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9일 영국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열렸다. 바로 서열 계승 2위인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왕자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미모의 신부, 환상적인 마차 퍼레이드, 궁전 발코니에서의 달콤한 키스 등 마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우리 눈앞에서 펼쳐졌다. 21세기인 지금 세계에는 영국을 비롯해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 모나코, 네덜란드 등 왕이나 여왕이 있는 나라가 많다. 동화 같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영국 왕실 이야기 속으로.

즉위 60주년 맞는 엘리자베스 2세

▲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현재 영국의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본명 Elizabeth Alexandra Mary)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버킹엄 궁전에 거주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이 64년간 재임해 가장 오래 왕위를 지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2년 6월 2일이 지나면 60주년을 맞는 두 번째 왕이 되며, 2015년 9월이면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26년 런던에서 출생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조지 6세의 장녀로 1952년 2월 조지 6세가 사망한 후 남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했다. 대관식은 이듬해 6월 웨스트민스터대성당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1947년 에든버러공 필립과 결혼해 왕세자 찰스와 차남 앤드류, 3남 에드워드와 장녀 앤의 3남 1녀를 두었다. 서양에서는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므로 엘리자베스 여왕도 남편인 필립 마운트배튼의 성을 따라 영국왕실의 명칭이 마운트배튼가로 바뀌어야 하지만, 여왕의 성인 윈저를 그대로 사용해 현재 영국 왕실은 윈저가인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국왕으로서 다양한 정무를 처리하였고 수많은 외국 방문으로 세계 각국과 우의를 다졌으며, 국민에게 신뢰와 인기가 높다.

프린스 윌리엄 & 케이트 미들턴

▲ 윌리엄 왕자(좌)와 케이트 미들턴(우) _영국왕실 제공

윌리엄 영국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이 2011년 4월 2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영국 왕실로서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다이애나 스펜서)의 결혼식(1981년) 이후 30년 만에 맞는 경사다. 2001년 대학동기로 만나 10년 동안 사랑을 키워온 왕자와 중산층 출신 평민 여성의 결혼식은 전 세계 20억명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날 미들턴은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이 디자인한 아이보리색 웨딩드레스를 입었으며, 머리에는 다이애나 비가 썼던 티아라를 장식했다. 웨딩드레스의 가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약 4억4000만 원(25만 파운드)으로 추정한다. 윌리엄 왕자는 진홍색의 아일랜드 경비병 정복을 입었고, 동생인 해리 왕자는 정규군복을 입었다. 신랑신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첫 번째 왕실선물로 ‘캠브리지’ 공작부부 작위를 부여받았다. 1982년 6월 왕족으로 태어난 윌리엄 왕자와 1982년 1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케이트는 태어날 때부터 확연히 달랐지만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윌리엄 왕자는 “처음 케이트를 만났을 때 케이트에게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케이트가 가진 그 특별함을 알아가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귀족이 존재하는 영국에서 미들턴은 평민이지만 연간 학비가 1년에 5400만 원인 사립 보딩스쿨에 다닌 걸 보면 부유한 집안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슬픈 연가’ 세기의 로맨스

▲ 영국 왕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심프슨 부인(왼쪽)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도 버린 에드워드 8세

옛날부터 영국 왕실의 역사는 스캔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페인의 연합함대를 격파해 나폴레옹의 영국 침략을 저지한 넬슨 제독. 영국은 물론 온 유럽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던 그 시대 최고의 영웅 넬슨 제독도 젊고 예쁜 대사부인 엠마 해밀턴과 사랑에 빠져 본국으로 소환당하고 모든 것을 잃는다. 미국 출신의 이혼녀인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진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12월 11일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동생 조지6세에게 왕위를 넘겼다. 왕에서 물러나 ‘윈저 공’으로 강등된 그는 연설에서 “내게 가장 가까운 이는 나를 말렸지만 나 홀로 직접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윈저 공은 이듬해 6월 3일 프랑스 투르 지방의 고성 샤토 드캉데에서 심프슨과 결혼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여동생인 마거릿 공주는 결혼하면서 스노든 백작부인 마거릿이 되었다. 마거릿은 아버지의 공중 경호대원 이자 전투기 조종사였던 이혼남 피터 타운젠트와 사랑에 빠졌다. 타운젠드는 1955년에 이혼했지만, 공주는 “기독교에서 결혼은 영구불변의 것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를 수 없다”며 두 사람의 로맨스가 끝났다고 발표했다. 이후 사진작가인 안토니 암스트롱-존스와 결혼했으나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1978년 이혼했다.
영국의 러브스토리 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화제를 모은 것은 다이애나 비의 이야기. 찰스 왕세자는 1981년 7월 올소프 백작의 3녀 스펜서 다이애나와 결혼했으며,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패션 감각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남편 찰스 왕세자가 결혼 전부터 사귀어오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관계로 괴로워하다 결국 1996년 8월 이혼한다. 그녀는 이혼한 후 보란 듯이 바람을 피러 다녔고, 중동의 돈 많은 백화점집 아들과 결국 프랑스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1997년 8월 죽게 된다. 찰스 왕세자는 2005년 4월 오랜 연인이었던 커밀러 파커 볼스와 재혼했으며, 이혼녀였던 그녀는 왕세자비가 아닌 한 단계 낮은 콘월공작부인의 작위를 받았다.

