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전체의학연구소 서정선 교수,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영태 교수 등은 생명공학회사인 (주)마크로젠과 함께 폐선암 환자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유전자 변이를 규명하는 쾌거를 거뒀다.

▲ 서울성모병원 폐암센터 강진형 교수

국내 연구진이 ‘폐암 유전자’를 찾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논문은 세계적인 권위지인 ‘게놈 리서치’에 실렸다. 이 연구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30대 의사가 자신의 발병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시작된 드라마틱한 성과였다. 담배를 한 번도 피우지 않았으며 폐암에 걸리기에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환자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특이한 유전자 변이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폐암 발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유전자 염기서열 전체를 분석해달라는 요청을 했던 것이다. 폐암은 주로 60세 이상 흡연자에게서 발생하는데 자신의 암은 여성들이 주로 걸리는 ‘선암’이었다. 이는 전체 폐암의 32%정도를 차지하며 비흡연자, 여성, 40~60대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폐암 중 가장 흔한 형태다.

다학제 협진, 서울성모병원의 핵심 브레인
폐선암 환자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유전자 변이를 규명한 이번 연구를 통해 전체 폐암환자의 6%(세계적으로 한 해 약 4만명) 정도가 유전자 발현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표적치료제 개발을 통해 ‘근본적 원인 치료’ ‘개인별 맞춤형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가히 의료혁명이라 할 만한 성과다. 이번 연구를 이끌었던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의 강진형 교수는 폐암, 두경부암의 전문가로 최근 항암투병중인 소설가 최인호의 주치의로도 유명하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성모병원 암병원 내에는 각종 암과 관련한 팀이 있고, 각 팀 안에는 수십 명의 관련 스탭들이 있다. 한 명의 환자라고 해서 폐암 전문의 혼자서 결정하고 알아서 수술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팀이 머리를 맞대서 지혜를 모으고 또 각 팀 내에서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치료법에 대해 회의를 거치는 구조다. 최적의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꼭 서울의 큰 병원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장비 등의 하드웨어의 문제보다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다”면서 “충분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환자를 돌보는가, 각자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어우러진 최상의 진료를 창출할 것인가 등 그 경험이 늘어갈수록 진료에 대한 퀄리티가 높아지는 것이다. 혼자서 한 가지 치료로는 절대 환자를 고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다학제 임상과들과 진료의 질을 높이고 있는 강진형 교수는 지난 2004년 호흡기내과, 흉부외과 전문의들과 함께 폐암협진팀을 발족시킨 이후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9월부터는 폐암센터 센터장을 맡으며 여러 임상과 의사들과의 대화소통에서 중심자,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팀이 폐암환자를 진료하는데 있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인 것이다. 강 교수는 1996~1998년 미국 뉴욕 코넬의대에서 연구강사로 연수하면서 인근에 위치한 메모리얼 슬로앙케터링 암센터에서 다학제 진료팀을 경험, 귀국 후 성빈센트병원에서 처음으로 폐암협진팀의 골격을 구성했다. 1999년 9월에는 서울성모병원의 전신인 강남성모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위암과 대장암 환자를 중심으로 진료를 하던 중 2002년 큰 누님을 폐암으로 잃고 폐암치료에 전념할 것을 결심했다. 이후 강 교수는 동료의사들을 설득하여 폐암협진팀을 발족,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 환자들의 안정과 최상의 수술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표적분자 발굴을 통한 표적치료제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통해 2000년대 이후 암세포만을 찾아내서 미사일처럼 공격하는 표적항암제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표적항암제가 모든 폐암환자에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즉, 표적항암제가 항암효능을 나타낼 수 있는 표적을 가진 환자에서만 효과적인데, 아직까지도 폐 선암 환자의 40-45%는 암을 일으키는데 핵심적인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전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미지의 분자표적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강진형 교수 연구팀은 서울의대 서정선교수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통하여 폐암을 일으키는 새로운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하여 Genome Research라는 의학잡지에 발표한바 있다. 앞으로 이러한 새로운 유전자 돌연변이가 어느정도의 폐암환자에서 발현되고 어떤 표적항암제에 가장 잘 반응할지에 대해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폐암치료는 환자마다 암을 유발하는 표적분자를 찾아서 적합한 표적항암제를 선택하여 올바르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즉, 적절한 환자에게, 알맞은 시기에, 적합한 표적항암제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맞춤형 항암치료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강진형 교수의 연구팀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실험실 연구와 다양한 임상시험을 통하여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항암제 보험처리, 운용의 묘 살려야
최근 국립암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인 80세 생존자를 기준으로 할 때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은 34%다. 국민 3명 중 1명은 죽기 전에 암게 걸린다는 얘기다. 강진형 교수는 “지난해 국내 암 환자 수는 70만 명을 넘어섰다”면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복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암 환자들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사망 직전 1년간 암 환자 1인당 평균 2,780만원을 지출한다. 본인 부담액이 큰 이유는 고가의 항암제는 보험급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최근 보험등재를 신청한 10개 품목의 항암제 중 신규 등재된 것은 4개 품목에 불과하다. 허가에서 급여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모두 14개월 이상이었다. 보험에 등재된 항암제는 5%의 본인 부담금만 내면 처방받을 수 있지만, 등재되지 않은 고가 항암제의 경우 매달 수백만 원 이상의 비용을 환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의약품 선별등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가의 항암제라 하더라도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다면 암 환자들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약사, 보험회사, 암환자 사이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서 약제비 부담을 서로가 분담하는 정책적 결론을 도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연구, 진료, 치료,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 활동영역이 넓은 강 교수. 머지않은 미래에 건강한 대한민국을 실현할 강 교수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