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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막 오른 ‘김정은’ 시대
북한 내부 치열한 서열 조정
2012년 02월 01일 (수) 17:12:16 황태희 기자 hth@newsmaker.or.kr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일어날 수 있는 지도력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유훈통치’를 시작했다. 1년간의 추모기간에는 김정은 부위원장 중심의 권력체제가 유지되면서 후견인 그룹과 유훈통치가 뒷받침되는 형태로 운영될 전망이다. 권력 구도는 종전의 국방위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중심으로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 지난 1월 1일 김정은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펼쳐온 선군정치의 출발점이 됐던‘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방문해 북한의 지도자로서 첫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북한의 유훈통치는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시 나타난 통치방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사후 곧바로 국가주석이 되지 않고 유훈통치를 선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을 영구 주석으로 추대하는 안을 발표해 주석직에 오르지 않고 국방위원장으로서 북한을 통치했다. 북한이 지난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사실을 발표한 뒤 하루 만에 ‘유훈통치’를 선포한 것도 당분간 김정은 국방위 부위원장이 통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의 받드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주민들의 충성 맹세와 서약 독려해
‘김정은 시대’에 진입한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김정은 체제의 뿌리를 내리는 데 사활을 걸었다. 2009년 1월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후계수업 기간이 3년이 채 안 될 정도로 짧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에서 공식 등장해 주민들에게 알려진 것도 1년이 조금 넘을 정도에 불과한 상태에서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체제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때문에 북한의 새 재도부로서는 김 부위원장의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고 불안정한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선 신속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북한은 1월 1일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김 부위원장의 영도와 그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것을 신호탄으로 주민들의 충성 맹세와 서약을 독려하는 공개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른바 ‘함남의 불길’을 지핀 함경남도에서 다시 한 번 시작된 충성맹세와 서약 독려로 함남 주민들은 1월 2일 함흥광장에서 당 정치국 결정서와 당 구호, 신년공동사설 관철을 위한 군중대회를 열고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군중대회에서 참가자들은 ‘피눈물의 맹세 목숨 바쳐 지키자’는 제목으로 “우리의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은 동지를 대고조의 최후승리로 결사옹위하자”는 내용의 ‘전국 근로자에게 보내는 편지’도 채택했다. 여기엔 함남에서 시작된 충성맹세를 북한 전역으로 확산시키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공장 기업소 근로자들의 편지에 답신 차원에서 친필을 보내며 김 위원장의 통치방식을 따르고 있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을 잃은 비통함과 건강 축원 등의 내용이 담긴 김일성종합대학, 희천발전소 건설장 등 여러 단위 산하의 일꾼, 종업원, 건설자의 편지를 읽고 나서 편지에 ‘2011년 12월30일 김정은’이라는 문구를 자필로 써서 보냈다. 이는 주민들과 소통을 통해 김정은 통치시대임을 강조하고 김 부위원장의 존재감을 이들에게 심겠다는 북한 새 지도부의 의도로 보인다. 특히 지난 1월 1일에는 김정은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이 펼쳐온 선군정치의 출발점이 됐던 ‘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방문해 북한의 지도자로서 첫 공식활동을 시작하며 선군노선의 계승의지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김 부위원장이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데 이어 군부대를 첫 공식활동 대상으로 삼은 데는 군심 장악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 부위원장은 후계자 수업기간이 짧아서 최고지도자로서의 존재를 북한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압축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 활발한 공식활동을 하면서 주민들의 충성을 모아나가는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 상당기간 내치에 집중할 듯
   
▲ 북한 매체에서는 김정은 부위원장을 전지전능한 지도자로 묘사하며 사실상 신격화에 착수했다
