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지극히 괴팍하고 폐쇄적인 삶을 살아갔지만 힘있는 필치로 광활하고 강렬한 판타지를 펼쳐낸 그녀는 20세기에 들어서 세계 최고의 시인 중 하나로 평가되었다. 디킨슨에 의하면 “영혼이란 제 있을 곳을 선택하는 것(The Soul selects her own Society)”이다. 영혼이 자유롭기 위해 자신만의 문을 닫아버린 디킨슨처럼 오늘도 서재와 연구실, 스튜디오를 굳게 지키고 있는 허혜정 교수를 만나 본다

▲ 시가흐르는서울(사회)

  학자이자 시인, 문학평론가, 시문화운동가로 다각적인 활동을 펼쳐온 한국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의 허혜정 교수. 기자는 마주앉자마자 좋아하는 작가가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허난설헌과 에밀리 디킨슨. 그녀는 자신의 전공영역은 아니지만 그네들의 도전적이고 강렬한 영혼에 매혹되어 비교논문을 쓰기도 했다고 말한다. 허교수의 작품들은 마치 에밀리 디킨슨처럼 강한 스타일과 박력, 깊은 흡인력을 간직하고 있어 시대적 통찰력과 날카로운 언어감각으로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문단의 최전선에 선 시인, 평론가 

▲ 학자이자 시인, 문학평론가, 시문화운동가로 다각적인 활동을 펼쳐온 한국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의 허혜정 교수

  허교수는 글 속에서만은 타고난 반항꾼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곰팡이가 퍼렇게 슨 족자 속에 표구되어서도/나는 누구의 계집이었던 적이 없다”(<미인도를 닮은 시>)는 시 속의 발언은 그녀의 대담하고 자유로운 기질을 암시하는 듯 하다. 우리의 삶이 의존하고 있는 지식이나 권위적 토대, 그것과 결탁하고 있는 언어질서에 대한 그녀의 도전의식이 동양의 인문학적 토양에 기반한 것이라면 독자들은 의아해할지 모른다. 권위와 이념 등에 ‘오염’되지 않은 문학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는 그녀의 문학적 키워드는 ‘현(玄)’이다. 그는 “존경하는 은사님이신 임기중 교수님의 지도로 고전시학을 공부하며 현대시에 관한 서구의 주지적 입장과는 달리 불교나 도가적 문맥이 문학이론으로도 매우 설득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특히 ‘현(玄)’ 혹은 ‘현람(玄覽, 신비로운 시선)’이라는 관념은 스타일과 기교의 생산에만 몰두하는 현대의 지적인 문학풍토를 혁신할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지점이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은 그녀의 박사논문은 물론 그녀의 학문적 행보를 관통하고 있다.
  한편 『한국문학』신인작품상으로 시 등단, 『현대시』 평론 당선, 『중앙일보』신춘문예 평론상 수상에서 시작하여 2010년 동서비교문학회의 학술상과 한국평론가협회 ‘젊은 평론가상’ 수상 등의 경력을 가진 허혜정 교수는 학생잡지 『중학생』의 원고청탁을 받곤 하던 사춘기에 이미 “표현과 인식”을 생의 목표로 삼았다고 말한다. 영문학 교수였던 부친의 서재에서 인문학적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자란 그는 박완서, 정연희, 한말숙, 김승희, 권지혜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한 숙명여고의 엘리트 서클 ‘숙란’의 기자로 활동하며 각종 문예대회에서 명성을 날린다. 고교시절 『문지』, 『창비』 등을 접하면서 문학의 뜻을 굳힌 그는 동국대국문과에 진학, 문학동인 ‘태’를 결성해 동인지를 발간하는 등 학내 문학활동의 주축에 선다. 그녀는 재학 중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잉태된 <귀무덤>, <비틀즈>, <저녁行>으로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시 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를 계기로 이형기 시인을 은사님으로 모시게 된 그녀는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시단의 줄기찬 주목을 받아왔고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제1회 ‘젊은작가축제(Young Writer's Festival)의 한국초청시인, 다수의 해외문예지에 한국현대대표시인으로 작품이 번역 소개되는 등 그 대표성을 당당히 인정받아왔다.

권위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지 못하는 학문과 문학을 할 터
  1991년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 결혼한 허혜정 교수는 아기를 재우고 자정부터 새벽까지 원고를 쓰는 억척스런 집필생활을 하며 1994년 『현대시』를 통해 평론가로 데뷔한다. 1997년 『중앙일보』에 평론이 재차 당선되어 한국문단의 최전선에서 젊은 비평가로서 치열하게 활동한다. 근 10년간 동국대, 서울여대, 고려대, 중앙대 등의 대학에서 강의하며 다수의 학술서와 논문 등을 발표해 문학연구자로서의 학문적 역량을 입증한다. 아울러 언론매체에 문학적 문제의식을 사회문제와 연계시켜 고민하는 박력 있는 칼럼을 다수 발표해 논객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단국대학교 아시아 아메리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 국문학, 아랍문학, 스페인문학을 잇는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처용가>를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처음으로 조명한 학술서를 발간한다. 그녀의 처용연구물들은 국제학회에도 수차소개되어 한중일, 캐나다 등 해외학계와 언론에까지 널리 주목을 받았다. 

▲ 고은시인과 문학대담중

  일찍이 대학을 전학기 수석으로 졸업해 명성여고 국어교사로 임용되어 문예지도로 지도교사상을 받고, 재직기관인 한국사이버대학에서 우수교수상을 2회 수상한 것은 문학교육자로서의 그녀의 능력과 열정을 짐작케 한다. 그녀는 제자들의 문학적 재능을 발굴하고, 꿈을 독려하며 그들과 함께 동행하는 삶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녀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학문과 문학의 큰 은사님이셨던 이형기 선생님, 임기중, 홍기삼, 홍신선, 이숭원 교수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재직기관의 이우용 총장님, 홍문표 교수님과 동료교수님들에게서도 늘 감사한 배움을 얻고 있다. 각종 문화기구의 초청, 자문, 토론, 특강, 사회, 심사 등 인터넷, 언론, 방송을 오가며 활발한 시문화운동을 펼쳐오던 허교수는 『시인학교』『천년의 시작』『서정시학』등을 거쳐 현재 『시인수첩』과 『국학자료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러한 놀라운 행보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코 뉴스메이커가 아니며, 일상의 현장에서 새로운 인식을 건져올릴 뿐이라는 그녀의 발언이 겸손하면서도 예리하다. “권위와 힘의 논리에 물들어가기 쉬운 나를 항상 점검한다. 한 줄이라도 써야만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하는 허 교수에게 글쓰기란 자유로운 영혼이 ‘선택’한 ‘감옥’인 셈이다. 주변자이지만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하는 언어에의 집념이 그녀의 삶과 문학의 강력한 동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도 세계에 대한 철저한 응시와 표현의 쇄신을 꾀하며 치열한 잠행(潛行)을 지속하고 있는 허혜정 교수가 이 시대 문학의 진정한 혁신리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