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다양한 기법과 매체들 속에서 종이와 먹을 매재로 회화의 표현성을 추구하는 작가 조순호의 작업은 전통의 기법을 놓지 않고 작업한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그리고 또한 형식이 지닌 의미 외에도 동양화(한국화) 본연의 내용적 측면인 삶에 대한 성찰과 정신의 여과 상태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 작가 조순호의 수묵은 빠르고 힘찬 붓질에 의해 그려낸 짙고 넓은 먹(墨)의 면(面)이라는 것이 첫 인상이다. 어떤 강렬한 힘에 사로잡힌 듯 단숨에 대담하게 내지른 거친 붓놀림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역동적인 제스추어가 전해진다.

주목받는 작가 조순호의 수묵은 빠르고 힘찬 붓질에 의해 그려낸 짙고 넓은 먹(墨)의 면(面)이라는 것이 첫 인상이다. 어떤 강렬한 힘에 사로잡힌 듯 단숨에 대담하게 내지른 거친 붓놀림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역동적인 제스추어가 전해진다. 그러나 보기에 거침없이 휘두른 듯한 그의 그림은 수십 장의 파지(破紙)를 낸 후에 비로소 만나지는, 수십 년에 걸친 수련과 끈질긴 기다림 끝에, 거의 무의식에 이른 익숙한 붓놀림으로 그림이 절로 그려지는, 즉발(卽發)과 고도의 직관이 내리는 전광석화 같은 판단에 의해 미적 형상 결정되는 작품이다. 종이 위에 남겨진 결과물은 단지 작가 자신 또는 어떤 관념의 표현이라고 말해버리기엔 너무도 큰, 인간 조순호의 전부, 그의 실존(實存)을 쏟아 부어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가 조순호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몇 십 분간 명상에 가까운 의식의 침잠 상태를 거친다. 그리하여 그림을 시작할 만한 평정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고 나야 지필묵을 대한다. 붓과 먹과 종이 앞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자신과 그림이 합일되는 무아의 순간, 그가 실지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채 십 분을 넘기지 않는다. 단호흡에, 그야말로 단숨에 기를 모아 그어대는 넓은 선, 거기에 빠른 속도로 옆에 잇대어 그은 붓자국은 선이 아닌 면으로 종이 위에 남는다.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이 조순호의 먹이다.

요즘 그는 일상에서 흔히 대하는 들꽃, 나무, 파랑새, 또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눈물 섞인 사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대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미리 대상을 작정하고 그리지는 않으나, 그려진 붓의 넓은 면이 연상시키는 대상들은 이렇듯 지극히 가까운 주위의 사물이다. 제목도 요즘은 내면의 세계로 연장이 되어 악몽, 꿈, 개꿈 등이 등장한다. 그만큼 그의 표현 범위는 확장되고 삶의 틀이나 관념의 굴레에서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무심에 한 발짝씩 가까워진다.

▲ 파랑새 한지에 수묵담채 57X45 2007

작가 조순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대진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한국, 독일, 이집트, 미국, 중국, 스위스, 호주, 태국, 코스타리카 등 국내외를 오가며 지금까지 총 12회의 개인전 및 그룹전, 초대전에 참가하며 역량을 발휘하고 있으며, 작품 소장처로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모스크바 한국문화홍보원 등이 있다. NM
출처- 김숙경 (미술평론), 염혜정 (아트포럼 뉴게이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