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2.1.24 월 16:48 전체기사 l 기사쓰기 l 자유게시판 l 기사제보 l 구독신청 l 광고안내 l 회사소개
> 뉴스 > 커버스토리
     
힘있고 용기있는 정치인 박근혜
그녀가 바로 한국을 이끄는 힘이다
2009년 04월 01일 (수) 14:25:51 뉴스메이커 webmaster@newsmaker.or.kr

   
말이나 행동에 무척 신중하고 자기가 한 말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정치인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정치를 한다는 것.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국회를 둘러봐도 여성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도 10% 미만으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여성의 정치 참여도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여성의 정치 불모지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행보를 다지고 있는 정치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자꾸 여성이라는 단어를 남발해서 민망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분명 여성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따른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한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김희준 기자 juderow9@

이미 알다시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첫째 딸이다.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유학을 떠났던 그녀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했다. 어머니가 사망한 1974년부터 대통령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한 1979년 10월까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새마을운동의 일환인 ‘새마음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2년 육영재단, 1994년 정수장학회 등을 물려받아 운영을 도맡았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에는 박근혜 대표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권 시절, 3선을 시도하려다 김재규의 총에 맞아 서거했고,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으니 참모들은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장녀 박근혜에게 전하게 된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자리에 앉아 통곡했겠지만, 28살의 박근혜의 반응은 달랐다. “정말입니까? 휴전선은요? 이상 없습니까?” 이것이 장녀 박근혜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참모들은 박근혜의 이러한 반응을 보며 ‘이 여자가 사람이 맞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한 국모라고 생각했었던 박근혜의 이러한 모습에 그 당시 박정희 정권 하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녀에게 아직까지도 큰 열광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 마산 창원 진해 에서

정치에 처음 입문해 한나라당 대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었지만, 정치입문을 하지 않았던 박근혜는 1998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한나라당의 후보로 대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과 미혼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등으로 국회의원 후보 출마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박근혜 전 대표는 출신 선분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 진영 및 영남 지방과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인 충청 지역의 지지를 얻는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화 탄압 전력으로 인해 진보 진영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200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독자적 정치 세력화를 염두에 두었던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잠시 탈당했으나 대선 전에 복귀했다. 2002년 5월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회담을 하고 돌아오는 그녀의 정치적 행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마저 감탄케 할 정도였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면서 기존의 정당 이미지와 걸맞지 않은 단식농성까지 벌이게 된다. 친한나라당 성향의 언론과 학계에서도 이들을 지원하고 나섰으나 한나라당은 국민의 외면을 받고 탄핵 소추마저 물거품이 되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유례없는 급격한 하락세를 맞게 되었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최병렬 대표까지 사퇴하게 된다. 이때 착실하게 당 내에서 입지를 쌓고 있던 박근혜가 그의 뒤를 이어 3월 23일, 당 대표의 자리에 오른다. 기존의 다선의원, 중진의원, 운동권에서 포섭해 온 세력 등과 다르게 박근혜 전 대표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사죄를 표명했고,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원내 1당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121석을 차지하며 예전의 명성을 다시금 찾아가게 되었다. 박순천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여성 당수가 된 그녀는 선거 승리를 위한 한시적 당 대표가 될 것이라는 일부 예상을 깨고 오랫동안 당 대표 자리를 지켰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한 시민이 휘두른 문구용 칼에 베어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났음에도 불구, 당원들에게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등의 모습을 보여 당 안팎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정치의 정석을 실천하는 ‘진짜 정치인'

그녀의 정치적 입장, 많은 정치인들의 지지 얻어내
   
 

