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조강지처 클럽>, <너는 내 운명> 그리고 <아내의 유혹>까지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에 대해

시청자들은 어디까지 용서하고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최근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케이블 TV로 인해 공중파 방송의 시청률이 현저히 떨어진 요즘, 꿈의 시청률이라는 40% 고지를 점령한 이후 최근에도 35%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심지어 ‘귀가의 유혹’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으며 직장인들의 퇴근을 부추기고 있는 <아내의 유혹>은 사실 온 가족이 모여 시청하는 오후 7시 15분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불륜, 강간, 납치, 자살 등의 소재로 인해 최근 이 드라마는 방송윤리위원회로부터 중징계인 ‘경고’를 받은 상황. 하지만 시청률은 이러한 '경고‘에 더 환호하고 있다. 소위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최근 안방극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막장이란 본래 광산이나 탄광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 작업장으로 매우 위험하고 힘든 일터로 알려져 있다. 물론 노천채굴의 작업장도 막장이라고는 하지만 이 역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뜻하며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 중 하나이다. 이러한 뜻을 가진 ‘막장’이 최근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인생 막장이다’라고 했을 때는 인생이 갈 때까지 다 갔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는데, 즉 끝장이라는 의미. ‘막장드라마’의 ‘막장’도 이렇게 해석되고 있기 때문에 최근 탄광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때문에 막장드라마란 끝장까지 가서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드라마, 즉 너무 뻔한 드라마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까지 막장드라마라고 해서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던 드라마는 <조강지처 클럽>, <너는 내 운명> 그리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아내의 유혹>과 <꽃보다 남자> 등을 들 수 있다. 이 드라마들은 한결같이 설정 자체가 억지이거나 너무 현실성이 떨어져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참여에도 불구하고 소위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다.