조지 6세 ‘말더듬이’서 ‘국민왕’ 되다

▲ ‘말더듬이’ 영국 왕 조지 6세의 좌충우돌 왕실 이야기를 다룬 영화 ‘킹스 스피치’의 한 장면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이자 조지 5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앨버트 왕자(조지 6세)는 활달한 성격의 형 에드워드 8세와 다르게 말더듬이에 병약한 체질, 겁 많은 성격으로 어렸을 적부터 왕위는 꿈도 꾸지 않은 채 단란한 가정을 꿈꿨다. 하지만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에드워드 8세가 두 번이나 이혼한 경력이 있는 윌리스 심슨과 결혼하겠다고 발표하며 왕위를 버렸다. 이혼녀가 왕비가 되는 것을 금했던 영국법에 맞서 사랑을 지키기로 한 것.
형을 설득하고 부모에게 간청할 만큼 왕이라는 것이 너무 싫었던 앨버트 왕자는 결국 1936년 조지 6세라는 이름으로 왕에 오르게 된다.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국민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언어치료사를 고용해 말더듬이를 치료했고 왕으로서 해야 할 일과 영국 정세에 대해 밤낮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몇 년 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독일이 영국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조지 6세는 생애 가장 중요한 연설을 하게 된다. 일군의 공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영국을 떠나지 않고 버킹엄 궁을 지키는 조지 6세는 “이러한 시련 속에 침착하고 단결하기를 국민께 부탁드립니다”라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왕으로서의 근엄함을 보여줬다. 이로 인해 그는 국가의 상징적 존재를 뛰어 넘을 정도로 영국에 큰 영향을 끼치는 왕이 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

▲ 엘리자베스2세 결혼식

영국 왕실에 대한 영국민들의 존경심은 세계가 부러워 할 정도이다. 왕실을 존경하는 국민적 이유는 왕실이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면 가장먼저 앞장서는 이들이 바로 왕실 가족들로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 전통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10년 미들섹스대의 심층 조사 결과 영국 왕실의 사회적 책임 이행도는 55%로 유엔(50%)보다 높게 나왔다. 영국 왕실이 때로 추문에 시달리면서도 국민의 애정을 잃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주의 몸으로 아버지인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 군용 트럭을 몰았고, 여왕의 아들 앤드류 왕자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 역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했으며, 찰스 왕세자는 70년대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였다. 또,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공의 차남인 앤드류 왕자는 1982년 포클랜드전쟁 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이런 전통에 이어 해리왕자가 충돌이 잦은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 근무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영국 왕실의 모범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해리왕자는 찰스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에서 태어난 막내아들로 왕위계승 서열 3위인 그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선 복무를 자원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여전히 굳건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왕실의 존속 이유

▲ 윌리엄 왕세자 결혼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리는 윌리엄 왕세손 결혼식에 든 비용은 약 1억7000만 원. 경찰관 5000명 이상이 배치된 보안 비용은 최소 1100만 달러(약 117억 원)로 추산된다. 결혼식으로 인한 경기 부양효과는 최대 1조7000억 원으로 예상하지만 결혼식 날이 공휴일로 지정됨에 따라 조업 중단에 따른 생산성 손실은 60억 파운드(약 10조7000억 원)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왕실의 재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데, 왜 영국 사람들은 아무런 실속도 없는 왕실의 존재를 계속 인정하는 걸까.
현재 영국의 국가는 ‘신이여, 국왕을 보호 하소서’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불러온 국가도 폐지해야 하고 국민들이 자긍심을 잃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지금의 왕족은 일종의 인간문화재인 셈이다. 또한, 영국왕실이 존속되는 이유로 원래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와 영국국민의 국민성이 상당히 보수적 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프랑스 왕실의 몰락을 가져온 프랑스대혁명과 영국왕실이 통치권을 잃은 명예혁명은 비교의 대상이다. 프랑스는 왕을 처형하고 공화국을 새로 건설 하는 등 급격한 변화를 이뤘지만 보수적인 영국국민들은 달랐다. 그들은 프랑스처럼 급진적인 개혁이 아닌 온건적인 개혁을 지향해 지금의 입헌군주제를 완성시켰다.
영국에 왕실이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징적인 가치’ 때문이다. 영국의 왕실이 국정에 관여 할 수 있는 권한은 박탈당한지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왕실이 유지 될 수 있는 것은 과거 대영제국을 이끈 왕실의 영예를 기리기 위해서이며, 또 다른 이유는 왕실이 친선외교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왔다. 16세기의 엘리자베스 1세와 19세기의 빅토리아 여왕이 세계에 넘치는 영국의 국력을 과시하는 존재였듯이, 영국인들은 현재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의 전통과 힘, 권위의 상징으로 세계에 비치기를 바란다. 이 때문에 영연방과 그 외 나라들의 외교 순방은 여왕을 비롯한 왕족들의 주요한 임무이다. 여기에 관광수익을 올리는데 왕실이 큰 기여를 하고, 왕실에 얽힌 기사거리 등이 신문, 잡지 구독률뿐만 아니라 시청률을 올려주는 등 매스미디어산업의 수익을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