김정은 부위원장의 개인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다. 스위스 베른에서 공립학교를 다니던 10대 시절 동창들의 경험담,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11년 동안 측근에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의 저서와 증언을 통해 간략하게 알려졌을 뿐이다. 김 부위원장의 육성이 공개된 적도 없다. 이는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현재로선 여러 가지 추측과 관측과 추측이 있을 뿐이다.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의 후계자 김정은의 나이를 북한에서는 29세로 밝히고 있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김정은 부위원장의 실제 나이가 27세라고 보고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는 신체적 나이가 29세든 27세든 어리긴 매한가지지만, 김 부위원장의 사회적 나이는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이는 김 부위원장이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은 데다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내부의 권력 암투를 지켜보며 성장해온 배경에서 연유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 대표는 “2006년이나 2007년쯤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지명돼 제왕교육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 앞에 선 지 1년에 불과하지만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친 이후’라는 것이다. 다른 북한 전문가도 “트레이닝 결과 김정은을 또래보다 훨씬 성숙한 상태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휘둘리기보다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의해 계산된 행동을 할 개연성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마더 콤플렉스’(mother complex)에 대한 주장도 신빙성이 낮아 보인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2004년 어머니 고영희의 사망 이후 정권차원에서 관리가 이뤄졌을 것”이라면서 “어머니의 부재가 심리상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최영민 인제대 의대 교수는 “김정은은 백두혈통인 아버지 김 위원장을 닮아 가려고 하는 ‘파더 피겨’(father figure)가 되기 위해 애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껏 드러난 사실로 미뤄 볼 때 김정은이 치열한 권력투쟁을 통해 ‘영도자’의 위치에 섰다는 근거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은 3남이기 때문에 비교적 스트레스가 덜했을 것”이라면서 “권력투쟁 과정에서 심리적인 영향을 덜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오히려 권 교수는 “이복형제들이 많고 또 이것이 권력과 연결됐다는 것이 김정은의 경쟁심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후 가장 주목이 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김정은 부위원장이 이끌어 나갈 북한의 국정 운영의 향방이다. 한 대북전문가는 “권력을 물려받았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김정은도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유교적 질서가 우리 사회보다 공고한 북한에서 어린 나이에 정권을 이끄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부상한 이후 4년 동안 대외 문제에 나서지 않은 만큼 김정은도 상당기간 내치에만 매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3년 전부터 진행된 권력승계작업
북한의 김정은 지도체제가 조문 정국 이후 분주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이 내부적으로 힘겨운 ‘권력 서열 조정’ 작업에 직면했다고 분석 한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대외적으로 밝힌 직후인 지난 2009년 초부터 권력 승계작업을 시작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에게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2인자’ 자리를 부여, 김 위원장이 사망할 때까지 3년여 권력 승계작업을 진행해왔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 부위원장의 장악력이 아직 확고하지 않아 내부 리더십 확립에 힘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역시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탓에 확고한 권력 승계를 위해 생전에 ‘구세대’의 퇴진을 현실화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생전에 집중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덩샤오핑(鄧小平)의 원로 퇴진 전략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덩샤오핑의 지명으로 제3세대인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체제, 그리고 일찌감치 젊은 동량으로 발탁돼 제왕 수업을 받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축으로 한 제4세대로의 순조로운 권력이양을 크게 부러워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모든 과제는 김정은 부위원장에게 맡겨졌다. 특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각각의 3대 세력이 여전한 현실권력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김정은 체제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 내부 사정이 외부로 잘 알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김정일 위원장 사망 후 장의위원회를 꾸리는 과정에서 서열 조정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사망한 지난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부터 이를 공식 발표한 19일 낮 12시까지 51시간 30분 동안 북한 내부에서는 ‘치열한’ 내부 조정 작업이 있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 대한 공식 발표와 동시에 232명의 장의위원 명단도 공개했다. 이는 당연히 북한 내부의 권력 서열을 살핀 결과였다. 그러나 열사흘간의 추도기간에 여러 차례 서열 조정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이는 신-구 세력에서 발생한 다툼으로 볼 수 있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서 최고영도자로 추대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권력을 집중하려는 시도와 그에 ‘저항’하는 세력 간에 힘겨루기가 아니었겠느냐는 것. 