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호문숙의 회화에는 역동적인 파동을 일으키는 감각적 주름들이 펼쳐져 있다. 겹쳐지면서 펼쳐지고, 뒤덮이면서 빠져나오는 휘황찬란한 주름들이다. 그리고 그 안에 또 다른 사물들이 있다. 그것은 분화되기 이전의 사물, 즉 사물의 원형이다. 그 어떤 사물로도 구체화 될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하며 한국의 추상 공간을 새로이 하고 있다.

신선영 기자 ssy@

추상의 형상
호문숙 작가의 작품에는 함축과 은유가 가득 차있다. 어떻게 보면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봄의 꽃 같고, 또 어떻게 보면 퇴적한 바닥의 낙엽 같은 추상으로서 말이다. 언뜻 보아선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닥이라는 천연 재료가 주는 따뜻한 정서만으로도 예술적 정취가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 상생, 162x130cm, 장지, 닥, 혼합재료.

먼저 색채를 봐야 하는 건지, 색채가 닿지 않은 남겨진 상징들을 봐야 하는 건지 골몰한다면 작가는 “우선 있는 그대로 보라”고 말해줄 것이다. 작가는 “관람자가 너무 작가 의도 대로 파악하려고 들면 추상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감성에 확신을 가지면 된다”고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 상생, 162x130츠, 장지, 닥, 혼합재료.

‘형태를 보지 말고 감성으로 받아들여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우리가 살면서 보고 느꼈던 보편적 감성을 엮어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보편적이라는 것은 자연의 변화무쌍한 흐름에 관한 얘기가 될 수도 있고,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명제가 될 수도 있다.

▲ 상생, 324x260cm, 장지, 닥, 혼합재료.

작품 제목은 이런 사유의 과정을 거친 뒤에 보는 게 더 좋다. 일례로 생성과 소멸, 실상과 가상, 현실과 이상, 진실과 허구, 나와 타자라는 모든 대립되는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 <상생>은 대립의 색을 벗어 던지고 대등의 크기로 나란히 선 두 행성을 통해 “차별 없이 하나로 어울린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추상의 방식
“처음에는 완전히 구상을 했지만 십여 년 전부터 규정화된 관습에 의한 시각을 벗어내려고 했다”는 작가는 “이것은 의식 이전의 상태, 즉 의식을 모두 비운 상태를 깨닫는 것과 같다”고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 상생, 162x130cm, 장지, 닥, 혼합재료.

닥 줄기를 거즈 형태로 직조해서 한 겹씩 덧대는 콜라주 방식을 택한 호문숙 작가는, 닥이 풀리고 겹치고 뭉개지면서 만들어내는 우연의 효과가 마음에 들어 십여 년째 작업하고 있다. 닥 한 겹에, 채색 한두 번씩, 총 서너 번의 반복과정으로 천착했으니 그의 작업은 언어를 지우고 난 사이의 언어, 즉 무아로 가는 언어와도 같다.

“작품에서 부유물처럼 하얗게 떠있는 이미지들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 식물, 곤충 등 우주의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존재예요. 구체적인 도식이 아닌 비정형, 비대칭의 곡선 형태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상상을 유도하고 있어요.”

▲ 비상, 162x130cm, 장지, 닥, 혼합재료.

사실 작품에 부유물처럼 떠있는 이 이미지들은 비 의도된 것이다. 의도한 게 아니라 색칠을 하고 남은 공간인데 오히려 이 부분이 대두되어 추상의 생명체처럼 됐다. “같은 재료일지라도 그 누구도 사용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새롭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작가는 “수 많는 실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독창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 9월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열세 번째 개인전은 작가에게 의미가 있다. 닥을 재료로 한 자신만의 화풍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전시였기 때문이다.

 “특히 추상화가일수록 관객과 소통하고 비평을 접하는 게 중요해요. 이번 전시에서는 신선하고 새롭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건 자연친화적인 닥종이의 마티에르가 좋게 전달됐기 때문이었어요. 비구상이 어려웠다는 평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해석의 여지를 좀 더 남겨두려고요. 관객과 소통하면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 봐야죠. 많은 사람들이 상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데 제 작품이 작은 밀알의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 희망의 나래,162x130cm, 장지, 닥, 혼합재료.

호문숙 작가는 중앙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총 13번의 개인전 (가나인사아트센터, 수갤러리, KBS갤러리, 단성갤러리, 원주문화원, 고문미술관, SETEEC서울 무역전시컨벤션, 역삼동센터, 한가람미술관, 북경올림픽경기장, 서일본컨벤션)과 다수의 아트페어(KIAF한국국제아트페어, BOAF 베이징올림픽아트페어, SOAF서울오픈아트페어, BIAF부산국제아트페어, A&C아트페어서울, 2015어포더블아트페어서울, NAAF아시아아트페스티벌), 초대전(LA갤러리블루웨이브개관 기념초대전, 한국현대작가뉴질랜드초대전, 부산국제아트페어초대전, 이태리한국작가100인초대전)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등 동아미술제, 경기 미술대전, 목우회, 한국여성미술대전에서 다수 수상했다. 현재한국미술협회, 구상회, 전업작가회, 서초미술협회 회원이며, 호 갤러리 관장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