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축적’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관계와 소통, 그리고 우리들 각자의 정체성의 문제에 접근하려 했을 때 이 쉽지 않은 낱말은 멀고도 먼 곳에 위치한 별들과 같은 이미지를 내뿜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멀리서 빛을 발하는 희미한 별들에 가까웠던 그 ‘축적’이란 평면적 개념은 이제 제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을 떠다니며 제 가까이서 움직여주고 은은한 빛을 발하는 반디불이로 전환되었습니다”
-작가 조현아

▲ 작가 조현아는 프랑스, 중국, 일본 등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주목받는 작가 조현아는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줄곧 관계와 소통,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왔다. 많은 시간 그를 숙고하게 했던 이 광범위한 질문을 위해 작가는 몇 년 전부터 ‘축적’이라는 개념을 실제 작업의 이론적 바탕에 두었다. 그리고 그 주제에 좀 더 절실히 다가가기 위해 예술표현의 논리적 바탕이 되는 다양하고 유용한 생각들, 그 생각들의 시각적 등가물들과 벗하면 지금껏 작업을 진행해왔다.

변화의 이미지에 가까운 ‘축적’개념으로 작업
“사실상 하나로 보이는 우리 각자의 모습 속에는 무수한 아바타들이 잠재해 있습니다. 그 다양한 모습들을 현실로 끌어내는 작업이 우리가 스스로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며 예술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작업론을 밝히는 작가 조현아의 작업들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 중에는 오래된 화석, 굴곡진 지층, 모든 것이 변하는 유구한 세월 속에 묵묵히 한 자리를 지키며 서있는 나이든 나무 등 자연물들이 많다. 그것들은 자신들 속에 많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켜켜이 쌓아오면서 자신들이 마주했던 변화의 순간을 받아들여 그 순간들을 자신의 몸속에 영속적인 기억의 형태로 새겨 간직해올 수 있었던 경이롭고도 신비로운 자연의 일부다. 이렇듯 지난 몇 년간 축적이란 개념으로 이끌어낸 질문을 통해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그 많은 것들에 마음으로 다가서고 결국 그들의 일부들을 표현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을 기쁘게 경험해오고 있는 작가는 “자연의 일부인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변화란 시간이라는 돌이킬 수 없어 가차 없는 축적현상과 더불어 시작되고 진행된다”면서 “시간 안에서 모든 변화는 만들어지고 동시에 그들 속에 존재하던 의미들은 사라진다. 일정하고 유연하게 흐르는 듯 하지만 변화의 매듭을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그럼에도 우리에게 그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새롭고도 다양한 틀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해준다”고 말한다. 시간과 자연에 대한 이런 작가의 관점에서 느껴지는것처럼 작가 조현아가 지금껏 다루어온 표현들과 그가 근간 중심으로 삼았던 ‘축적’ 개념은 기존의 생각, 혹은 선입견이 불러일으키는 것과 달리 고착의 이미지보다 변화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이며, 또한 그 둘 사이의 작용에 의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 개념의 유동성에 가치를 두고 작업해왔고 자신의 작업도 그렇게 발전해가리라는 희망을 염두에 두어서일까?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유연함이 묻어나는 태도로 이렇게 말한다. “지금껏 해온 작업을 통해 저는 관계와 소통,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를 ‘축적’개념을 빌어 일부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 작업들을 통해 잠시 빛났었고 그리고 사라졌지요. 그러나 그들은 생의 큰 항아리 속에 담겨 있을 수 있는 많은 다른 면들을 찾아 나서고 표현해 볼 수 있는 기초 과정을 제가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비의 메타포처럼 우리의 숨은 감정 확인시켜주다

▲ Water proof, Acrylic on canvas, 2012 (2)

“차이들을 보듬고 그 무수한 다름 속으로 천천히, 혹은 성급하게 그러나 균등하게 자신을 드미는 비가 오는 시간 안에서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잠시의 휴식’을 누리곤 합니다. 조용한 마음과 정연한 질서들은 술렁이며, 거울처럼 우리들의 일상을 작지만 성실히 반사해주는, 점점이, 끝없이, 이리저리 날리는 방울들을 보며 우리는 잠시 그들이 혹 우리들의 깊은 곳까지, 혹은 닿지 못할 만치 멀어지며 살아가는 마음들에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지나 않을까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최근 Water proof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가졌던 작가의 전시안내서에 적힌 글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중심으로 삼은 것은 비의 메타포이다. 사실 일상의 비는 단순한 기상현상일 뿐이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언어로 말하는 비의 많은 메타포들을 알고 있다. 작가는 그 메타포들을 소통에 비유해 말하려 한것이다, 그 비의 메타포들이 우리들의 숨은 감정들을 확인시켜주는 기회를 내려준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말처럼 자신의 그림속에 표현된 그 기회는 우리 속에 있던 감정의 화석들이 소통으로 풀려나와 어떤 방수기제로도 막을 수 없게끔, 짧고도 길게, 다름 속으로 다가가 박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할것이라고 생각된다. 한달간 열렸던 자신의 전시를 되돌아보며 덧붙이는 말속에서 작가는 “비, 그들의 작은 방울들은 빠르게 스치고 사라져 버리는 많은 자연 현상의 단면으로 비에는 분명 그런 허무의 메타포적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말하기를 “저는 사람들이 제 그림 속 작은 두 방울로 표현된 비의 자국들이 막막한 소실점 상에서도 서로를 바라보고 이끄는 맑은 두 마음들이며, 그 두 마음이 어느 순간 따뜻하게 연결될 하나로 읽히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파리제1대학 팡테옹소르본 조형예술학 석사과정 및 박사과정을 마친 작가 조현아는 프랑스, 중국, 일본 등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