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사 이은주

옛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이 본래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을 다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플라톤의 ‘향연’에 구술된 내용이다.
다리 네 개, 팔 네 개, 머리는 야누스처럼 앞뒤로 하나씩 두 개의 얼굴이 달려있는 존재였다고 한다. 두 인간이 서로 등을 맞대고 붙어있는 형상을 떠올리면 되겠다. 토론에 참여한 아리스토파네스는 그 초기 인간들의 성이 세 종류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그리고 남녀가 합체된 몸. 그런데 이 ‘합체인간’은 성정이 사납고 강하여 신에게도 종종 도전이 되었으므로 신들의 왕 제우스가 인간의 몸을 둘로 쪼개버렸다고 한다. 그 뒤로 인간은 두 개의 팔, 두 개의 다리를 가진 개체가 되었다. 그리고는 한 번 더 신에게 도전을 하면 그 때는 몸을 다시 더 쪼개어 외다리 외팔로 뛰어다니게 만들겠다고 협박을 했다나.

말도 안 되는 ‘동화’에 불과하지만, 이 전설에서 유래하여 인간이 이성(異性)을 찾아다니는 것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기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문학적 수사가 탄생하였다. 반쪽을 찾아 헤매는 동안 인간들은 신에게 도전할 생각을 잊어버리게 된다. 마침내 자신의 반쪽이라 생각되는 대상을 만나면 서로 사랑하면서 잃어버린 과거의 힘을 되찾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원형이 신이라는 명제는 여러 전설에서 등장한다. 인간은 신에 의해 신과 같은 형상으로 도자기처럼 빚어졌거나, 신들의 교합 가운데서 태어났거나, 신들의 몸, 또는 신이기도 한 자연의 토대 안에서 스스로 태어났다.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몸이나 정신이 신(神)적인 존재로부터 비롯되어 생겨났다는 점에는 모든 신화의 전설의 얘기가 일치한다. 반쪽을 잃어버린 인간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전념하고 싶은 일은 무얼까. 당연히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일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고전적 해석인 매슬로우(A. Maslow)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도 식욕과 성욕은 인간이 가진 다른 모든 욕구에 우선하는 기초적 생리욕구로 설명된다.

인간 뿐 아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갖고 있는 ‘생존과 종족번식’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생존과 번식을 욕망하지 않는 생체라면 그 존재자체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으로 관점을 돌려보자. 아마도 생명을 가진 동식물의 원형은 아메바처럼 젠더가 구분돼있지 않은 유기체들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가분열의 생식으로부터 성적 결합을 필요로 하는 이성생식으로 진화해 왔다. 인간이 가장 고등한 생물로 진화한 것은 성적 분화와 다양한 성 결합이라는 수단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이성 개체로부터 유전적 장점을 서로 흡수하면서 세대를 반복할 때마다 좀 더 나은 종으로 진화를 거듭한 결과다.  그렇다면 섹스는 인간에게도 가장 원초적이면서 정당한 행위에 속한다. 어쩌면 인간의 원형인 신으로 다가감(聖化) 수단으로도 필수적일 것 같다. 그런데 인간만큼은 여기에 어떤 윤리적 가치나 경중을 가리며, 분별심을 가지고 있다. 왜 그래야 할까. 혹시 인간의 우월감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이중적 잣대가 필요한 것 같다. 인간은 생태의 일부로서 자연적 본성을 지닌 존재이면서, 동시에 발전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양적 존재라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을 동물적(악마적) 행위로 보고 섹스가 없는 절제를 신성시했던 중세의 유럽의 교회중심 사회에서는 부부간의 섹스조차도 교회가 지정해주는 성화된 날에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규율이 있었다. 좀 우스울지 모르지만, 성은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다는 경계심은 오늘날까지도 끈질기게 사회의식 속에 남아있다. 반면 성의 해방이나 자유가 마냥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반드시 방종의 문제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성적인 방종이 가정을 깨뜨리고 개인의 생활을 망가뜨린다는 주장은 차치하더라도, 역사상 수많은 나라들이 지도층의 성적 방종과 함께 타락하고 문란해져 결국 멸망했다는 사례들은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교양이 지나치게 강조된 사회에서는 인간의 자연스런 성이 지나치게 억압되고, 본성이 강조된 사회에서는 성이 지나치게 남발된다. 인간이 섹스에 대하여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하겠다. 섹스 자체는 자연적 행위이므로 무죄(無罪)이나, 어떤 섹스는 자신의 몸과 정신의 건강을 강화시키고 어떤 섹스는 그것을 무력화시킨다. 어떤 섹스는 교감의 수단이 되고 어떤 섹스는 파괴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섹스는 바람직하고 어떤 섹스는 바람직하지 않을까.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 가치를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상론을 말하자면, ‘자유롭되 방종하지 않는 성’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대화당한의원, 한국 밝은 성 연구소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