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작가 허숙이는 상당기간 실경을 바탕으로 하는 사생의 세계에 몰입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적 표현은 유채가 드러낼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전제로 하여 전체적으로 자연의 느낌과 사물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떨림과 그 조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 작가 허숙이는 “나는 내 의식 안의 어둡고 우울한 공간이 빛의 산란으로 한순간 환해지며 날 황홀하게 해주었던 그 어느 날의 아침처럼, 내 작품 또한 예기치 않은 공간이나 시간 속에 그런 빛의 역할을 해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만드는 캔버스 안의 서정적 세계에 오늘도 빠져들고 있는 이유이며, 내가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이야기다”고 전했다

작가 허숙이의 작품들은 세상의 여러 가지 복잡하고 어지러운 단면을 초극하고 제작한 것들이다. 그의 구상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선이 굵다. 그리고 붓 터치는 매우 거칠고 색상의 발색은 원색적이며 비 기교적이다.

한국화적 입장에서 비구상적으로 표현하다
“어느 날 아침, 문득 눈이 떠졌을 때 창문을 통해 산란하는 빛의 프리즘이 무지개빛깔로 침실을 가득 채우며 내 눈을 황홀하게 해주었다. 나는 어느 날의 그 아침, 늦도록 내 침실에서 머물고 있는 그 찬란한 빛에 취해 놀고 있었다. 무수한 다른 날의 아침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색채가 그날 내 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자연의 상태에 따라, 물질의 상호작용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빛으로 인해 내가 쓰고 있는 색도 같은 시점과 동일한 조건 속에서도 늘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 내 의식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색채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기로 했던 것 같다.”(작가의 작업노트 中) 작가 허숙이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성들은 일반적인 모더니즘 화가들이 구사하는 기교적인 표현에 대한 반발심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사심 없이 자연과 대화하며 단순히 그 느낌의 전달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작가가 면(面)보다는 선(線)을 중시하고 그 리듬감과 조응에 관심을 두는 가운데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여러 가지 서정성의 표현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다. 작가 허숙이는 스스로가 “그동안 나는 늘 불안했고 그림에 쫓겨 살았다. 순수한 예술적 기량에서 오는 능숙한 표현력은 빠른 붓놀림과 정확한 터치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색채의 표현만이 보다 예술적이고 공간적 깊이감이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면서 “지금 내 작품에서 색채는 치유의 색이다. 내 안의 풍경은 보편적 일상 속에 놓여진 나의 일상성으로부터 기인한 서정성을 표현한 그림으로, 캔버스의 화면을 재구성하고 내 마음을 조형한 색채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작가 허숙이는 평소에 관심을 두고 제작했던 서구적 표현방법보다는 한국화적인 입장에서 비구상적인 표현을 행하고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여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간의 설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두드러진 구획을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의 대조적 표현을 통해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표현을 절제하고 단순하긴 하나 일정한 질료로 덮인 표면을 대비적으로 구축하여 보다 깊이 있는 변화를 구사하고 있다.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색채는 그다지 걸러지지 않은 채 소박하고 차분한 뉘앙스를 띠며 담백하고 명상적으로 표현되는 방향으로 이거진다. 그것은 소박성의 극치와 같은 세잔느나 루소의 풍경과도 닮아 있으며, 표현주의 화가들의 정취를 따르고 있다. 이러한 색채와 더불어 붓질이 이루는 터치들은 일정한 무게를 가지고 일정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흔적화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물의 형태가 되어 살아나기도 하고 감퇴되기도 한다.

3회 개인전 통해 원록적 질문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 담아
작가 허숙이(sook3837@hanmail.net)는 어느 특정한 장르에 안주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양식에 무관심한 태도로서 자신의 스타일에만 몰입해 있다. 작가가 “어차피 삶은 상실의 공간이다.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도 나로부터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체험과 기억 속에서 내 육체와 정신은 낡고 닳아가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로부터 관심과 애정을 거두지 않아야 삶이 긍정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다. 작가는 오는 6월 4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한국현대회화제 개인부스전에서 제3회 개인전을 가진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의 주요 흐름은 새로운 탄생의 출구를 찾기 위한 강밀한 에너지 폭발과 동시적인 것이다. 작품에서 나타난 색의 배합, 구도, 그리고 실물 오브제 재료들은 작가가 작품의 의미를 가시화하기 위한 감정이입의 도구로서 보다 강밀한 재료의 생동감과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주관적 감성에 기초하고 있지만 삶의 근원이나 존재의 가치 등과 같은 원론적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담아보고자 노력하였다. 가시 세계를 넘어 인간의 무한한 주관적 감성을 작업의 새로운 원력으로 삼고 있는 작가 허숙이는 “나는 내 의식 안의 어둡고 우울한 공간이 빛의 산란으로 한순간 환해지며 날 황홀하게 해주었던 그 어느 날의 아침처럼, 내 작품 또한 예기치 않은 공간이나 시간 속에 그런 빛의 역할을 해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만드는 캔버스 안의 서정적 세계에 오늘도 빠져들고 있는 이유이며, 내가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이야기다”고 전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