막장드라마 반대, “가족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있다”
막장드라마 찬성, “어줍잖은 교훈은 배제하고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막장’의 의미가 ‘마지막 장’으로 해석돼 드라마가 결말을 향해서 질주할 때 정상적인 서술이나 이야기구조로 가지 않고 결말을 향해 치달리기 때문에 비약이 심한 구조를 뜻할 수도 있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지금까지 얽혔던 상황을 봄날 눈 녹듯이 갑자기 해결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더라도 무리를 해서 나가지 않을 수도 없기에 드라마 전문가들은 이러한 부류를 막장드라마라 불렀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억지 플롯, 비상식적, 비현실적 상황으로 시청자들의 부정적 관심을 자극해 시청률을 올리는 드라마라 정의될 수 있다. 현재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방영되고 있는 <아내의 유혹>을 살펴보자. 드라마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구은재는 착하디 착한 가난한 집의 딸로 정교빈이라는 부잣집 사내를 만나 임신과 함께 그 집의 며느리가 되지만 요근래 찾아볼 수 없는 악독한 시어머니 백미인과 정교빈의 구박으로 마음편할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시어머니 때문에 아이를 유산하게 되고 예전 친구 신애리와 바람이 나버린 남편이 결국 그녀를 바닷가로 끌고 가 물 속에 빠뜨린 후 자살로 위장하지만, 구은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이 일로 인해 그녀는 뱃속의 아이들 또다시 잃게 되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구은재는 민소희란 이름으로 돌아와 정교빈과 그의 가족 그리고 신애리에 대해 처절한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정교빈 가족의 상식 이하 행동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민소희로 돌아온 구은재의 행보. 그녀는 단 하루 만에 춤과 수영 그리고 뷰티샵 경영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히고 빠르게 민소희로 변신한다. 또한 얽히고 설킨 이들의 비밀은 대부분 엿듣기를 통해 비밀이 밝혀지는 등 주인공 대부분은 ‘엿듣기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며 극중 신애리는 민소희가 구은재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가운데 그야말로 명탐정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캐릭터의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한국교회언론회 대표 김승동 목사는 지난 2월 19일, ‘막장드라마,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부도덕한 소재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막장드라마의 행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언론회에서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아내의 유혹>, <꽃보다 남자>, <에덴의 동쪽> 등을 막장드라마라고 언급하며 “강간, 강제 낙태, 혼전 임신, 여자의 복수 등 소재에서 이미 일반성이 떨어지고 드라마 전개의 억지성이 눈에 띈다”며 “이러한 막장드라마는 가족과 가정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시청률이라면 공영방송이든 민영방송이든 양심도 방송윤리도 실종되고 있다”며 “막장드라마가 흥행하는 이면에는 분명 우리 사회의 건강치 못한 부분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소 <아내의 유혹>을 즐겨본다는 한 네티즌은 “일단 이 드라마는 굉장히 재미있다. 과장된 캐릭터들과 과장된 상황들이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스토리를 질질 끈다거나 복잡한 플롯 따위는 없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꼭 <아내의 유혹>을 본다. 이렇게 대놓고 막장인 것이 솔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드라마가 나를 도발하는 것 같다. 다른 방송사에서 1시간 후에 방영하는 드라마 <사랑해, 울지마>를 보면 연애질하고, 결혼 반대하고, 불륜하고, 애낳고... 이런 내용이다. 다른 연속극들도 다 비슷한 스토리다. 그러면서 억지로 교훈을 주려고 하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아내의 유혹>은 적어도 어줍잖게 억지로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아내의 유혹>을 시청하는 대부분의 열혈 팬들은 이 네티즌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져버린 대한민국
자극적이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안 본다?
어느 드라마나 ‘임신’이란 소재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임신을 통해 가족 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결국 임신을 한 당사자들끼리 화해를 하는 것을 수순으로 하고 있다. 최근 KBS 주말드라마 <내사랑 금지옥엽>에서도 이러한 사실들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극중 치과의사 장신호는 봉사활동 도중 만난 시골처녀 김보리와 잠시 사랑을 하게 되고 김보리가 임신한 사실도 모른 채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김보리는 임신한 것을 알고 무작정 그와 결혼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지만 장신호의 반응은 냉담하다. 아이를 지울 것을 종용하지만 아이를 지우지 못한 김보리는 주변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신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후 김보리와 결혼하려 하지만 이미 돌아서버린 김보리는 그를 외면한다. 이 드라마가 아직은 막장드라마로 분류되지 않은 것은 이 이야기 외에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한 아버지 장일남과 뜻하지 않게 이혼했지만 늘 자식들을 마음 속에 품고 떠나보내지 않았던 어머니 송인순의 따뜻한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으로 인해 자식들까지 고통을 받게 되지만 가족이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주말 가족시청대 시간에 걸맞는 내용이지만 이 드라마 역시 ‘임신’이라는 소재로 인해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또한 얼마 전 종영한 <너는 내 운명>은 이러한 소재 외에도 백혈병이라는 진부한 소재와 친어머니와 시어머니 모두 백혈병에 걸렸으며 주인공 새벽의 골수가 두 사람 모두에게 맞는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인해 백혈병 관련 협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최근 막장드라마가 흥행하는 이유는 국내 시청자들의 수준에 딱 맞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수준이 너무 높다거나 난해하면 일단 사람들은 그 드라마를 외면해버린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가 명품드라마로 인정받고 있지만 시청률이 높게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현재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극적이고 대담한 자막은 이제 필수 요소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이다. 상대방을 어떻게든 비하하려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내용들이지만 시청자들은 이를 선호한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방송의 현 주소이다. 주관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심각하면 반드시 망하게 마련이다”고 말한다. 방송윤리위원회의 따가운 눈초리도 무섭지만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방송국 윗선의 눈초리가 더 무섭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보통 수준이라면 모를까, 한 자릿수 시청률, 혹은 애국가 시청률이라도 뜨면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초비상이다. 때문에 작가나 PD를 바꿔 자극적인 소재를 투입시키려 하며, 어떻게든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이 또한 시청률 지상주의에 사로잡혀버린 대한민국 방송의 또 다른 주소이기도 하다.

방송가에서는 특정 드라마가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쓰게 되면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한다. 그만큼 ‘막장=흥행’이라는 공식이 이제 일반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꼭 막장드라마라고 해서 모든 내용이 막장은 아니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는 막장의 진수를 보여주는 기가 막힌 캐릭터이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여지며 특히 아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하려는 따뜻한 모정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막장드라마로 분류된 이상, 이제는 거칠 것이 없다는 식의 내용 전개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아내의 유혹>은 앞으로 어떠한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할지 궁금해진다. 최근에는 죽었다던 진짜 민소희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설정으로 또 한번 논란에 휩싸였던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도 이미 너무나 자극적이었기에 이제는 더 자극적이어야만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극적이었으면 더 자극적이어야 하는 것이 바로 막장드라마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