그러나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김정은 부위원장이 부친 사망 발표 당일부터 김정은 부위원장이 북한 내부에서 영도자로 불리고 영결식을 주도하면서 인민군 최고사령관 직위에 오른 정황으로 볼 때 최고 지도자로서 ‘위상’에는 변함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북한의 3대 권력승계 과정에서 이미 세력화해있는 각각의 세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김정은 부위원장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북한 지도층 내부에서 큰 분란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는 것. 그간 북한 관영매체들이 쏟아낸 보도들을 종합해보면 우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 총리,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 전하철 부총리, 리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태종수 노동당 비서 등은 김일성 주석 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까지 세력을 유지해왔다. 인민군의 리을설 원수·김철만 대장 등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동료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현재 북한 노동당과 군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주요 기관 및 단체를 장악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김정일 세력의 상징’이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포함한 장의위원회 명단에 포함된 인사 대부분이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권력승계 작업이 시작될 때부터 ‘대장 동지’로 불린 김정은 측근은 상대적으로 적다.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겸임했던 국가안전보위부장 산하의 우동측 제1부부장과 김창섭 정치국장,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 등이 김정은의 측근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편 김정일 위원장 영결식에서의 영구차 행렬에서 모습을 보인 김기남·최태복 당 비서, 리영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은 ‘김정은 세력’의 가장 최측근이자 실세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아직은 당 지도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김정은 부위원장이 입지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피의 숙청’을 단행할 가능성도 남아 있음을 시사했다.
   
▲ 북한은 2012년 신년사설에서 남한에 대해서는 강하게 날을 세운 반면 미국은 언급하지 않는 차별적 반응을 보였다

확고한 입지 다지기 위해 본격적인 우상화 시작
북한이 새 지도자 김정은 부위원장의 우상화에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후계수업 기간이 짧은 김 부위원장은 아직 주민들 사이에 인지도가 낮은 것이 취약점으로 꼽혀왔다.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 매체에서는 김정은 부위원장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잇는 전지전능한 지도자로 묘사하며 사실상 신격화에 착수했다. 김일성방송대학의 홈페이지인 ‘우리민족강당’은 지난 1월 4일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의 영도는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의 계승 완성을 위한 결정적 담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김 부위원장을 ‘백두산형 위인’, ‘백두산형 장군’이라고 묘사했다. 논문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만경대 가문의 혁명적 신념과 의지, 배짱을 천품으로 지니신 또 한분의 절세 위인”이라며 “선군혁명의 영도자로서 자질과 품격을 최상의 높이에서 체현하고 계시는 백두산형 위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정은 동지는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지략, 신비로운 통찰력과 선견지명을 지니고 계신다”며 “일찍부터 장군님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전면적으로 깊이 연구체득하시였으며 특히 수령님과 장군님의 독창적인 군사사상과 이론, 탁월한 전략전술과 전법들에 정통하시였다”고 주장했다. 특히 논문은 김 부위원장이 군사뿐 아니라 정치,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정통하다고 추켜세웠다. 논문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군사가적 자질과 영군능력, 정치와 경제, 과학과 기술 분야의 해박하고 다방면적인 견문을 소유하셨다”며 “나라의 국방력 강화와 전반적 사회주의 건설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을 기쁘게 하는 눈부신 업적들을 쌓아올리시었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우리 군대와 인민들 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김정은 동지께서 이룩하신 업적을 널리 칭송하고 그이의 영도 따라 힘차게 전진해나갈 일념을 담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며 김 부위원장 찬양가인 ‘발걸음’을 간접적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도 김정은 부위원장의 우상화에 나섰다. 노동신문은 ‘김정일 동지의 전사, 제자들이여!’라는 제목의 정론을 통해 “장군님과 함께 헤치시며 성장하신 김정은 동지는 모습도 기상도 수령님 그대로이시고 장군님 그대로이시다”며 “그이의 신념은 백두산악과 같이 억척불변”이라고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또 김 부위원장에 대해 “최강의 정예대군을 휘하에 거느린 또 한분의 위대한 선군령장”이라며 “조선을 세계가 우러러보는 강대하고 부흥하는 강성대국으로 안아올릴 탁월하고 특출한 실력가형의 영도자”라고 찬양했다.