2004년부터 한나라당의 위기와 재도약을 이끈 박근혜 전 대표는 2007년 대선의 유력한 예비후보 중 하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당권과 대권의 분리 방침에 따라 2007년 대선을 1년 남긴 2006년 6월,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의 가장 큰 적수는 서울시장을 지내면서 청계천 복원, 버스노선 개편 등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명박 현 대통령이었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박근혜는 이명박의 부패 비리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BBK 주가 조작 사건 등이 처음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는 당원 투표에서 승리했지만, 당원 투표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이명박에게 패하여 대선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 내부에는 친 이명박 계열과 친 박근혜 계열의 논쟁이 잠시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선거를 직접적으로 도와 준 이재오, 이방호 의원 등이 한나라당의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상대적으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은 홀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2008년 총선에서 이재오, 이방호 의원은 적극적으로 이명박 계열의 정치인들을 후보로 내세웠으며 공천에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에 대해 공천의 공정성이 결여돼 있다며 수차례 비판했으나 공천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서청원, 홍사덕 등의 주도로 공천에서 탈락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이 대거 탈당, 친박 연대를 창당하고, 다른 정치인들은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여러 차례 “잘 되길 바란다”는 언질만 남겼을 뿐, 이들과 행보를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급기야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이 자리에서 공천결과에 대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 후보로 달성군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됐고, 이후 그녀는 친박 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 소속으로 당선된 이들의 복당을 요구했고 대부분 다시 한나라당으로 돌아왔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검찰 수사 문제 등으로 인해 아직까지 복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는 한나라당 내에서 박정희 친화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이 대거 한나라당을 탈당해 친박 연대를 만드는 등, 여전히 한나라당 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한나라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특히 ‘뉴라이트 세력’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뉴라이트 세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진보 세력 독주 견제와 안정적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결성한 세력으로 박근혜 전 대표는 “뉴라이트 전국연합과 한나라당의 길은 다르지 않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고 선진화를 위해 ‘공동체 자유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한다는 것도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표는 뉴라이트 교과서를 극찬함과 동시에 “이제 걱정 하나를 덜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이들의 뉴라이트의 교과서 포럼 등 움직임에 부분적으로 동의를 표한 바 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표는 대한민국 유명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언행으로 인한 잡음이 거의 없는 정치인이다. 또한 부패에 연루된 전력도 전혀 없는데 이는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그녀의 신중하고 안정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을 비롯한 4대 개혁 법안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 강원도 수해지역 현장에서

국민들과 늘 함께하는 진정한 정치인, 박근혜
왜 박근혜 전 대표는 뉴스의 중심에 있고 사람들은 그녀를 이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여러 정치인들 중에서도 박근혜의 입지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조차 그녀의 말에 긴장할 정도로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많은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던 그의 장녀라는 점도 주요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표는 국회의원 신분으로서 성범죄자 전자 팔찌라든가 문화재 보호법 등의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으며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는 야당의 당수로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당을 운영하여 여당을 비열하게 공격해서가 아닌 야당인 한나라당을 돋보이게 하는 정직한 방법으로 여당을 열린우리당을 몰락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녀가 한나라당 대표일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회에서 그야말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종일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각종 선거에서의 무패 기록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부분인데, 이는 정치의 최고수임을 증명한 것이며 정치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뿐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정치의 정석을 실천하는 ‘진짜 정치인’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말이나 행동에 무척 신중하고 자기가 한 말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도 다른 정치인들과 많이 구별되는 모습 중 하나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간 어눌하고 연약해 보이긴 하지만 그녀의 인생 역정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기에 생각이나 이념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녀에 대해 “국가관이 뚜렷하고 사심이 없으며 애국심이 투철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국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 정치인이기에 보통 멀게만 느껴졌던 ‘정치인’을 옆집 이웃과 같은 존재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으로 꼽기도 한다. 유명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개설했으며, 박근혜 전 대표는 이를 적극 활용해 지지자들과 교류를 시도했고 지금까지 그녀의 미니홈피에는 830만 명이 넘는 방문자가 다녀갔다. 그녀의 미니홈피에 자극받은 일부 정치인들도 미니홈피를 개설하기도 했지만 그녀만큼 많은 이들의 호응은 얻지 못했다.

국민들과 늘 가까이하려 하고 함께하기를 원하는 진정한 정치인 박근혜. 이 이름을 들으면 많은 이들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짐을 느낀다. 현재 그녀를 지지하고 있는 우파 진영에서는 그녀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이미 선정해 놨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지지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정치인, 늘 어깨가 무거운 정치인, 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이기에 우리는 그녀는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으며, 그녀야말로 진정한 한국을 이끄는 힘인 것이다. NM

뉴스메이커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뉴스메이커About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999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4층 뉴스메이커 | 전화 : 02-733-0006 | 팩스 : 02-733-0009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상호
뉴스메이커는 (주)뉴스메이커에서 발행하는 시사종합월간지로서 특정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자유 독립 언론입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뉴스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