 손꼽히는 도암 지순택 선생(경기도 지정문화재 4호)으로부터 도자기의 전통 제작기법을 전수받은 그는 11년간 수비질에서 태토, 성형, 조각, 유약, 소성을 전부 배웠다. 이후 1976년 3공화국의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직접 운영했던 도평요로 자리를 옮겨 10년간 요장으로 활동했으며, 1986년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에 한도요를 세우고 독립해 독자적인 도자예술을 꽃피우는 중이다. 최근에는 그의 예술성이 세계에서도 인정받아 일본에서만 20여 차례가 넘는 개인전을 가지기도 했다.

지난 1960년대 일본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그는 일본인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일본의 국영방송인 NHK에서 특집으로 한국도자기 명장을 촬영할 때에도 소개되었으며, 후쿠오카 미술관, 다이마루 백화점, 교토 킨텐츠 백화점 초대전 등을 통해 팬도 생겨, 일본 아사이제과(주) 대표를 축으로 하는 ‘한도 서광수를 사랑하는 일본 모임’도 결성됐을 정도다. 매년 일본 초청 전시회를 개최하는 서 명장은 최근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해외에서 개최되는 초청 전시회를 통해 우리의 도자기 예술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처럼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한국 전통 도자기의 명맥을 잇고, 그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온 서 명장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사람에게 혼이 있듯 불에도 혼이 있다. 사람의 혼과 불의 혼이 어우러졌을 때 제대로 된 도자기가 만들어진다”는 서광수 명장. 그는 “이제는 이익에 좌우되는 작업이 아닌, 우리 도자기를 계승·발전시키는데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피력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