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멋의 상징이요 신사의 품격이었던 양복이 사라진 건 1980년대. 대기업이 기성복 시장에 뛰어들면서 맞춤양복은 사양길에 접어들며 먖춤양복점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황태일 기자 hti@

유행이 돌고 돌듯이 시대가 변하면서 맞춤양복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기성복에 식상한 데다 양복을 맞춰 입음으로써 자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게 맞춤복의 재도약의 원인이라고 패션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맞춤 양복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 박수양 대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자리한 맞춤양복점 엘부림은 한국 남성 정장패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곳이다. 박수양 대표가 차남인 박승필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뛰어난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업계를 선도해왔다. 현재 탤런트 정보석, 박영지, 김정현, 바리톤 김동규, 가수 이상원, 골프 선수 양용은 등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을 단골고객으로 확보한 엘부림은 필리핀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이 방한 당시 권영해 장관의 소개로 옷을 맞추기도 했다. 최근에는 CNN 방송에서 취재를 할 정도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이곳의 가장 큰 경쟁력은 다름 아닌 박수양 대표의 뛰어난 기술력이다. 양복기술은 이미 국제기능올림픽에서 12연패를 달성할 정도로 개개인의 기술은 뛰어나나, 우리는 그 기술을 개인에 머물렀고 이태리는 브랜드화에 성공했다. 이에 차남 박승필씨는 이태리 브랜드가 명품정장의 대명사가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중에 아버지의 기술과 뛰어난 젊은 감각을 통해 맞춤정장의 브랜드화를 진행 중이다.

 ‘제 25차 아시아주문양복연맹총회 기술경진대회’ 금메달을 수상한 박수양 대표는 정부로부터 기술과 직무능력을 인정받아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로 위촉받았으며 지난 2월에는 양복명장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러한 기술력과 함께 차남 박승필씨의 합류로 공격적인 마케팅이 더해지면서 엘부림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맞춤양복의 중흥에 이바지하고 있다. 독보적인 기술력과 품질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엘부림은 기존 맞춤양복점의 가장 큰 단점인 가봉문제를 해결하여 한번 방문하여 주문 가봉 납품을 원스톱으로 일괄 처리하는 올인원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분에 시·공간·지리적 제한이 사라지면서 고객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주문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박수양 대표는 “고객의 체형을 정상체형, 굴신체형, 반신체형, 비만체형 등 체형별로 패턴화했기 때문에 시스템화가 가능했다”면서 “여기에다가 연령별, 사이즈별로 또다시 세분화하여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 작품으로 나올 수 있도록 체계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맞춤양복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기성복의 경우 단지 가슴둘레, 신장 등 단순한 수치에만 맞추다 보니 체형별로 구분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에 체형을 보완하거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맞춤복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엘부림 주위에 있는 외대, 경희대, 건국대, 서울시립대 등에서는 예전부터 ‘취업 면접 때 엘부림 옷을 입으면 합격한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전해진다. 박 대표는 “특히 취업용 옷을 맞추러 온 학생들에게는 옷 디자인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다”면서 “대기업 임원들이 엘부림 단골고객이고 이분들에게 면접시 학생들 옷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은 박 대표가 만든 정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기술자문 및 특별출연
현재 박수양 대표의 옆에서 그를 보좌하며 엘부림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차남 박승필씨. 연세대학교 영어영문과에 재학하며 영어교사를 꿈꾸었던 그는 이태리 패션쇼를 보고 난 후 가업을 잇기로 결정했다. 박 대표는 “매년 양복협회에서 패션쇼를 하는데 각국이 번갈아 가면서 개최하고 있다”면서 “이태리 패션쇼에 아들과 함께 갔다. 아들이 이태리 패션쇼를 보고 한국의 양복 기술이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브랜드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가 해보겠다고 나섰다”고 덧붙였다. 가업을 승계하겠다는 둘째 아들의 지원으로 더욱 든든해진 박수양 대표다. 아버지 기술에 박승필씨의 젊은 감각이 가미되자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

젊은이들의 니즈를 파악한 결과 몸의 굴곡에 따라 흐르는 S라인 패턴의 양복 개발로 젊은층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엘부림은 맞춤 양복의 ‘명품 브랜드’로 통하고 있다.  20~30대들이 좋아하는 명품에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이 또 다른 고객을 불러 모으면서 현재 엘부림의 단골고객은 1만여 명에 육박하며, 전체 고객의 85% 가량을 20~30대가 차지할 정도다. 앞으로도 후배양성과 양복산업에 더욱더 매진하여 고객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겠다는 박수양 대표. 최근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맞춤양복점을 배경으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 특별출연 및 한국맞춤양복협회와 함께 기술지원과 자문을 하고 있다. “맞춤양복은 품위와 인격을 나타내는 하나의 작품이다”면서 “맞춤정장하면 엘부림이 떠오를 정도로 맞춤정장의 대명사가 되도록 아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박 대표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