   
▲ 전문가들은 김정은 시대 북한에는 김경희·장성택 부부 외에 감시기구를 장악한 실세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대외관계의 향방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의 대외관계의 향방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2012년 신년사설에서 남한에 대해서는 강하게 날을 세운 반면 미국은 언급하지 않는 차별적 반응을 보였다. 이는 남북관계는 여전히 경색된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지만 북미대화의 기조가 기존처럼 유지될 것을 시사한다. 지난 1월 1일 발표된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에 따르면 현재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이 가장 큰 목표다. 북한은 공동사설에서 “김정은 동지는 곧 위대한 김정일 동지”라며 “전당, 전군, 전민이 방패가 돼 김정은 동지를 결사옹위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김정은 체제의 빠른 안착을 위해 당과 군, 민의 충성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의 제한적 조문허용을 비판하며 대남 비난 기조를 이어갔다. 공동사설을 통해 ‘반인륜적 반민족적 행위’라고 표현하며 우리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하면서도  ‘남북대화와 협력’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대북전문가들은 우리 정부 측에서도 당장 급격한 남북관계 개선을 지향하기보다 민간이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계속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관계를 개선시켜 나가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이번 공동사설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강화로 어려움을 이겨냈다”며 친중, 친러 노선을 선언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에 이뤄졌던 2번에 걸친 북미 대화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해 김정은 체제하에서 당분간은 대미 정책에 적극성을 띠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 직후 미국과 북한이 뉴욕채널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타진한데 이어 미국이 장례식 다음날인 지난 12월 29일 미국 국무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며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북학대학원 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미국이나 북한이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북미 3차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김정일 사망 직전 거의 합의단계까지 갔던 북미 3차 회담도 24만톤 규모의 대북 영양지원을 매개로 이어질 수 있어 보인다.

김정은 부위원장의 ‘사람들’
전문가들은 김정은 시대 북한에는 김경희·장성택 부부 외에 감시기구를 장악한 실세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가정보원) 수석 부부장과 리명수 인민보안부장(경찰청장),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등이 그들이다. 이 중 우동측·김경옥·김정각 등 3명은 김정은 시대 최고 권력기관으로 떠오른 중앙군사위 멤버다. 현역 북한군 대장인 리명수도 향후 중앙군사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이 4명을 통해 체제 감시기구부터 완전 장악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지목된 지난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 전후로 김정은 부위원장은 국가안전보위부(반체제 인사 색출)·인민보안부(주민 감시)·조직지도부(간부 감시)·총정치국(군 감시) 등 ‘4대 감시기구’ 수장(首長)을 측근들로 물갈이했다. 특히 5만여 명의 보위부원을 거느린 우동측 보위부 수석 부부장은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보위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김일성대 출신으로 2009년 상장(우리의 중장)으로 진급한 지 1년 만인 작년 4월 대장 계급장을 달았다. 2010년 9월 당 중앙군사위 멤버로도 뽑혔다. 리명수(대장) 인민보안부장은 총참모부 작전국장 출신이다. 2007년 공안 기관을 관할하는 국방위 행정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09년 초 김정은의 후계 수업을 맡았던 것으로 관측된다. 2011년 4월 23만여 명의 보안원(경찰)을 지휘하는 인민보안부장에 올랐다. 현재 보위부와 보안부는 ‘김정은 후견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중앙군사위원 겸직)이 총괄한다. 조직지도부는 당·군 간부들에 대한 인사와 감찰을 전담한다. 김정일은 1972년 당 조직비서·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며 당 조직부터 장악했다. 반면 김정은은 자기 사람들을 제1부부장으로 기용했다. 당(黨) 간부에 대한 인사·감찰권을 가진 리룡하 제1부부장은 ‘김정일이 60~70년대 조직지도부에서 후계 수업을 받을 때 같이 근무했던 인물’(고위탈북자)로 알려져 있다. 군(軍) 간부 감찰권을 가진 김경옥 제1부부장은 작년 9월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으며 중앙군사위원이 됐다. 리룡하와 김경옥은 2010년 5월 의문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 리제강 제1부부장과 2010년 4월 심장마비로 죽은 리용철 제1부부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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