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때 춤으로 세계를 누비며 ‘동양의 무희’ ‘동양의 진주’ ‘반도의 무희’ ‘한국의 이사도라 던컨’ 등으로 불렸던 최승희는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양, 세계에 길이 남을 천재 무용가로 꼽힌다.

▲ 최승희 춤 발전협회회장이기도 한 김영순 원장은 북한에서 1967년 최승희가 숙청될 때까지 17년 동안 함께 무대에 올랐다

전설의 무희, 세계적인 무용가라 불리는 최승희. 무용가 최승희는 조선의 얼을 추구한 민족무용을 창조 발전시킨 선각자이자 아리랑을 세계에 알린 한류1세대다. 중국 고전무용체계를 정립하고 무용 근대화를 주도한 최승희가 최근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최승희의 마지막 제자’, 최승희 춤의 모든 것 전수받다
최승희 무용교육원의 김영순 원장은 ‘최승희의 마지막 제자’를 자청한다. 최승희 춤 발전협회회장이기도 한 그는 북한에서 1967년 최승희가 숙청될 때까지 17년 동안 함께 무대에 올랐다. 때문에 누구보다도 국내에서 최승희의 춤을 가장 잘 기억하고 제대로 되새기는 특별한 제자다. 지난 2003년 탈북해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온 이후 최승희의 춤을 전도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20세기에 마라톤 손기정 선생이 있다면 최승희 선생은 무희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빛냈다. 실로 위대한 춤꾼이다”며 “최승희 선생의 춤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우아한 모습을 스스로 창작한 우리 춤의 기본이자 아름다운 멋이다. 관중을 사로잡는 눈빛과 동양의 신비한 매력을 가진 선생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한다. 천재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춤을 이어받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는 한편 북한주민의 인권 및 탈북자 예술인의 발전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영순 원장은 중국 선양에서 태어나 해방 후 1945년 10월 가족과 함께 평양에 들어와 살았다. 3년 뒤인 1948년 평양 제2인민학교 시절, 김구 선생과 김일성 등이 참석한 남북연석회의 때 춤 공연자로 뽑히며 무용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 원장은 14세 때 최승희 무용연구소에서 춤추는 최승희를 담장 너머로 보며 무용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보살춤, 장고춤, 장고무 등을 추는 최승희 선생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춤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 후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원장은 평양예술대에 진학해 최승희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직접적인 만남을 가지게 됐다. 최승희의 가르침은 매우 혹독했다. 평소에는 항상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었지만 교육할 때만큼은 무척 엄격했다. 최승희는 김 원장에게 “싫증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은 매력이 있어야 하고, 미쳐야 성공한다. 춤에서는 강약, 굴곡, 매듭, 굴신, 호흡 그리고 손끝, 발끝 움직임에서도 동시에 장단을 타고 아우러져야 하며 걸을 때도 씹어 먹듯이 걸어라. 한걸음 내딛는 동장에도 발바닥의 모든 힘줄에 힘을 끌어 모아야 하고, 무릎은 스쳐서 춤춰야 한다. 기본 없이는 무대에 올라 춤을 출 자격조차 없다”며 호된 가르침을 주었다. 최승희로부터 기본만 3년 넘게 교육 받은 뒤에야 본격적으로 춤을 배울 수 있게 된 김 원장은 이후 장고춤, 부채춤, 승무, 수건춤, 북춤, 장검무, 단검무, 옥저의곡, 초림동, 에헤라 노하라, 보살춤, 인도무희 등 최승희 춤의 모든 것을 전수받았다. 최승희 춤 보급에 여생을 바치다
김영순 원장의 북한에서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1970년 영문도 모른 채 국가보위부 조사를 받은 뒤 부모와 1녀 3남의 자녀 등 가족들과 함께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다. 9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던 중 김 원장 자신은 겨우 견뎠지만 가족들은 모진 수감 생활을 견디지 못해 죽었고, 남편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수용소로 끌려가 생사조차 모르는 상태다. 1녀 3남 중 유일하게 살아나은 아들 한 명과 함께 탈북해 중국을 거쳐 남한에 온 김 원장은 “제가 성혜림의 친구라는 이유로 그랬다. 당시 보위부 조사를 받을 때 알고 있는 얘기를 전부 쓰라고 해서 자필로 ‘성혜림이 우리집에 와서 자신이 5호댁(김정일 가족)이 된다고 했다’는 얘기 등을 다 적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 가족이 몽땅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에 잡혀갔다”고 회고했다. 앞으로 ‘최승희 무용단’ 을 만들어 최승희 춤 보급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김영순 원장은 “최승희 작품으로 무용단을 만들어 선생의 춤이 이 땅에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북한에서 접한 진정한 선생의 춤을 남한에서 다시 꽃피울 수 있는 춤꾼 양성에 앞장서겠다”면서 “최승희 선생의 작품은 표현력이 뛰어난 전통무용인 만큼 보석 같은 춤사위를 젊은 세대들에게 접목시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다시 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